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을 걷다가 만나다.
갓 통역안내사 자격증을 딴 둘이 새로운 걸 해보겠다고 팔랑팔랑 거리며 한양도성을 돌아다닌다.
중국어와 영어로 언어가 다른 우리는 한양도성을 돌아다니며 서로 맞이하게 될 여행객들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우리가 같은 방향을 바라보면 얼마나 괴리가 느껴지는지 슬슬 깨닫고 있었다.
이른 5월인데도 산에 오르면 찌는 듯한 더위가 엄습해 오던 시점에 성북동에 내가 좋아하는 코스를 돌아다니다 어디쯤에서 한양도성으로 넘어가는 길을 만난다. 거의 사람들이 오지 않는 한양도성의 길, 청와대의 뒤쪽이라 신분증을 구비해야 하고 산세가 험해서 한국사람들도 자주 오지 않는 길인데 하얀 머리에 파란 눈의 사나이가 보인다.
슬쩍슬쩍 여기 올라가려면 여권이랑 등록을 해야 한다, 너 어떻게 여길 알고 왔느냐 하면서 호기심을 주체 못 하고 말을 건다. 그 중년의 사람은 약간의 등반에도 목이 탔는지 1.5리터의 페트병에 담긴 물을 벌컥벌컥 마시면서 살짝 경계를 하는 눈빛으로 쳐다본다. 먼저 수속을 밟고 올라가도 되는 것을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영어로 말한다 치고는 은근히 기다렸다가 보조를 맞춰서 이동해 본다.
숙정문이 보일 때까지 올라갔는데도 지쳤는지 1.21 사태 소나무가 있는 곳 어디까진가 갔다가 삼청각으로 이동을 해야 하겠다고 하더니 은근슬쩍 그보다 더 높은 눈에 보이는 곳으로, 이야기를 이것저것 하다가 보니 산 정상까지는 올라갔다가 내려오겠다고 조금만 더 가겠다고 한다.
영어 관광통역안내사가 손짓 발짓해가며 여기는 사진 찍어도 되는 곳 이곳은 이런 풍경 저건 저런 곳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며칠 한국에 있었던 사람인지라 유명한 건물만 이야기하면 대충 어디인지 알아맞히곤 하더라.
사실 그때 같은 장소에 무언가 묻고 싶어서 지도를 들고 얼쩡거리던 다른 백인이 있었는데, 이야기에 집중을 하느라 신경 쓸 겨를이 없었지.
신기하게도 한양도성, 적어도 4대 산이라고 불리는 곳 중 산세가 험한 두 곳, 인왕산과 북악산은 항상 한국인 외에 파란 눈의 외국인밖에 눈에 띄지 않더라. 유명하지 않고 힘들어도 가고 싶으면 가는 특성과 자연과 현대와 낡은 것이 함께 있는 풍경을 좋아하는 것이 합쳐져 만든 시너지라고 해야 하나.
정상에 올라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사진을 찍다가 곧 가야 될 시간이 온다고 해서 위챗 아이디를 나누고는 삼청각으로 가기 위해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