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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슴슴하게씀 Jun 13. 2021

새벽의 울음소리

20210613

20210613 새벽의 울음소리


며칠 전 새벽, 밑집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살고 있는 자취방은 방음이 잘 되지 않는다. 늦은 시간에는 소리를 낮춰 달라고 직접 찾아가거나, 혹은 다음날에 집주인을 통해 요청한 적이 몇 번 있었다.


시도 때도 없이 문제를 제기한 건 아니었다. 이건 아니다 싶은 나름의 기준이 있었다. ‘지금 저 소음이 통제할 수 있는 소음인가’였다. 새벽에 노래를 부르거나, 큰 소리로 전화를 하며 웃고 떠들거나. 그런 소리가 해당되었다.


울음소리는 그 기준으로 판단하기 어려웠다. 우는 게 좋아 우는 사람이 있을까. 울음이란 보통 참을 수 없어서 터뜨리게 되는 것이다.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게 숨죽여 흘리는 눈물은 시원하지 않다. 가슴속에 맺힌 감정을 다 털어낸 건지 개운하지 않고, 슬픈 감정조차 맘 놓고 슬퍼할 수 없는 상황이 서럽다.


이왕 울기 시작한 거 가슴이 후련할 정도로 울음을 다 토해내고 푹 잠들길 바랐다. 밑층에는 외국인 학생이 산다고 했다. 타지에 와서 힘들겠지, 실연을 겪었든지 뭔가 힘든 일이 있는가 보다, 생각했다. 나와는 통성명도 해본 적 없는 사이기에 가만히 기다리는 게 최선이라 생각했다. 그녀의 대성통곡은 오랫동안 이어졌다.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쯤 바깥에서 외국인 학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다른 집의 문을 쿵쿵 두드리며 도움을 청했다. 겁이 났지만 혹시 위급한 일이 생긴 걸까 해서 뒤늦게 나가 보니, 밑층의 외국인 학생이 앞집에 사는 아저씨를 붙잡고 서 있었다.


밑층의 현관문 앞에는 파란색 소주병 몇 개가 놓여 있었다. 그녀는 얼굴을 잔뜩 찡그린 아저씨에게 무언가를 토로하고 있었다. 뭘 도와주면 되냐, 경찰을 불러줄까 묻는 아저씨에게 그녀는 딱히 구체적인 대답을 하지 못하고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다 그녀는 갑자기 2층에서 지켜보고 있던 나를 노려보며 이리로 내려오라고 했다. 난데없이 소환을 요구받은 나는 내려가서 그녀의 모국어가 아닌 듯한 영어에 귀 기울였다.


Why am I painful? What am I supposed to do?


동이 트는 새벽의 주택가에서 그 말을 반복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비극의 주인공 같았다. 왜, 무엇 때문에 힘든 건지, 뭘 해야 하는 건지. 음, 그건 잠들지 못하는 이 동네 사람들이 물어볼 말 아닌가 싶었다. 동네 사람 중 누군가가 이미 경찰을 부른 것 같았다.


같은 말을 부르짖던 그녀는 무언가 생각난 듯 위층의 소음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조용히 해달라는 걸 전해 들었다는 그녀는 나에게, 위층의 코리안 보이들도 시끄럽게 하고 1층 앞에서 틈만 나면 담배를 피우지 않냐고 따졌다. 이에 나는 비흡연자이며 그 코리안 보이들은 옆집이 데려오는 친구들 같다고 답했다. 진정하고 내일 집주인과 함께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그녀는 내 말을 어떻게 믿냐며 욕을 했다. 내가 몇 살인지 묻기도 했다. 나이를 따지는 행위가 글로벌한 문화였던 건가, 아니면 그녀가 한국에 잘 적응한 것인가 고민하며 대답을 않고 있으니 그녀는 내게 볼일이 없다며 난데없이 다시 올라가라고 했다. 경찰이 빨리 오길 바라며 나는 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서 경찰이 오는 소리를 들었다. 경찰은 늘 있는 취객을 대하듯 그녀를 혼내며 방으로 들여보냈다.


또다시 엉엉 우는 소리와 함께 폭탄이 터지는 것처럼 문을 쾅쾅 여닫는 소리가 들렸다.


울음소리에 대해 들었던 새벽의 짧은 감상을 떠올리자 헛웃음이 나왔다. 밖은 이미 훤히 밝아졌고 나는 한숨도 못 잤다. 할 일이 많았던 날이었다. 몽롱하고 씁쓸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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