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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쥴 Oct 09. 2024

파도가 덮쳐도 바다에 빠지지 않고 다시 타고 오르기


망망대해에 나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표류하게 되었다.


남편이 시가에 가자마자 시작된 송장과 법원 우편물들이 쉴새 없이 날아들었다.

시누는 집주인에게 전화해 전세보증금¹을 돌려달라고 했다.

근무 중에도 부동산의 전화가 빗발쳤다.


폭풍우 치는 험한 바다에 혼자 삼남매를 데리고 버티고 있는 느낌이다.

거친 풍랑이 끝없이 휘몰아쳤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의지하고 있는 이 작은 쪽배를 뒤흔드는 나쁜 사람들을 벌하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것들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안전한 뭍에 닿을 때까지, 나는 절대로 바다에 빠져선 안 됐다.


삼남매를 데리고 풍랑이 치는 거친 바다를 건너야 하는 나는,

지켜야 할 가족이 있기에 지치면 안됬다.

몰아치는 풍파를 온몸으로 막으며 웅크리고 있는 아이들을 살피느라 다른 생각은 할 수 없었다.


이번이 마지막 이길 바라며 다가오는 파고를 가늠해 보자니, 이번 것은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해일처럼 느껴졌다. 모든 걸 내려놓고 싶다는 유혹이 스쳤다.

하지만 아이들을 보며, 하늘을 원망하는 대신 이를 악물었다. 나 말고는 그들을 지켜줄 사람이 없었다.


우리를 흔드는 이 파도는 언제까지 이어질까. 잔잔하기만 해도 이제는 견딜 수 있을 것 같은데. 이 밤이 마지막 폭풍우의 밤이기를 간절히 바라는 날들이 이어졌다.




나를 부정당할 때


“너는 바빠서 살았지, 아니었으면 저 인간 같지 않은 시가 사람들 때문에 벌써 미쳐버렸을 거야.”

힘들어하는 나를 위로하던 선배님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잡생각을 하기엔 실질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았다.


남편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상실감에 젖어 우울한 마음을 치유할 시간도, 한 시간씩 정신과 상담을 받으며 내 슬픔을 마주할 여유도 없었다.


매일 쏟아지는 일들. 회사 출장 스케줄 조정, 학부모 상담, 큰애 심리 상담 취소, 남편의 방사선 치료 예약, 장애인 신청 서류 작성, 입시 상담, 재활용 버리기, 식기세척기 막힌 배관 수리, 둘째의 골절 치료 등등 당장 처리해야 할 것들이 끊임없이 밀려왔다.


하지만 화장실에서, 엘리베이터에서, 잠깐의 대기 시간 동안 내 머릿속은 멈추지 않고 진실을 찾으려 애썼다.

'정말 남편의 의도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왜 나에게 직접 이야기하지 않을까?'

'나에게 전화해서 내가 하는 이혼소송이다. 이혼해 달라 하면 될 텐데.'

'그도 사람인데, 나에게 섭섭한 게 있을 수 있지. 그래도 내가 보고 싶지 않을까?'

'시가 식구들은 이 상황에 대해 남편에게 뭐라 말하고 있는 걸까?'



"이쥴님, 상대방에게 아이들을 맡기겠다고 하신 적이 있나요?"

변호사가 물었다.


“아니요, 그런 건 생각해 본 적도 없어요. 시가 사람들에게 남편 거취에 대해서도 직접 이야기한 적 없습니다. 저는 남편에게 시모께 우리 집으로 와달라고 요청하라고 말한 게 전부예요. 그들과는 의사소통이 잘 안 돼서, 감사하다는 말들만 했어요.”


내 대답을 들은 변호사는 격양되어 말했다.

“증거라고 제출한 게 자기들끼리 이쥴님 욕한 건데, 저런 식으로 서면을 내면 안 돼요 “




'처음엔 아이들마저 데리고 가려고 했던 걸까?'


소송 중 시누가 증거라고 내놓은 카톡 캡처 사진에는 아픈 의사 아들의 돈벌이에 대한 구상과, 나를 향한 악의적인 말들, 그리고 사촌여동생과 주고받은 ‘그 여자’에 대한 소설 같은 대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 여자’는 그때 회사 화장실에 숨어 몰래 울고, 혼자 움직이지 못하는 남편 대신 병원 상담을 다니고, 실종된 큰아이를 찾아 헤매며 병원비, 간병비, 생활비 고지서들을 처리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둘러싸여 폭언과 욕설을 들으면서도 계속 빌었어야 했던 걸까? 남편의 문자와 통화를 가로채고 왜곡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말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남편에게서 한 푼이라도 더 가져가려는 욕망에 사로잡혀 나를 부정했다. 나는 그들 없이는 천국에 갈 수 없고, 남편 없이는 사회생활이 불가능한 여자였다. 결혼 초기부터 나는 하나의 독립적인 인격체로서 인정받지 못했다. 그들은 계속해서 간섭했고, 나의 복종을 원했으며, 나를 왜곡해 왔다.


