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

완벽하지 않기에 도리어 특별한

by 빛의 조각




어릴 때 난 인간을 본디 선한 존재로 여겼다.

그래서 사람에 대한 기대가 자연스레 높았다.


여러 상황과 환경으로 상처받은 마음에 고슴도치처럼 뾰족한 가시가 생기는 거라고 생각했다.

교육자가 되고 싶었던 것도 그런 고슴도치들을 안아주고 위로하고 싶어서였다.

나 같은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살다 보니 인간 모두가 선한 건 아니었다.




비슷한 환경이어도 다른 마음을 품고

다른 행동의 결과를 낳는 사람들을 보며,
심지어 이렇게 말하는 나 또한 절대적으로 선하지도 않는, 벌거벗은 존재를 보며
성악설로 생각이 점점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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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모를 불안이 마음속에 도사려 늘 이유를 찾으려 했다.

원인과 결과를 명확히 해야만 안심이 됐고, 정답지가 있어야 흔들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을 쌓으며 나만의 중심을 세우려 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들은 흑백논리로 작용했고, 예상치 못한 상황이 전개되면 더욱 심하게 흔들렸다.




앞에선 선했던 사람이 뒤에선 잘못된 행실을 저지를 때,
악하다 생각한 사람이 때로는 나보다 더 성숙한 생각과 행동을 할 때,

선의로 했던 행동이 시간이 지나 안 좋은 결과로 나올 때,
정의 내릴 수 없는 수많은 변수 속에서 괴로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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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성선설, 성악설 어느 것도 아니었다.
선함과 악함으로 인간을 정의 내릴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100% 선한 사람, 악한 사람은 없었다.

빛과 어둠이 번갈아 일렁이는 파도처럼 선할 때도 있었고, 악할 때도 있었다.









모든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다.

결코 완벽해질 수 없는, 상황에 통제받는 나약한 존재다.

이걸 받아들이지 못했어서

그동안 인간이기에 당연할 수밖에 없는 주변의 불완전함들로 상처받아왔다.
또한 나의 불완전함도 부정하며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사랑하지 못하며 잣대를 심하게 세웠다.



하지만 이젠 그런 생각을 놓아주려고 한다.




부족한 나를,

불완전한 나를,

모순된 나를

있는 그대로 온전히 안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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