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과 집착, 그 한 끗 차이

너무 애쓰지 말 것, 그럼에도 삶은 흐른다.

by 빛의 조각



어린 시절 일기장 맨 앞엔 좌우명처럼 이 문구가 적혀있다.

"최선의 노력을 다하자"

하지만 내 마음처럼 상대는 똑같지 않을 때가 더 많았다. 또 상황이 내 맘대로 흘러가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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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과 노력은 부정적인 단어가 아니다.
하지만 너무 과해지면 최선을 다해 노력했던 것에 대한 알 수 없는 결과를 있는 그대로 놓아주지 못하고 집착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런 집착을 굴레처럼 최선과 노력이라고 착각한다.


한 예능 프로그램 <유퀴즈>에서 어느 암 병원 전문의의 말이 귀에 들어왔다.
"최선과 집착은 한 끗 차이입니다"



최선과 집착이 한 끗 차이라는 너무 와닿는 이 명제.

어떻게 한 끗 차이라고 하는 걸까.









최선과 집착이 한 끗 차이 일 수밖에 없는 건, 동일선상의 '과정과 결과'를 대하는 '마음 자세'가 빠져있기 때문이다. 최선은 과정에 집중하는 것이고, 집착은 결과를 바꾸려는 강박이다.


사람들은 보통 결과에 최선을 다하진 않는다.
결과는 결과일 뿐이다. 이미 만들어진 결과를 바꾸고 싶어도 쉽게 되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런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시간과 노력이 곁들여지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각자 원하는 결실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렇게 과정에 최선이라는 마음담다 보니 결과가 원하는 만큼 나오지 않았을 때 인정하지 못하고 집착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러므로 결과를 받아들이는 마음도 있어야 한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어떤 결과든지 간에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마음.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자세.
바로 인정.













종종 우리는 우리에게 처한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는 것 같다. 때론 결과 속 현실이 가혹하고 모질 때도 있어서 받아들이지 못하고 현실부정할 때도 많다.

그럴 리 없다고. 아닐 거라고.. 의미 부여하고 합리화하며 자기식대로 판단해 버릴 때가 많다.


그러나 여기서 인정이란, 체념이나 포기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인정(Accept as it is)을 말한다.
최선과 집착 사이에는 이런 인정하는 자세가 빠졌기에 한 끗 차이라고 말하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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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부족한 점이 있다.

어린 시절 나는 그런 내 부족함에 늘 목말라서, 채우고 싶었고 누군가가 채워주길 바랐다.

어느 날

내게 결핍되어 있는 모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나타났다.

너무 강렬해서 동경했다.

함께 할수록 채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 동경은 이성과 감정의 경계를 완전히 마비시켰고

그런 선망과 동경이 실망과 애증과 섞었고

많은 시간을 쉽게 끊어내지 못했다.














인정하면 집착이 없어진다.
그 사람이 내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그런데 인정하고 나니 한편으로는 여유가 생겼지만
한편으로는 미친 듯이 슬퍼졌다.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상실의 시대」

요즘은 이 제목보다 「노르웨이 숲」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 책에서 고작 3 문장 밖에 안 되는 이 몇 마디가

매우 날카롭고 정확하게,

당시 쏟아지는 내 마음이 왜 그리 복잡했는지를 정의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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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나는 열과 욕심만 컸지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털어내는 인정과 쿨함이 부족했다.

되돌아보면 사실 속절없고 부질없던 순간들도 많았다. 그렇게 집착하며 힘들어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니 진심은 다하되, 너무 애쓰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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