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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못했던 이야기

by 이쥴


꽤 오랜 기간,

주변 사람들에게 나의 사정을 말하지 못했다.

연락이 와도 '잘 지내고 있다'정도의 간단한 대답으로 대화를 끝내곤 했다.


남편의 병명조차 알 수 없었던 시기에는 나아지고 있는 건지, 악화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기에 무슨 상황인지, 뭐라 말해야할지 혼란스러웠다.


시간이 흐르면서,

친구들과 나는 너무 다른 세계를 살게 되었다.

그들에게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나의 삶은 단순해졌다.

아침이면 무거운 몸을 일으켜 하루를 견디고, 밤이면 지친 몸을 눕히는 일이 반복되었다.

한때 친구들과 함께 나눴던 여유로운 순간들이 이제 내게는 먼 기억이 됐고, 더 이상 공감할 수 있는 일상들이 없어졌다.


나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과 공적인 이야기나, 시덥지 않은 스몰톡을 주고받으며 긴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보니 주변에서는 나의 오랜 괴로움을 어렴풋이 알고 있거나 혹은 전혀 알지 못하고 았었다.


내 소식이 전해지자,

많은 이들이 놀람과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상황을 전혀 몰랐던 그들은 과거에 나에게 건넸던 말을 떠올리며 미안함을 표현했다.


'이번 연휴에는 남편분께 아이들 좀 맡기세요'

'바깥양반은 이번 업무에 대해 뭐래?'

'누나는 뭐 형님 계시지만, 다른 남자도 만나고 싶은 생각은 없어?' 등등,

그간 나에게 별생각 없이 건넸던 말들이 지금의 나를 마주하며 무겁게 돌아온 듯했다.

나는 괜찮다고 했지만 그들은 거듭 사과를 멈추지 않았다.




나의 처지에 대해서도 각자 나름의 위로를 건넸다.


누구는 서류에 사망한 배우자가 없는 상태가 좋다고 하고,

누구는 이혼녀보다는 미망인이 낫다고 했다.


누구는 그동안 고생했다고 했고,

누구는 앞으로 힘을 내라고 했다.


누구는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했고,

누구는 잘 대처했다고 했다.


잘한 것도 없고,

잘된 것도 없다.


결국 나는 그를 버렸거나, 혹은 버림받았다.


찾으려고 했던 것을 영영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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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