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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권 Jul 22. 2019

우리는 '무엇' 이 되기 위해 노력해선 안된다.

직업과 직종에 대한 사회적 언급들은 그러한 '자신'의 명칭과 이미지를 보여주고, 규정한다. 
작가가 되는일, 사업가가 되는 일, 화가가되는 일, 게임디자이너가 되는 일, 등등
그러나 그건 실패의 길이다. 그러한 명칭과 이미지들은 그 '일'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수많은 조건과 책무, 한계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일면만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차라리 국가나 기관에서 그 일의 자격을 규정하고 부여하는 수많은 직업들, 법관이나 의사, 변호사, 약사, 교사 같은 직업은 그런 고민이 적겠지만 (본질과 명목상의 괴리가 그런 직업이라고 없겠나?), 자신이 정말로 어떤일, 특히 남의로부터 자격을 부여받는 일이 아닌 창조적인 일을 하려는 사람은 정말 조심해야 한다.
"그 일을 하는 사람" 이 되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냥 "그 일"을 하면서 정말로 그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일들을 몸으로 받아들이고 숨쉬며, 해결해야 만 하는 것이다.
우리는 '글쓰는 작가' 가 되려고 해선 안되고 '게임 디자이너'가 되려고 해선 안되고 '화가'가 되려고 해선 안된다. 그냥 글을 쓰고, 게임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규정되지 않고, 묘사되지도 않는 그 일 자체의 의미를 그 과정에서 받아들여야 한다. 
정말 그 일이 자신의 길인지의 여부는 오로지 이러한 과정으로만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사실은, 직종의 이름과 특징을 요약해서 가르치는 직업교육이 왜 헛된 것인지 알려준다. 
그리고 이것은 개인적인 차원 뿐 아니라 조직을 만들고 이끄는 사람에게도, 그 조직에게도 해당되는 일이다.
사회적으로 규정하는 이름이 아닌, 그 본질에 충실하고 있는가?
게임 회사라면, 좋은 게임을 만들고 세상에 내놓는 일이 모든 활동의 중심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옷을 만드는 회사라면, 특정 서비스를 하는 회사라면 그 회사가 존재하는 이유와 사업의 본질이 있을 것이다. 흔히 그러한 본질을 놓칠때 우리 자신과 그 조직의 일은 의미없는 것이 된다. 두려운 일이고, 나 자신도 뼈저리게 반성해야 하는 일이다.  

-이국에서 그간의 삶과 앞으로 나아갈 길을 생각하다 문득 떠올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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