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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슴슴하게씀 Jun 20. 2021

주삿바늘 일곱 번

20210620

20210620 주삿바늘 일곱 번


주사 일곱 대를 맞았다.


3월부터 달리기에 푹 빠졌더니 몸에 맞지 않게 무리했던 것 같다. 종아리가 시큰거려 집 앞 정형외과에 갔었다. 근육에 염증이 생겨서 그런 거라 했다. 그때부터 뛰는 걸 멈추고 물리치료를 받으러 다녔다. 길게 잡아도 5월 한 달을 쉬면 다 나을 줄 알았는데, 6월 중순이 되어도 낫는 듯 안 낫는 듯했다.


다른 병원을 가 보라는 추천을 받았다. 오래되어 색이 바랜 듯한 건물에 위치한 그 병원은 의사 이름 석자를 당당히 내어 놓은 간판을 걸고 있었다.


원장실로 들어가니 중년의 원장님이 자 처음 뵙네요 반가워요, 하며 날쌔게 움직여 나를 맞이해주었다. 친근한 경상도 말씨와 약장수 같은 톤의 조화가 인상 깊었다. 전에 간 병원과 별 차이 없는 진료를 받고는 끝인가 했는데 주사를 맞고 가라고 했다. 영양제 같은 주사를 한 대 맞나 했다. 달갑진 않았다.

주사실의 침대에 누워 있으니 원장님이 주사실로 들어왔다. 프롤로 주사를 놓는다 했다. 근육에 관한 전문적 용어로 설명을 했지만 생소한 단어들이라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종아리는 네 구역으로 나뉜다는 말만 들렸다. 그것 말곤 곧 주삿바늘이 들어오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길고 뾰족한 주삿바늘이 종아리를 찌르고 들어왔다. 따끔, 했다. 힘 좋은 집게에 꽉 집힌 듯했다. 종아리가 뻐근하고 묵직하게 느껴졌다. 연이어 다른 부위에 바늘이 푹 들어왔다. 방금 그 설명이 일종의 복선인가 싶었다. 원장님 종아리가 네 구역이면 주사도 네 방 맞나요, 나의 질문에 원장님은 허허 그런 건 아니고, 하며 3번째 주사를 놓았다. 4번째 주사까지 놓은 원장님의 혼잣말은, 허허 놓고 보니 네 방이네.


끝이 아니었다. 허벅지에도 주사를 놓자고 엎드리라 했다. 종아리만 아픈 건데, 애먼 주사 맞혀서 장사하는 건가. 연발로 찔린 주사 네 대의 따끔함과 원장님의 약장수 톤이 겹치며 거부감이 들었다. 이제 와 안 맞겠다 하기도 뭣해 순순히 엎드렸다.


허벅지까지 바늘에 푹푹 찔리고 있자니, 끈질긴 개에게 쫓기고 쫓기다 자포자기 상태로 멈춰 서서 다리 여기저기를 물리고 있는 기분이었다. 여섯 번째 주사를 놓은 원장님은 내 종아리살을 찰싹 치곤 우렁차게 말했다. 자 나가서 한번 왔다 갔다 해봐요.


계단을 오르내리니 발목에 저릿함이 느껴졌다. 주사를 여섯 대나 맞았는데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돌아와서 발목 쪽에 통증이 남아 있다고 했다. 그러자 원장님은 쓰읍 하고 얼굴을 찡그리며,


야이, 그건 다른 쪽인데.


그렇게 주사를 한 대 더 맞아 총 일곱 대를 맞았다. 마지막 주사 역시 첫 주사와 다를 바 없게 똑같이 따끔하고 뻐근했다.


물리치료실 침대에 누워 주사를 맞았던 기억을 헤아려 보았다. 단체로 예방접종을 받을 때 내 차례를 기다리며 긴장하던 경험, 발에 난 티눈을 제거한다고 묵직한 마취주사를 맞은 경험 따위들이 떠올랐다.

전에 몇 번 맞아봤다고 이번에 맞는 주사가 덜 아파지는 건 아닌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이번에도 그때처럼 심란하며 따끔하고 뻐근할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도 주사를 맞을 일이 더러 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뾰족한 바늘을 생각하며 긴장하고, 그 바늘에 연한 살을 내줘야 할 것이다. 결코 유쾌해지진 않을 경험이다. 안 맞을 수 있으면 최대한 안 맞고 싶지만, 사람의 몸으로 태어난 이상 그럴 순 없을 테다.


그나마 ‘주사 한 대 맞읍시다’라는 말에 겁먹은 티를 덜 낼 수 있게 된다는 걸로 위안 삼을 수 있겠다. 주사를 맞는다고요 전 그럴 생각으로 온 건 아닌데요, 속으로 심란하겠지만, 지난번 맞은 것 정도일 거라 생각하며 덤덤한 척할 수 있을 것이다.


신기하게도 주사를 맞고 나니 통증이 현저하게 줄었다. 진작에 이 병원에 왔어야 했나 싶다. 원장님이 경과를 지켜봐야 하니 또 오라고 했다. 혹시 또 주사를 맞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음, 예, 뭐 그렇군요, 주사를 또 맞아야만 하는 거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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