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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살게 해달라고 빌지 않았다.

고해

by 이쥴

조정기일이 열린날,

저는 상대편 변호사에게 물었습니다.


“애들아빠에게 직접 수임을 받으셨나요?

남편을 직접 만나봤나요?”


그 변호사가 클리어파일을 흔들며 말했습니다.

“어머님께서 오셨었어요.

아드님이 자필로 썼다는 요청서를 들고요.”


순간, 저는 반사적으로 손을 내밀었습니다.

목도 가눌 수 없는 전신마비상태의 남편이

글씨를 썼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직접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여러 번 보여달라고 요청했지만

변호사는 시선을 피하며 화제를 돌렸습니다.

그 글이 정말 그가 직접 쓴것인지, 그의 필체가 맞는지,

혹시라도 상태가 호전되는 건 아닌지,

일말의 희망이라도 붙잡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곧,

그것이 남편이 없는 자리에서

그의 이름을 빌려 만들어낸

또 다른 거짓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조정이 끝난 뒤,

자리를 뜨는 상대편을 우리 변호사가 쫒아갔습니다.


변호사는 그대로 서있던 저에게 돌아와 말을 전해주었습니다.

“이쥴님께서 시어머님 앞에 납작 업드려 빈다면 아들과 다시 살게 해줄 수도 있었다고 시어머니가 말씀하셨데요 ”


그 말을 들으며 저는 숨을 들이켰습니다.

화가 나거나 눈물이 나기보다는

이제 더 단단하게 다져지고 있는 마음의 무게가 느껴지는 듯 했습니다.




저는 빌지 않았습니다.


병원 로비에서 그들에게 둘러싸여 몰리던 날에도,

아이들과 함께 남편을 데리러 갔던 날에도,

그들의 험악한 눈빛과 번뜩이는 이빨사이로 쏟아지는 비난 앞에서도

저는 빌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집안 곳곳엔 그 사람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침대 옆에 그대로 놓인 보행기,

욕실 구석에 있는 목욕 의자,

옷장에 걸린 채 계절을 여러 번 넘긴 바지와 셔츠.

그리고 아이들 옆에 조용히 놓인 사진들.


문득 생각하게 됩니다.


만약 내가

‘같이 살고 싶다’고 간절히 빌었더라면,

우리는 조금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었을까요.


그 사람은 다시 옷장을 열어

환한 얼굴로 나와 아이들 앞에 설 수 있었을 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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