아이들이 생기고 나서는 그들의 영향에 휘둘릴 수 없었다. 어느 정도의 거리 두기가 필요했고, 그동안 남편이 나의 방패가 되어주었다. 하지만 이제 남편은 그들의 창이 되어 나를 찌르고 있었다. 나에겐 더 이상 방패가 없으므로 물리적인 거리 두기가 아이들과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이었다.


일그러진 거울


시모는 예전부터 남편에게 나에 대한 소설 같은 이야기를 써서 보내곤 했다. 남편은 시모를 잘 알았기에, 메시지들에 반발했고, 반응하지 않으려 했다. 상황을 다 알고 있지만 저런 메시지들을 계속 보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다. 시가사람들을 떠올리기만 해도 불안하고 우울했다.

예전엔 남편이 있었기에 버텼다.


한계에 도달했을 때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방향을 일러주었던 멘토와 선배들, 그리고 함께 눈물을 흘려준 친구들. 나를 지지해 준 가족들, 그리고 아이들이 있었기에 나를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시가 사람들이 비추는 일그러진 거울은 나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를 드러낼 뿐이다.


과도한 시뮬레이션 멈추기


남편의 검사 결과가 나올 때마다, 종양 진단 가능성이 높아질 때마다, 비슷한 사례의 논문들을 찾아낼 때마다 나는 불안한 미래에 대한 다양한 시나리오를 쓰느라 에너지를 소모했다.


시가 사람들의 이혼 소송 서면들과 답변이 오갈 때마다, 부부 상담 사전처분이 받아들여질지, 집에 대한 경매 결정이 어떻게 날지, 민사소송 통보가 올 때마다 내 머릿속은 과도하게 돌아갔다. 기일이 잡히고 경과를 받을 때마다, 앞으로 어떤 경우의 수가 있을지, 그 가능성을 상상하며 머릿속은 쉼 없이 움직였다.


불안정한 상태였지만, 아이들의 삶이 어떻게 변할지 과도하게 돌아가는 생각 속에서 나는 점점 더 불안감에 휩싸여갔다. 이러다간 다시 공황장애가 올 것만 같았다. 회사에서 공황발작이라도 일어나면 큰일이었다.




두 번째 화살을 맞지 않기


'나의 두려움 때문에, 남편을 잃어버린 걸까?'


세상은 내가 원하는 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아무리 대책을 마련하고 경우의 수를 생각해도, 세상은 그저 그 이치대로 흘러갈 뿐,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때 이렇게 해볼 걸, 저렇게 했더라면’ 하고 후회해 봐야 달라지지 않는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것도, 상황을 내 뜻대로 움직이는 것도 불가능하다. 오히려 과도한 생각을 반복하는 것이 나를 파괴해 왔다.


시가 사람들에 대한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그들의 부당함과 폭력에 맞서 싸우는 머릿속 시뮬레이션²이 끝없이 반복되었다. 내 마음은 분노에 휩싸여 엉망이 되었다. 하지만 그들이 아니라, 내 머릿속에서 나 스스로가 다시 분노의 시점으로 돌아가 편도체를 자극하고, 아드레날린과 코티솔을 분출하며 내 몸을 쥐어짜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화살을 뽑아 들고 나 스스로에게 다시 쏘고 있었던 것이다.


 It thinks. 우리는 생각을 통제할 수 없다.³


사람의 뇌는 마치 끊임없이 회전하는 기계처럼, 멈추지 않는 생각을 만들어낸다. 슬픔 속에서도, 그 생각의 흐름은 끊이지 않는다. 아무리 애를 써도 머릿속에서 밀려오는 기억들과 감정의 파도를 멈출 수는 없었다. 날카로운 추억들이 내 마음을 찌를 때마다, 생각은 더 깊은 바닷속으로 나를 끌고 들어가는 것 같았다.


