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상
어떻게 매일같이 눈물이 나올 수 있을까요.
우리가 느끼는 수많은 감정들 중에,
‘슬픔’이라는 감정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나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 감정은 다른 것들과 달랐습니다.
금세 치솟았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늘 그 자리에 앉아 조용히 나를 덮었습니다.
잠깐잠깐 잊혀질 때가 있었을 뿐,
슬픔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나는 혼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절절맸습니다.
이 감정을 달래야 할지,
외면해야 할지,
아니면 짜내듯 다 뽑아버려 없애야 할지.
오랜만에 만난 손님들 때문이었을까요.
함께 있어준 가족과 친구들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중간중간 털어 넣은 신경안정제 때문이었을까요.
혹은, 이별을 준비할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었을까요.
장례를 치르는 동안,
저는 오히려 차분히 모든 것을 치러낼 수 있었습니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은 차단되었고,
절차와 의례의 안내에 따라 아이들과 함께 바삐 움직였습니다.
삼 년.
삼년상을 만들어낸 옛 선인의 지혜는
아마 이런 것이었겠지요.
상실의 슬픔을 일상에 서서히 희석하는 데 필요한 시간.
잃어버린 사랑의 묘소 곁에 홀로 고요히 머물며,
애착분리 직후 저지를 수 있는 여러 실수를 막아주는 시간.
실제로 사별 후의 몇 년간,
사기를 당하거나, 중요한 결정을 잘못 내려 크게 후회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전문가들은 조언합니다.
배우자를 잃은 직후에는 이사나 매매 같은 인생의 중요한 선택을 되도록 피하라고.
삼 년.
저는 이미 내 나름의 삼년상을 다 치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꿰매다,
눈물에 흐려진 시야로 바늘에 찔렸다가,
겨우겨우 다시 박동하기까지 꼬박 삼 년이 걸렸습니다.
잃어버린 내 반쪽을 찾아 헤매던 시간과,
눈앞에 놓인 길이 어디로 이어질지,
혼자 이 길을 갈 수 있을지 벌벌 떨던 시간을 차례로 지나,
나는 어느덧 또 다른 순간에 도달했습니다.
내 기억이 온전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남편을 데리러 갔던 그날,
어쩌면 기억이 조각난 데에는 이유가 있을지 모릅니다.
왜 내 기억은 토막 나서 이렇게 맞춰지지 않는 걸까요.
아마도,
내 머릿속에 남은 고통은
내가 견딜 만큼만 남은 것이고 그것들을 정재하고 받아들이는데 꼬박 삼 년이 걸린 듯합니다.
삼 년 동안,
삶을 이어가기 위해,
내 몸이 스스로 지워버린 기억의 조각들이 있나 봅니다.
그럼에도 다행인 건,
좋은 추억들은 여전히 내 곁에 머물러 있다는 겁니다.
아이들과 함께 그 기억들을 꺼내며 웃기도 하고,
때로는 눈시울을 적시기도 합니다.
아직은 마냥 즐겁게 웃으며 이야기하는 시간이 멀게만 느껴지지만,
언젠가는 그런 날도 오겠지요.
조금만 더 시간이 필요할 뿐입니다.
삼 년.
삼년만 더 버텨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