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이 바뀌어서 이제는 집을 세를 주려면 임대사업자라는걸 내야 한다고 한다.
지난주에 임대사업자 등록증을 내려고 출근길에 자전거를 타고 해운대세무서에 갔다. 신분증만 있으면 되는 줄 알았더니 준비할 서류가 있다고 한다. 사업자등록 신청 용지만 받은 후, 미포항 전망 좋은 4층에서 위치한 해운대 세무서에 들린 김에 커피 한잔 뽑고 창가에서 해운대 바다를 즐기다가 회사에 출근했다. 해운대는 겨울에 더 좋다. 부산에 자리잡고나서 11년째 보는 바다지만 난 한 번도 질렸던 적이 없다.
주말에 서울 출장을 다녀오느라 사업자 발급 진행을 못하고 부산에 돌아왔다. 세금신고 전날이다. 다시 신청을 하려 필요서류를 알아보니, 인터넷 신청이 가능하다고 한다. 준비를 하다 보니 아차차 임대차계약서를 서울에 두고 온 것이 아닌가? 어머님께 맡겨놓고 그냥 온 것이다.
어머님께 부랴부랴 전화를 하니 여기 있다고, 어떻게 할까 말씀하신다 어머님 집에 스캐너 같은 건 없기에 송구한 마음으로 팩스를 보내주실 수 있냐고 했더니 걱정 말라고 하신다.
잠시 후 어머님이 아시는 한 사무실에서 팩스번호를 확인하시는데 "아이고 아드님인가 보네" "아 글쎄 우리 아이가~~~" 등등의 덕담이 들린다. 간단히 인사를 하고 팩스번호를 알려드린 후 대기를 하는데, 어? 팩스가 오질 않는다.
우리는 엘지 인터넷 팩스를 쓰고 있는데 이게 또 왜 안 오는 것인가 걱정을 하니 같이 일하는 직원이 원래 이게 실시간으로 오지 않으니 좀 진득하니 기다리라고 한다. 몇 분 후 드디어 도착. 이제 만반의 준비가 끝났으니 발급만 하면 된다. 어머님께 감사를 드리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임대사업자 등록 전용 사이트라니, 아 세상 참 편해졌다니깐,,, 하고 생각하며 정부에서 만든 렌트홈 사이트에서 아이디를 생성하고, 로그인을 하려 하는데, 로그인이 안된다. 분명히 아이디를 방금 만들었는데.
비번을 찾으려 하니 핸드폰으로 확인을 받거나 공인인증서 확인을 요구한다. 아이디 만들면서 공인인증서 등록은 한 일이 없고, 아이디를 넣고 문자 확인을 요청해도 문자가 오질 않는다. 브라우저를 크롬> 익스플로러>혹시 몰라 엣지로 바꿔가며 시도했으나 역시 오지 않는다. 그 와중에 키보드 보안 프로그램 문제인지 키보드 입력이 안되던데 이것 때문인가?
결국 홈페이지에 나온 번호로 전화를 해서 상담사와 여러 가지 가능성을 검토했다. SMS 등록이 잘못된 상태로 가입만 진행됐을 가능성, 그리고 브라우저의 팝업 설정 문제일 가능성과 그 해결 방법에 대한 기술적인 문제를 의논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키보드 보안 프로그램의 버그 문제를 불평했고 상담사의 충분히 공감한다는 말에 위안을 받았다. 전산화는 올바른 방향이지만 그게 정부 주도로 자리 잡는 과정에서 퇴직공무원과 SI 업체들과의 이해관계 때문에 생기는 이상한 생태계가 사람들의 접근성을 떨어뜨린다.
인내심 강하고 친절한 상담사의 전화안내와 함께 브라우저를 바꿔가며 다시 시도하던 중 비번이 안 나오자 둘이 함께 고민하다가, 상담사와 나는 아예 가입정보를 통째로 삭제하고 다시 가입하는 게 현 상황에서 최선이라는 결론에 함께 도달했다. 상담사의 요청으로 개인정보를 다시 불러줬더니 상담사가 진정한 문제를 발견했다.
내가 가입할 때 아이디의 스펠링 하나를 틀린 것이다. 틀린 아이디로 접속해 들어가니 진행은 가능한데 영 마음이 찜찜하다. 아마 언젠가 이 사이트에 다시 들어오게 되면 아이디 가지고 헤매다가 또 찾게 되리라.
