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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작

by 이쥴


떠난 사람의 물건들을 정리하다 보면 내가 모르던 흔적을 발견하게 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익숙한 물건들은 함께했던 추억이 떠오르게 하지만,

낯선 물건은 내가 함께하지 못했던 순간들에 대한 미안함과 당혹감이 섞여 복잡한 마음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남편을 보내고 한 달 뒤,

그가 예전에 들고 다니던 가방에서 남편의 유작들을 발견했습니다.


소설 읽기를 좋아하던 남편은, 직접 소설을 써보겠다며 공모전 입상을 목표로 정성을 기울였던 때가 있었습니다.

공모전에 응모하기 전, 나에게 초고를 보여주고, 나의 의견을 묻곤 했습니다.

그는 내가 밑줄 긋고 첨삭을 더해준 문장들을 귀찮을 정도로 꼼꼼히 읽어보곤 했습니다.

고마워하기도 했고, 때로는 내 지적에 기분이 상하기도 했지만, 남편은 원고를 완성하고 공모전에 응모했습니다.

응급실 근무 경험을 녹여 쓴 그 이야기는 비록 탈락했지만, 더 완성도를 높여서 언젠가는 출판하겠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몸이 아프면서 그 꿈도 다른 여러 가지 들과 함께 접어야만 했습니다.


저는 그 원고 말고 다른 원고가 하나 더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남편의 49재 전, 그의 가방에서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작품을 발견했을 때, 저는 그 원고를 읽으며 얼어붙어버렸습니다.


아마도 남편의 병이 시작되던 시기에 써 내려간 글인 것 같았습니다.


그 소설은 한 과학자가 폐암 말기 진단을 받고,

"영원히 존재하고자 하는 욕망"에 착안해 정신을 다른 몸으로 이전하는 "육체 이식" 또는 "정신 이식"이라 일컫은 자신의 연구를, 불멸을 가능하게 할 기술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이야기가 담겨 있었습니다.

시간이 촉박했던 주인공은 자신을 이 기술의 첫 실험 대상으로 삼기로 결정합니다.

그리고 아내에게 실험의 실행을 돕도록 설득하죠.

아내는 도덕적, 법적문제와 남편의 죽음이라는 상황에 혼란을 느끼지만 결국 남편의 결정을 존중합니다.

그 과정에서 아내는 죄책감과 두려움, 그리고 실험이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립니다.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주인공 두 남녀가 겪는 감정적인 혼란을 읽으며 저도 다시 혼란에 휩싸였습니다.


저는 온몸을 떨며 남편이 스스로의 삶과 죽음을 깊이 고민한 흔적을 확인했습니다.




그동안 저는 남편의 심정을 스스로 상상하며,

주변의 위로 아닌 위로가 담긴 추측들과 함께,

애써 자위해 왔었습니다.

“그는 이런 마음이었을 거야.”

“아마 이런 생각으로 그렇게 했을 거야.”

하지만 결국 모든 게 내 입장에서의 짐작일 뿐,

그의 속마음은 그가 아니면 아무도 모른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죠.


그런데 그 유작을 읽으며,

그가 느꼈던 감정과 생각,

그가 정말로 바랐던 것들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슬픔과 미안함, 안타까움이 다시 저를 휘감았습니다.

그동안 내가 아무리 애썼어도 알 수 없었던 남편의 속마음이,

죽음 이후에야 내게 전해졌다는 사실이 참으로 고통스러웠습니다.


어쩌면 이 유작은 남편이 저와 삶에 대해 마지막으로 남긴 메시지일지도 모릅니다.

그는 자신의 두려움과 의지를 글로 풀어내며, 자신의 진심을 담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남편이 저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이 혹시 이것일까요?


저는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남편의 가방안에 그대로 넣어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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