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터널 선샤인

by 이지 EZ

Eternal sunshine of spotless mind.

사랑이 한번 지나간 자리에 그 흔적이 없는 순수한 마음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하는 명제로 시작되는 영화.

이 영화를 맨 처음 봤을 때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시간에 따라 뭉그러지는 여자의 기괴함과 어딘가 쫓기듯 돌아다니는 씬들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뭉그러진 얼굴이 어쩐지 뭉크의 절규를 생각나게 해서 그 씬 이외에는 머릿속에 남지 않았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본 이터널 선샤인은 이야기나 메시지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보게 되었다. 아마도 시간이 흘러 인생이나 사랑의 경험치가 쌓여서 일까. 그냥 일상 판타지로만 느껴졌던 이터널 선샤인의 메시지는 사랑에 대한 쌉싸름함을 하나 더 해주었다.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지우고 싶은 지나간 사랑의 이야기들. 머릿속에 새겨진 흔적들을 지운다고 해서 마음에 새겨진 흔적들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 이성으로 감정을 제어할 수 있다고 하지만 마음에 남은 흔적들을 받아들이고 충분히 아파해야 이성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지워지려는 추억들을 좇아 그 추억들을 어딘가로 숨기려 하는 절박함은 결국 그런 데서 오는 게 아닐까. 사랑의 흔적이 자연스레 희미해질 수 있는 충분히 아파할 수 있는 시간. 아무리 인위적으로 삭제하려고 해도 이별은 그 시간이 지나야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미셸 공드리의 어눌하지만 치밀한 CG로 보여준다.

지워진 기억들은 있지만 마음에 남은 희미한 감정의 흔적들은 대체할 수 없는 기억들로 남는다. 그들은 그랬고. 나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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