자신의 직무에 충실할 뿐만 아니라 나 같은 띨띨한 내담자에 대한 봉사심과 인내심마저 갖춘 상담자에게 아이디를 수정할 수 있냐고 물었더니 개인정보 수정 란을 안내해줬다. 통화를 하며 개인정보란으로 들어갔는데 아이디 변경은 활성화가 안된다. 결국 상담자는 아마도 탈퇴를 한 다음에 다시 생성하는 것 밖에 방법이 없다고 말해줬고 동감한 나는 이제 내가 알아서 하겠다고 감사하다고 말하며 긴 통화를 끝냈다.
아이디를 탈퇴하고 다시 가입을 진행하는데 가입하고 나니 과연 신청을 하면 바로 사업자등록이 나올지 걱정이 된다. 해운대 세무서에 전화를 해서 물어보려는데 통화가 안된다. 통화를 3번 시도했으나 대기만 하다가 통화량이 많아 통화가 어려우니 다음에 걸어달라는 멘트와 함께 계속 전화가 끊긴다. 머리를 써서 대표전화가 아닌 해운대 민원실 사업자등록 담당자 개인 직통번호를 확인하고 거기로 거니 걸린다.
"인터넷으로 임대사업자등록증을 신청 중인데요, 안내를 보니까 신청 완료하면 발급 후 연락이 온다고 되어 있던데, 신청 후 발급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리나요?"
"임대 물건이 이 지역인가요?"
"아니요 서울입니다."
"그럼 저희가 말씀드릴 수가 없어요. 그건 저희가 발급해 드리는 게 아니라 해당 주소지의 세무서가 발급하는 거라 저희도 요청을 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그럼 혹시 제가 직접 세무서 가서 서류로 제출하면 조금이라도 빨라질까요?"
"별 차이는 없어요 시간은 주소지 세무서가 얼마나 빨리 해주느냐에 달렸습니다. 며칠 걸릴 수도 있죠."
낭패다, 지금 사업자등록을 한다고 하더라도 이게 제시간에 나온다는 보장이 없는 게 아닌가? 아무리 세상이 좋아지고 빨라졌지만 중요한 프로세스는 역시 사람이 확인하고 승인을 해줘야 하는 것이다.
이미 5시를 넘긴 시각이 되어 세무사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담당 직원분이 퇴근하셨다고 한다.
올해부터는 5시 퇴근이고 전화받은 분도 막 나가려던 참.
실례를 무릅쓰고 담당 직원분 개인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어 양해를 구하고 임대사업자등록증이 늦게 나올 경우에 대해서 문의를 했다.
"아 렌트홈에 아이디 다 만들고 신청만 하면 되는데 여기서 걸리네요"
거래하는 세무사무소에서 근 8년째 나를 전담 마크하고 있는
항상 친절하고 목소리가 예쁜 담당 직원분이 밝은 목소리로 알려준다.
나는 이분의 얼굴을 본일이 없다.
"어? 개인 임대사업자 등록하시려고 렌트홈 가입하실 필요 없어요. 그냥 홈택스에서 하시면 되는데."
으음...
나는 항상 공사 다 망한 사람이라 이것 말고도 할 일이 있기에 이런 일에 쉽사리 절망하지 않는다. 지나간 일에 후회를 하는 것은 돌부리에 발을 찧었다고 돌을 탓하는 것이다.
아내에게 오늘 늦는다고 전화를 했더니 그렇게 일이 많냐고 한다.
원래 바쁜 사람이 아닌데 일이 많긴 하다. 이번 달 말에는 파트너사가 온라인으로 보드게임 컨벤션을 여는데 마치 마인크래프트 하듯이 접속해서 사람들과 이야기하거나 같이 보드게임을 할 수도 있다. 신작 보드게임을 디지털로 체험 가능하도록 만드는 것. 그리고 가상세계를 꾸밀 3D 에셋을 만드는 것이 내가 하고 있는 일이다.
부산항에는 신작 보드게임들과 1년을 끈 프로젝트의 마지막 매듭인 AS부품이 도착했다. 설날 연휴 이후에는 각각의 도착지로 보내질 수 있도록 미리 세팅을 해 놓아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오늘 신규로 임대사업자등록을 내야만 하는 것이다. 대략 설명을 했더니 아내가 말한다.
"아 주택 임대사업자등록?, 그거 작년에 내가 자기거 발급했잖아? 내가 사본 보내줄게"
가끔,
결혼 같은 거 안 하고 아내 없이 살았어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생각만 한다. 적어도 지금보다 인생살기가 훨씬 힘들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