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보내지 못한 감정이 우리를 다시 태어나게 할 때
네이버 웹툰으로 먼저 연재된 「이번 생도 잘 부탁해」.
이 작품이 2023년에 드라마로 방영됐다.
나는 드라마로 이 이야기를 먼저 접했는데,
무엇보다 소재 자체가 굉장히 신선하고 흥미로웠다.
주인공은 19번째 생을 살고 있다.
그리고 첫 번째 생을 제외한 모든 전생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살아간다. 시간, 공간, 인연은 바뀌었지만 그녀는 매 순간 진심을 다해 살아왔다.
하지만
생은 반복할 수 있어도,
삶이 주는 가혹한 운명까지 거스를 수는 없었다.
전생을 기억하는 주인공에게 삶은 평범할 리 없었다.
밤마다 반복되는 악몽,
심연에서 올라오는 막연한 그리움,
잊고 싶어도 잊혀지지 않는 얼굴들..
그녀는 간절히 기도한다.
'부디 다시 태어나게 하지 말아달라고..
다시 태어나더라도 기억하게 하지 말아달라고...'
그 장면을 보며 이 말이 문득 떠올랐다.
“망각은 신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다.”
그렇다. 선물같은 추억도 있지만, 잊고 싶은 기억은 형벌이기도 하다.
하지만 주인공에게 이번 생은 조금 달랐다.
이전 생에서의 연정(戀情)을 따라 다시 태어난 그녀는
과거 인연들을 찾아 나선다.
그러다 세상의 불문율을 깨며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숨김없이 드러낸다.
그렇게 다시 만난 그리운 사람들.
주인공은 뜻밖에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왜 첫 번째 생만 기억나지 않았는지.
왜 이토록 전생의 감각이 현재까지 이어져왔는지.
첫 번째 생만 기억하지 못했던 주인공은
마침내 잊고 있던 첫 번째 생의 슬픔과 충격을, 그리고 그 후의 원망까지 마주하게 된다.
첫 번째 생이 남긴 감당하기 어려운, 짙은 감정이
그녀의 다음 생들을 옭아매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인연의 형태로 반복하면서 매듭이 풀릴 때 까지..
그러면서 매번생의 주인공에게 한 가지 숙제를 안긴다.
“지난 슬픔을 흘러보낼 것인가, 아니면 계속 그곳에 머무를 것인가.”
드라마 속, 주인공의 이런 독백이 있다.
"힘든 순간들은 흘러갈 것이고, 나는 어딘가에 도착해 다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드라마 속에서 ‘전생’은 진짜 목숨의 죽음과 탄생을 반복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나는 이 작품을 보며 조금 새롭게 느꼈다.
전생이란, 어쩌면,
이전의 삶을 떠올릴 때마다 되살아나는 감정과 기억,
그 모든 살아있는 감각도 포함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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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각자의 5번째, 12번째, 혹은 19번째 삶을 살아가고 있다.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 속
우리는 수만가지 순간을 마주하는데
그저 지나가는 것과 무심히 지나치는 것, 반대로 도저히 지나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어떤 순간은 붙잡고 싶어도 시간은 매정히 흐른다.
흘려보내지 못한 과거의 장면과 감정들이
여전히 마음 한켠에 매듭처럼 남아
나를 흔들고 있다면,
그건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은 전생인지도 모른다.
결국 중요한 건,
이 생에서 무엇을 놓아주고,
무엇을 끝까지 간직할 것인가.
그리고 더이상 과거가 아닌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살아갈 일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