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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슴슴하게씀 Jul 04. 2021

이문동의 마지막 날

20210704

20210704 이문동의 마지막 날


이문동에서 마지막 하루를 보낸다.


운 좋게 이사를 가게 되었다. 임대주택에 당첨됐다. 예비 순위를 받고 반 포기 상태로 있었는데 뜻밖에도 예비 공급 당첨자 목록에 포함됐다. 처음 당첨자들과 내 앞 순위의 사람들이 입주를 하지 않은 것이다. 이사 갈 방을 방문해 둘러보곤 어째 이만한 방이 내 차례까지 왔나 의아했다. 오래오래 살다가 나가는 날까지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였으면 싶었다.


얼마간 이사를 준비하느라 바빴다. 주택보증금 대출 때문에 머리가 복잡했다. 내 인생에 대출이라 하면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하는 것뿐이었기에, 돈을 빌리는 대출에 대해선 완전히 깜깜했다. 주변에 물어보고, 웹사이트를 빽빽하게 띄워 놓으며 절차를 익혔다. 그래도 쉽지 않았다. 입주 절차도 헷갈려서 센터에 몇 번이고 전화를 했다. 사실 지금도 잘 처리를 한 건지, 어딘가 놓친 게 있는 건 아닌지 찜찜하다.


이번 주부터 여유가 생겨 본격적으로 이삿짐 정리를 시작했다. 갖고 있던 짐들을 박스에 쑤셔 넣었다. 웬만한 가전들이 옵션으로 제공되었기에 내가 들인 살림살이는 별것 없었다. 그래도 꺼내다 보니 주위 사람들 말대로 생각보다 뭐가 많긴 했다.


부피를 줄이기 위해 책상을 해체하느라 애를 먹었다. 방이 좁아 몸을 잔뜩 오므린 채로 책상 밑을 요리조리 넘어 다니며 나사를 풀었다. 각 부품들을 모두 해체하고 박스에 담았다. 2년간 합심해 책상 역할을 했던 판과 프레임들을 보며, 이들을 재결합시키기 위해 진땀을 흘릴 나를 상상했다.


정리한 박스들을 복도에 내놓으니 처음 들어왔을 때의 휑한 모습이 드러났다.


2019년의 7월, 이사를 온 첫날은 쉽게 잠들지 못했다. 전역 후 별다른 계획 없이 무작정 서울에 올라왔다. 일단 와야겠다 싶어 왔는데 이제 뭘 해야 할까 싶었다. 할 수 있는 게 많은 건지 해야 할 게 많은 건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어쨌든 상경했으니 뭐라도 해야 했다. 조촐하게 들고 온 짐만 놓인 방이 넓게만 보였다.


그래도 어떻게 2년이 흘렀다. 어쩌다 보니 6개월 정도 일을 했다. 직장이 멀어서 방보다는 밖에 있는 시간이 훨씬 더 많았다. 이후 복학해서 캠퍼스와 가까운 방의 이점을 누리려 했더니 개강 즈음 코로나19가 퍼졌다. 남은 대학 1년은 사실상 자취방에서 보냈다. 졸업하고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취업 준비를 했다.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고, 2년 동안 내 생활은 이 방에 맞게 변해 있었다.


방뿐만 아니라 이문동이라는 동네에 익숙해져 있었다. 혼자 산책을 많이 다녀서 더 이상 지도가 필요 없고 처음 보는 골목이 없을 정도였다. 마음이 어수선할 땐 캠퍼스의 가파른 언덕을 올라 평화의 전당을 찾았다. 이름에 걸맞게 마음의 평화를 찾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조금 걸어가면 중랑천이 나왔다. 보잘것없는 천변이라 여겼지만 달리고 나서 보면 그런대로 볼만한 풍경이었다.

익숙해진 가게도 많았다. 늘 머리를 예쁘게 잘라준 미용실 원장님이 말도 예쁘게 잘해줘서 자주 어깨가 으쓱했다. 언제나 친절하게 반겨주던 집 앞의 커피 가게도 좋았다. 가게 근처를 지나가다 마주친 직원 분이 환하게 웃으며 ‘커피 드시러 오셨어요?’ 하여 얼떨결에 가게로 들어갔던 기억이 난다. 심지어는 북적한 대학가의 분위기와 캠퍼스에서 낭만을 즐기는 생면부지의 얼굴들까지도 이젠 안녕이란 생각을 한다. 익숙해진 것들이 많다.

학교를 졸업했으니 더 이상 이문동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대로 이제는 새로운 동네로 간다. 그곳에서 또 새로운 것들에 익숙해지게 된다.


마냥 설레지만은 않는 이문동의 마지막 밤이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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