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상황을 가정할 때 항상 단골로 등장하는 질문이다. 이 질문을 통해 이 사람이 과거의 어떤 부분을 아쉬워하는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엿볼 수 있어서가 아닐까. 시대의 변화와 여러 진로의 생사가 오르내리는 시기에 남편이 나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과거로 돌아갈 거야?"
"언제로 돌아가는 건데?"
"음, 대학 입시 때로."
"글쎄, 잘 모르겠어. 별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그래? 왜??"
"시간을 돌리더라도 나는 아마 이 직업을 택했을 거고, 그렇다면 치열하게 경쟁하던 그 시기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그렇구나."
나의 대학 시절의 모습을 돌이켜보면 불만과 질투, 조급함의 감정으로 얼룩져있다. 내가 생각하던 대학 생활과 달라서 오는 그런 불만감,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가 아니라 더 나은 곳이어야 한다는 환경에 대한 불만이 컸다. 꼬박꼬박 지각하지 않고 수업에 참여했으나 그 자리에 그냥 앉아만 있었다. 지루했다. 수업 시간에 차라리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게 더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불만이 가득하지만 겉으로 티 내지 않은 채로 사람들과 어울렸다. 다양한 여러 사람과 어울리는 게 나에게는 굉장히 어려웠다. 술자리에서 오고 가는 가벼운 대화들을 따라갈 수가 없었고, 어느 타이밍에 웃어야 하는지, 어느 타이밍에 맞장구를 치며 나의 이야기를 꺼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지금까지 한 마디도 안 한 것 같은데? 얘기 좀 해."라는 장난스러운 면박을 받았고, 그 시선이 나에게 모여지는 게 싫어서 술자리도 피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중에도 여러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빛나는 친구들을 굉장히 시기질투했다. 그런 스스로의 모순된 모습이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내가 기댈 건 취업뿐이었고, 경쟁에서 이겨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이 대학 생활에서 벗어나 더 나은 환경으로 가야겠다고. 서로서로 격려하며 응원하며 고시 생활을 버티는 친구들과 다르게 나는 기숙사에서 콕 박혀서 혼자 공부했고, 티를 내고 싶어 하지 않아 했다. 전국에 있는 수많은 경쟁자들을 보다 눈앞에 보이는 나와 가까운 사람들을 경계하고 거리를 둔 거다. 어리석었다.
그런 어리석고 외로운 나에게 손을 내민 따스한 사람이 있었다. 혼자 밥 먹는 내가 신경 쓰였는지, 자신의 단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불러내어 같이 셋이 석식을 먹기도 했고, 체력 관리를 하자고 같이 운동장을 돌기도 했다. 까만 하늘에 흙 운동장의 서걱거리는 발자국 소리, 가로수 밑에 생긴 하얀색 원 모양의 빛, 반복되는 빙글빙글 풍경. 그런 장면들이 떠오른다. 그렇게 잠시 잠깐 스쳐가는 우리 과 '천사'의 자비인 줄 알았는데, 졸업 후에도 이어졌다. sns에 대학 동기들이 모여서 함께 여행을 가거나 만남을 가진 사진을 보면서 씁쓸함을 느낄 때, 그 사람은 "잘 지내고 있지~? 우리 한 번 볼까?"라고 변함없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그렇게 한 해, 두 해, 1년에 1번씩은 꼭 보는 사이가 되었다.
사람 인연이라는 게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관계가 있고, 자연히 오는 관계가 있다더니. 나에게도 적용되는 문장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자신의 공간에 나를 초대해 주는 사람이 있다. 이 사실만으로 온몸이 따스해진다.
만약 시간을 돌린다면 나의 어리석은 실수로 가득한 대학 생활을 바꿀 수는 있겠지만, 아마 천사로부터 구원받은 이 경험이 이렇게까지 나에게 와닿지 않을 거다. 이 시간이 있었기에 다른 사람 탓, 환경 탓을 하기보다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조금은 겸손한 내가 되었기에, 그리고 외로운 사람에게 내미는 따스한 손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는 내가 되었기에. 아마도 나는 시간을 돌려 과거로 돌아가지 않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