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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슴슴하게씀 Jun 27. 2021

달리기를 말할 때 나도 해보고 싶은 이야기

20210627

20210627 달리기를 말할 때 나도 해보고 싶은 이야기


이번 주부터 달리기를 다시 시작했다.


3월부터 올해 1000km를 달리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달렸었다. 사용하는 러닝 앱에서 총 거리 1000km를 누적하면 ‘블루 레벨’이라는 일종의 칭호를 얻을 수 있었다. 얼추 계산해보니 올해 안에 쉽게 달성할 수 있을 듯 보였다.


4월까지 달리기에 푹 빠져 살았다. 사람들이 투자 앱을 흡족하게 들여다보는 것처럼 나는 러닝 앱을 뿌듯하게 들여다봤다. 총 거리는 꾸준히 쌓여갔고, 평균 페이스는 조금씩 빨라졌다. 블루 레벨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벌써부터 달성한 기분이었다. 누적되는 기록에 자신감이 생겼다. 그저 달리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맑아졌다.

그러다 보니 너무 많이 달렸다. 어느 순간부터 종아리가 아팠다. 병원에서 물리치료도 받고 소염제도 타 먹었다. 그래도 낫질 않아 다른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았더니 효과가 좋았다. 그렇게 5월과 6월 두 달을 쉬었다.


실은 주사를 맞기 전 6월 초에 한번 달린 적이 있다. 통증이 약하게 남아 있었지만 오래 쉬었으니 달리면서 낫자고 생각했다. 조금씩 찾아오는 통증을 모른 척하며 달렸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통증이 생생하게 돌아왔다. 아, 그랬다. 조급했다.


쉬었던 두 달 동안 머릿속의 계산기가 매일 업데이트됐다. 이만큼 쉬면 남은 기간 동안 한 달에 몇 킬로미터씩 더해야 1000km를 달성할 수 있는지 끊임없이 계산했다. 아이러니했다. 달리기를 하면서 머리를 비우는데, 달리기 때문에 의미 없는 계산이 머릿속에 들어서 있는 게.


취업을 위한 자소서 속 짧은 질문 앞에서 나는 자주 발가벗겨진 기분을 느꼈다. 대학을 졸업한 내가 증명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몰랐다. 내 경험들은 초라해 보였고 그걸로 무엇이 쌓였는지 쉽게 답할 수 없었다. 그때그때의 임기응변이고 임시방편 같았다. 그런 나를 사회는 고작 질문 두어 개만으로 꿰뚫어 보고 있는 듯했다. 부끄러웠다. 그럴 때마다 달렸다.


환한 조명이 켜진 밤에 중랑천을 달린다. 또 통증이 있는 건 아닌지 계속해서 종아리에 신경을 쓴다. 속도를 크게 올리지 않았는데도 중간 즈음부터 다리가 무겁고 숨이 차다. 곧 옆구리가 당긴다. 여름이 되니 마스크가 더 답답하다. 가슴이 서서히 조여 오는 느낌이 든다. 결국 속도를 조금 줄이지만 걷지는 않는다. 하루키가 묘비명으로 넣고 싶다던 문구인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를 떠올린다. 골인 지점이 다가올 때쯤 스퍼트를 내본다. 전력질주는 하지 않는 어중간한 스퍼트다. 3km를 달렸다는 어플의 안내 음성이 들린다. 페이스가 만족스럽지 않다. 더 빠르게 달릴 수 있었을 것만 같다. 그래도 오늘 달리기는 끝났다. 그렇게 생각하며 스트레칭을 하고 있으니 선선한 바람에 금세 땀이 말라 시원하다.


어쨌든 달리기를 다시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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