생각은 한 번에 한 가지에만 매달릴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숨쉬기에 집중해 보기로 했다. 모든 것이 무너지는 듯한 그 순간에도, 들이쉬고 내쉬는 그 단순한 리듬에 나를 맡겨보았다. ‘들숨’을 의식하고, ‘날숨’을 따라가며, 나는 잠시나마 생각의 소용돌이를 멈출 수 있었다.


슬픔이 가슴 깊이 자리 잡고 있을 때, 그 끝없는 생각에 빠져버리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호흡이라는 작은 동작에 집중함으로써, 나는 잠시라도 고요 속에서 쉴 수 있었다.


명상과 뇌

명상은 전전두엽과 후측대상피질을 기반으로 한 뇌의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MN) 활성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며, 이는 정신 건강과 인지 기능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온다.

현재 순간에 집중하고 의식을 조정하는 훈련을 하면 내부 사고, 감정처리, 자아 인식 등의 자발적 사고와 관련된 DMN의 활성도를 조절하여 불안과 스트레스를 감소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다.    
   
DMN은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활성화되는 뇌 영역으로, 자아 성찰, 과거 회상, 미래 상상 등의 기능을 담당한다.⁵

명상은 DMN의 과잉 활성을 감소시켜 산만함과 마음의 방황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⁶ 특히 마음 챙김 명상은 주의를 조절하는 배외측전전두엽(dlPFC)을 활성화시키고, 이는 마음의 방황을 유발하는 후방대상피질(PCC)과의 기능적 연결성을 증가시킨다⁵.




큰아이의 실종 소식을 들은 날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끔찍한 생각을 해서 공황발작이라도 날까 봐 생각을 멈췄다.

어차피 일은 벌어졌고, 내 주관적인 편향에 빠져 일어나는 내 머릿속 상상들 때문에 오히려 자칫 잘못된 판단을 할 수도 있었다.


'숨쉬어! 정신 차리고, 운전 똑바로 하고, 아무 생각하지 말고, 숨쉬어!'

잡생각이 떠오르려 할때 혼자 외쳤다.


'동생들에게도 계속 전화하라고 하고, 엄마한테도 알리고, 날이 어두워지면 더 기다리지 말고 바로 실종신고 해야해!'


경찰과 담임선생님, 상담선생님께 차례로 도움을 요청했고 그들이 하는 지시와 조언에 귀기울였다.


전문가들의 말대로, 그들의 도움으로 아이는 무사히 돌아왔다.

구청, 청소년심리센터, 경찰, 학교선생님들 모두,

이후에도 수개월을 큰아이가 다시 건강해 질 수 있도록 지켰다.




문제는 내몸과 마음의 상태였다.

체력이 떨어질수록 감정은 더 자주, 더 강하게 치밀어 올랐다.


쥐가 난 다리⁷를 붙잡고 잠에서 깬 밤, 혼자라는 서러움에 눈물만 흘렸다. 그렇게 어둠 속에서 무너져 있다가도 아침이 오면 정신없이 출근 준비와 아이들 챙기는 일로 바빠졌다. 출근길에는 오십견 때문에 올라가지 않는 팔로 운전대를 잡고 오열했다. 하지만 사무실에 도착할 시간이 다가오면, 다시 무겁게 억눌린 감정은 뒤로 밀려났다.

매일매일의 감정적 에너지의 소모가 컸다.

친구에게 하는 하소연도 하루 이틀이지, 시련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그들을 내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괴로움이 쌓여갔지만, 정신과 상담을 받을 시간도 없었다. 내 속을 뒤집고 나가는 감정들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거리 두기와 감정 객관화


남편을 잃어간다는 상실감, 그리고 나르시시즘적 소시오패스인 시가 식구들로 인한 감정적 소모는 끝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소송이 시작되면서 나는 그들로부터 물리적으로 떨어질 수 있었다. 거리가 생기자, 그들의 목소리가 희미해졌다. 그리고 나는 내 안에서 치밀어 오르는 감정들과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감정이 다시 머리를 치고 올라올 때면, 나는 그 감정에 이름을 붙이기⁸ 시작했다. 불안, 분노, 슬픔… 그렇게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나를 삼키는 파도가 아니라, 하나의 흐름일 뿐이었다. 감정을 마주한 채 이름을 붙이면, 그것은 나를 휘어잡지 못하고 조용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나는 조금씩 감정을 분리해 내며 객관화할 수 있었다.


생각이나 감정은 그저 마음속에 잠시 머무는 하나의 이미지일 뿐이다.


나는 하늘이다. 다른 모든 것은 그저 날씨에 불과하다
- 페마 초드론


사람들은 밤하늘을 까맣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하늘은 언제나 푸르다.


