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의 본질을 보면서도 뒤집지 못하고 있는 내가 바로 개새끼이다.
당당하기도, 비열하기도 한 비웃음을 띈 표정으로 사람을 쳐다보는 얼굴과 한국에서 터부시된 빨간색으로 휘갈겨 쓴 듯한 이름이 떡하니 들어간 포스터가 인상적이어서 꼭 한번 보고싶었던 영화였다.
개봉 몇주전부터 보겠노라고 심군에게 으름장(?)을 놓았는데 그렇게 하고는 놓친 대부분의 영화들과는 달리 박열은 개봉한 지 얼마안되 챙겨보게 되었다. 왕의 남자로 매우 유명한 감독임에도 불구하고 사실 감독의 이름은 내 머리속 들어오지 않았다.
역사의 실존인물을 주제로 한 영화나 드라마는 늘 그렇듯 시작하기 전부터 그 사람에 대한 온갖 정보들이 스포(적어도 그 사람의 연대기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스포...)와 함께 인터넷상에 돌아다닌다. 역사에 무식한 역사학과(...)로써 복원된 사진이나 기타 등등을 스포를 감수하면서 읽어보고는 했다. 뭐 언제나 그렇듯 이렇게 잊혀진 분들이나 사건들을 재구성해서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을 영화가 하는 거기도 하고, 실존인물의 영화의 경우 실제 사건보다는 그 극의 구성을 더 중심으로 보게 되니까. 어쨌던 그간 습득했던 정보들을 생각보다 많아서 (많은 것인지 아니면 오히려 없어서 많아 보이는 건지) 영화의 흐름은 얼추 영화를 보기 전에 알았다.
억압하려는 시스템의 본질을 보면서도 뒤집지 못하고 있는
내가 바로 개새끼다.
개새끼라길래 눈에 뵈는게 없이 아무나 붙들고 싸우고 죽이고 난교하고 그런 영화를 생각했다면 여러분은 잘못된 매체를 접하시거나 잘못된 정보를 받으신 겁니다. 그런 매체는 멀리하고 차라리 제 브런치를 보는게...(응?) 줄거리는 다들 아실거니 패스.
사실 관동대지진-조선인 대학살 사건과 박열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정확히 몰랐는데 영화를 보면서 그 부분이 어느정도 풀렸다. '우물에 독을 타 일본제국을 혼란시키는 조선인'의 희생양으로 당시 불령사의 수령이었던 박열이 지목된것. 영화를 보면 박열의 눈치가 끝내준다. 사람의 미묘한 반응이나 그 당시 정세를 잘 파악해서 순간 핵심을 뚫고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박열의 능력이었던 것이다! 거기에 후미코라는 정신을 같이 나눌 수 있는 동지이자 동반자라니! 게다가 박열과 대등한 위치로써 당당하게 자신을 표현하고 같은 일본인에게 대항할 수 있는 그 기지가 멋있었다. 뒤에 어떤 이야기가 들리든, 어디서 헤어지든 아마 그 둘을 이어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은 주 악역으로 나왔던 내무대신 미즈노가 박열을 압박하는 방식이었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국민을 압박하는 그것과 닮아있었단 느꼈다. 관동대지진 사태의 모든 스토리를 만들어 내는 사람으로써 그는 고비가 있을 때마다 하석상대한다. 제일 압권이었던 것은 조선인학살진상규명위원회(?)같은 것을 만들어 하는 시늉만 하다가 사람들이 지쳐 떨어지길 원하는 장면이었는데, 그것이 마치 세월호 유가족이 받았던 대우가 연상되 소름 끼쳤다. 어쨋든 박열과 후미코는 씌워진 죄를 받고 사건을 키워 묻힐 뻔한 조선인 대학살을 알릴려고 온갖 퍼포먼스 -사실은 박열과 후미코는 정치가이며 예술가이다.- 를 한다. 물론 그것도 일본내에선 언론통제(또 어딘가 생각나지 않는가?)로 묻히지만. 이런걸 보면 현재 우리나라의 시스템은 아직 일제강점기를 벗어나지 못했구나 생각했다.
영상미야 이준익 감독은 알아주는 사람이니 더 말할 것도 없고 약간 지루해질 만 하면 사건이 하나씩 터진다. 잔인한 장면들도 거슬리지 않게 만든 매력도 있다. 오랜만에 영화 중간에 몇시나 됐는지 시간을 볼 필요가 없었던 영화였다. 한번쯤보길 추천한다.
박열의사는 22년을 복역한뒤 미군에 의해 풀려나 독립운동에 매진하셨다. 한국전쟁이후 납북되어 이후의 행적을 알 수 없다. 하지만 1990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받으셔서 그간의 공을 인정받았다.
끝으로 박열과 후미코의 첫만남 계기가 됐던 시.
개새끼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하늘을 보고 짖는
달을 보고 짖는
보잘것없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높은 양반의 가랑이에서
뜨거운 것이 쏟아져 내가 목욕을 할 때
나도 그의 다리에다
뜨거운 줄기를 뿜어대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박열-
예술가의 어쩔수 없는 재능과 행동력이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