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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쥴 Oct 20. 2024

아빠를 빼닮은 아이의 기억

신해철 10주기와 남겨진 아이들



소년아 저 모든 별들은 너보다 먼저 떠난 사람들이 흘린 눈물이란다. 세상을 알게 된 두려움에 흘린 저 눈물이 이다음에 올 사람들을 인도하고 있는 것이지.

'해에게서 소년에게' by 신해철



고등학생이 된 故 신해철의 딸과 아들이 유키즈에 출연해 아빠 10주기를 맞아 인터뷰를 했다. 
10년 전 열심히 아빠의 노래를 따라부르던 아들은 아버지를 너무 어린 나이에 떠나보냈기에 아버지에 대해 또렷한 기억이 많지 않다며 아쉬워했다.

아이는 7살에 아빠를 보낸 뒤 아빠 없이 성장한것에 대한 속상함 보다,

왜 자신은 사람들 입에서 들리는 이야기, 아버지의 노래와 라디오 방송에서 아빠의 존재를 느껴야 했는지 억울하다고 말했다.



신해철 10주기 기념 유키즈 인터뷰를 보며,

어린 시절격게되는 아버지의 죽음은,

알수 없는 혼란, 혹은 막연한 상실감으로 느껴질 수 도 있겠다 생각했다.


故 신해철 아들 신동원 군은 "나는 울지 않았다"며 "7세 때라 죽음이라는 게 뭔지 몰랐다. 그 상황을 이해하지도 못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아버지 돌아가시고 시간이 흐르고 저도 성장하면서 '아빠가 어떤 사람이었을까' 궁금해졌다. 그래서 인터넷에 검색하고 기사도 읽고 그랬다"며 "근데 '나는 왜 아빠를 인터넷에 검색해서 알아야 하지? 서로 이야기하면서 알아갈 수 없는 거지?'라는 마음이 들어서 억울했다. 그런 여러 가지 감정 속에서 많은 생각도 들고 배울 점도 많았다"라고 털어놨다.

故 신해철 딸 신하연 양은 "자전거 타고 가다가 아빠랑 딸이 손잡은 걸 보면 부러운 순간도 있는데, 그래도 아빠가 (하늘에서) 보고 계신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살면 나중에 만났을 때 아빠 보기 안 부끄럽지 않을까 싶다"라고 말해 뭉클함을 자아냈다.

"아빠랑 늘 같이 잤는데, 엄청나게 큰 소리로 코를 골지만 옛날이야기도 하고 동화책도 읽어준 상냥한 아빠였다. 엄마한테 애교 부리는 모습을 보면 왜 밖에서 그렇게 멋있는 이미지로만 통하는지 의문이 든다. 저만 아는 모습이 있다"며 활짝 웃었다.

'유퀴즈' 출연 인터뷰 中
https://www.news1.kr/entertain/broadcast-tv/5571789


우리집 막내도 7살 때부터 아빠가 병으로 서서히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신해철의 아이들은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아빠를 잃었지만, 나의 어린 아들은 오랜 시간 아빠의 병을 지켜보며 조금씩 상실을 배워나갔다. 초등학교 1학년에는 이미 아빠와 뛰어놀지도 못한 채 그저 멀리서 바라보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남편이 병원 투병을 시작하면서 나는 아이가 하는 부탁을 잘 들어주지 못했다.


"난 찜질방 한번 가보는 게 소원이야"

날이 추워지기 시작하면, 찜질방에 가고 싶다고 어린 아들이 졸랐다.


"그래, 다음 주말에 가자"

나는 지킬 수 없는 약속을 반복하며 아이를 달랬다.


8살 아들을 여탕에 함께 데려갈 수도, 혼자 남탕에 보낼 수도 없었다.
아빠가 아들과 함께 다시 찜질방 남탕에 갈 수 있는 그날을 기약하며, 그 소망은 차곡차곡 쌓였다.




아들은,

몇 달을 집으로 오지도 않고 열심히 입원치료를 하는 아빠를,

오랜만에 아빠가 있는 병원에 드디어 간다는 설렘을,

아빠가 다시 튼튼해져서 이제 곧 찜질방을 갈 수 있다는 기대를,

인공호흡기를 달고 겨우 자기를 알아보던 아빠를,

집으로 돌아온 뒤 엄마 품에서 터저버린 자기의 눈물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겠지만,

그 아픈 나날들에 대해선 우린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 막내아들은 남편을 꼭 닮았다.

체형과 뒷모습까지 영락없이 그의 아빠다.


가끔 자신이 찍힌 사진을 보고는,

“이건 아빠랑 너무 닮았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도 한다.


이제 2센티미터만 더 자라면 아빠와 키가 같아질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 그보다 더 클 것이다.

그렇게 아들은 남편을 닮아가고, 닮아갈수록 그리움은 더욱 깊어져 간다.



얼마 전 남편의 생일을 맞아,

아이들과 함께 우리가 자주 가던 동네 제과점 생일 케이크와 남편이 좋아하던 음식을 들고 그를 찾아갔다.

우리끼리 남편의 생일잔치를 하고, 봉안당으로 올라갔다.


남편의 유골함을 마주할 때마다,

아직은 가슴이 많이 저린 우리들은,

발걸음이 쉬이 떨어지지 않는다.


"아빠 우리 또 올게"

애교 많은 둘째가 먼저 손을 흔들며 아빠에게 인사한다.

딸들과 나는 남편의 유골함을 어루만지며 인사하고 돌아서는데,


막내아들이 아빠의 유골함 앞에서 90도로 인사하고 있다.

마치 집안의 큰 어른에게 예를 표하듯, 공손하게 인사하는 모습이 귀엽고도 기특해 웃음이 나왔다.


'아, 막내는 아빠에 대한 기억이 희미할 수 있겠구나.'
7살, 4살 차이나는 누나들이 기억하는 아빠와의 시간과는 다르게,

아빠와 함께한 시간보다 아빠없이 커온 시간이 더 많은 막내는,
조금 더 먼 거리에서 아빠를 추억하게 될 것 같다.


아빠를 잃어간 그 긴 시간 동안의 상실과 슬픔을 간직한 아이들




어쩌면 아빠를 빼닮은 아이는, 

자신이 만들어내는 그리움을 느끼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빠와 똑 닮은 모습으로 걸어 다니고,

아빠를 떠올리게 하는 미소를 지으면서도,

그 아픔과 그리움은 아이가 아닌 아이를 지켜보는 우리에게 더 수북히 덮힌다.


아이는 아빠의 흔적을 자연스럽게 따라가고 있지만,

정작 그 빈자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지 못한 채,

그저 다른 가족들만이 느끼는 그리움의 바람을 일으키며 점점 세차게 아빠와 닮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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