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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쥴 Nov 17. 2024

혜화동 10층 풍경

104병동


금요일 저녁,

나는 너에게 가는 길을 서둘렀다.


바코드 팔찌를 두른 사람들만 남녀가 나뉘어 누워있고,

그 옆을 지키는 사람들은 국적이나 성별에 관계없이 머무는 방 문을 열면,

드리워진 커튼들 사이에서 찾아낸 잘생긴 네 얼굴이,

환한 웃음으로 나를 반가이 맞았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한 마음에 조용히 너의 얼굴 이곳저곳에 입을 맞추면, 너는 식기 전에 어서 저녁을 먹자며 선반에서 기다리고 있는 식판을 가리켰다.


나는 훌러덩 옷을 갈아입으며 챙겨 온 음식들 중 어떤 것을 먹고 싶냐고 너에게 물었다.

네 컵에 음료수 한 잔을 따라놓고, 컵라면 하나와 식은 음식들을 접시에 담아 탕비실로 향했다.


탕비실 전자렌인지에는 이미 다른 사람들의 음식이 데워지고 있었다.


나는 그 옆에 접시를 내려놓고 어두워지는 바깥세상을 창문 너머로 내려다본다.

바로 가까이 창경궁에는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고 내가 방금 건너온 혜화동 대학로 거리엔 불금이 화려하게 번지기 시작한다.

먼 뒤쪽, 북한산 자락 아래 옛 성곽길 따라, 시간이 멈춘 듯 모여있는 북정마을 작은 불빛들이 희미하게 반짝거린다.


그 작은 불빛들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다.


저 희미한 불빛 중 하나쯤은, 언젠가 소반 위에 라면 한솥을 삶아 올리고, 어린아이들과 건장한 아빠가 함께 둘러앉아 나누어 먹는 작은 구들방을 비추지 않았을까 부러워하다가,


핸드폰을 꺼내 들고 집에 있는 아이들에게 전화를 한다.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가여운 마음들을 달래 본다.


아주머니 한분이 내 어깨를 두드린다.

"애기엄마 밥 이세 넣고 돌리오"


개수대에는 콧줄 경관식 환자의 비위관을 세척하는 간병인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병실에서 우리는 다행히 함께 따뜻한 음식을 입으로 먹었다.

너의 발치에 앉아 네 입에 이것저것 반찬을 넣어줄 때면, 너의 입 모양에 맞추어 내 입도 따라 벌어지곤 했다.


"오른쪽 발가락 움직여 봐 바"

나의 말을 듣자마자 기특하게 까딱거리는 오른발 엄지발가락에 우리는 키득거리며 즐거워했다.


린넨실 하수구에 너의 양칫물과 소변을 쏟아버리고 소변통에 소독약을 잠시 담가 두는 사이, 다시 북정마을 작은 불빛들이 눈에 들어온다. 반짝이는 집집마다 아이들이 엄마 아빠와 함께 포근한 밤을 보내고 있을 부러운 마음을 내어본다.


커튼으로 허락된 우리들만의 작은 공간에, 접이식 침상을 펴고 너와 나란히 누우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내 옆에 네가 이렇게 멀쩡히 숨 쉬고 있으니 불안한 마음이 모두 가라앉아 잠도 잘 왔다. 새벽에 새로 교대온 간호사가 체온을 재러 올 때까지 우리는 드르렁드르렁 코도 곯았다.


아침이면 너를 휠체어에 태워 샤워실로 데리고 갔다. 네 몸을 구석구석 닦아주며 나도 함께 땀으로 샤워를 했지만 빳빳하게 세탁된 새 환자복으로 갈아입혀놓으면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1층 카페로 내려가 아메리카노 한잔과 라테 한잔을 사서 마시며 그 아침의 여유를 즐겼다.


주말을 그렇게 실컷 보내고 돌아갈 시간이 되면,

‘잘 회복해 달라’는 간절함과 너를 두고 가야 하는 미안함을 빨랫거리와 함께 가방에 담았다.


너는 이제 다시 가야하는 나에게,

'잘하고 있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잘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나는 여전히 너를 두고 와서 미안한 마음이다.


동물원으로 왜곡되었다가 복원된 왕가의 깊은 조명보다,

젊음이 흐르는 대학로 화려한 불빛보다,

저 멀리 북한산 아래 아득하던 반짝임이 더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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