밤이 오면, 하늘은 더욱 짙은 파란빛을 띤다. 그 아래 산과 나무, 집들이 하나둘씩 그 빛 속에 묻히고, 나도 어둠 속에 덮여 버린다. 밤의 깊이 속에서 칠흑으로 덮힌것은 우리들이다.


그리고 다시 아침이 오면, 우리는 빛을 입는다. 어둠을 지나 온 존재들이 다시 빛을 머금고 세상에 서게 된다.


나는 그렇게 조금씩, 나 자신을 다시 찾아가고 있었다. 남편을 잃고 상실의 바다에 휩쓸려 떠다니던 나였지만, 차츰 고요한 해변에 서 있는 나를 마주할 수 있었다. 이제 더는 감정이 나를 좌우하지 않았다. 아픔이 내 전부였던 시간이 조금씩 희미해지면서 나는 다시 내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푸른 어둠 속에서, 그리고 다시 찾아오는 빛 속에서, 나는 그렇게 있었다.




승화⁹


매일같이 쏟아지는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많은 결정들이 동시에 다가왔고, 해결해야 할 것들은 쉼 없이 내 앞에 펼쳐졌다.


고요한 일상을 사는 사람은 정적을 깨는 작은 소음에도 잠 못 이루며 좌절할지도 모른다.

나의 삶은 전쟁 같았다.

내 옆에서 폭탄이 터져도, 나는 그저 잘 피했다는 안도감에 잠시나마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휴식의 밤이 오면 노래를 불렀다.¹⁰


서면이 날아들고 소송이 시작되던 그 시절, 퇴근 후 아이들을 위해 저녁을 차려 준 뒤,

밀려오는 분노와 배신감, 슬픔을 안고 방에 들어가 피아노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슬픔을 이기지 못해 엉엉 울 듯이, 때로는 불을 뿜는 용처럼 내 안의 괴로움을 외쳐내 듯이 내 안에 쌓인 모든 응어리를 토해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문득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아있는 거친 감정들과 미처 뱉지 못한 분노를 글과 그림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극심한 스트레스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우리를 무너뜨립니다. 그 파도가 밀려올 때, 우리는 그저 휩쓸리지 않으려고 발버둥칠 뿐입니다. 내가 간신히 버텨낸 방법들이, 혹시라도 이 글을 읽는 분들께 작은 빛이 되기를, 그것이 완벽한 해결책은 아닐지 몰라도, 어둠 속에서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쉼터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집주인이 어떤 여자가 전화를 해서 계약기간이 이제 끝나니 보증금을 돌려달라 했다고 알렸다.


2. 농경사회가 형성되면서 인간들은 서로 협력하고 자원을 배분하기 위해 더욱 정교한 시스템을 개발하게 되었고, 이는 곧 '상상력’과 '시뮬레이션’이라는 사고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 사피엔스 유발하라리 저


3. 불교정신치료 강의 - 전현수박사(신경정신과 전문의)

정신의 인식작용과 몸과 마음의 속성을 설명하며 고통 없는 마음을 만드는 방법을 알려준다.


4. 크레이빙 마인드 - 저드슨 브루어 저
 감정적 충분함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우리의 사고방식과 행동을 탐구하며, 시뮬레이션이 어떻게 우리의 사고와 경험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설명하고 조절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5. Raichle, M. E. (2015). "The brain's default mode network." Annual Review of Neuroscience.


6. Kral, T. R., et al. (2019). "Mindfulness-based stress reduction-related changes in posterior cingulate resting brain connectivity." Social Cognitive and Affective Neuroscience.


7. 갱년기 여성의 다리 근육 경련, 흔히 '쥐가 난다’고 표현되는 증상은 흔하다. 노화에 따른 근육 소실과도 연관이 있다.


8. 감정의 발견 - 마크 브래킷 저

감정의 중요성에 대해 다룬 책으로, 감정 인식과 조절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감정 관리를 삶에 적극적으로 통합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9. 승화는 프로이트 Freud의 정신분석이론의 자아방어기제 중 하나로, 부적절한 감정이나 욕구를 창조적 활동으로 해소함으로써 심리적 성장과 높은 사회적 가치로 전환을 이루게 한다.

[출처] 미술치료- 창조를 통한 '승화 sublimation'|작성자 임은주 심리학자


10. 저는 진짜 한동안 집에서 혼자 노래를 부르며 마음을 달랬습니다. 여기 연결된 유튜브 계정에 올리기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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