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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 EZ Jul 14. 2023

4. 달마야 놀자

수행, 공부, 힐링, 은둔?!

영화 ’달마야 놀자‘에서 두 조폭 패거리가 구역싸움을 한다. 박신양이 중간보스로 있던 패거리가 수세에 몰리자 그들은 승합차를 타고 도시를 벗어난다. 당시는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없던 시대라, 공중전화로 보스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이대로 돌아가면 소위 ’별‘을 달 것이 뻔했다. 멀지 않은 산속에 사찰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그들은 무작정 들어가 스님들에게 며칠 지내야겠다는 선전포고를 한다. 수행의 공간에 외지인이 들어오는 것도 마뜩잖은데 심지어 조폭이라 모든 스님들이 반대하지만, 큰스님은 그들을 받아들이기를 결정하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왜 하필 조폭이 스님들의 세계에???라고 생각이 드는 어찌 보면 굉장히 엉뚱한 조화다. 불법을 공부하며 조용한 곳에서 속세에 벗어난 수행자의 삶을 사는 스님과 무척이나 속세적이며 향락을 쫒는 조폭과의 공통점은 단지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밖에 없어 보인다. 하지만 간혹 문신 스님들의 이야기나 자리싸움을 하는데 용역깡패-혹은 보디가드-들이 들어와 유혈사태가 일어났다는 기사들이 아직도 회자되는 불교계의 암묵적인 이야기라 아예 상상을 못 해본 조합은 아니다.


 도시 내에 쉽게 사람들이 접근 가능한 동남아의 사찰들과 다르게 한국의 사찰들은 도시와 멀리 떨어진 산속에 들어가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굽이굽이 산천 타고 하루 4~5대 운행하는 버스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벽지에 있어서 웬만한 불심이 아니면 가기 힘들다. 사찰이 이렇게 산에 숨은 이유는 조선시대 숭유 억불 정책 때문이다. 1000여 년 이상을 한반도에 국교로 있었던 불교가 고려말 정치와 결부된 폐단의 끝을 달리자, 유교를 정치이념으로 삼은 조선이 등장했다. 그리고 불교의 모든 색을 없애기 위해 한양도성 안에 있는 사찰을 밀어 내버렸다. 또한 지방에서도 큰 도시 단위에 있는 사찰들을 흡수해 대부분 서원이나 향교로 바뀌었다. 그래서 지금은 역사가 오래된 사찰을 방문하려면 어느 지역이고 산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접근성이 쉽지 않은 덕분에 난세에도 사찰이 고유한 모양새와 풍습을 유지할 수 있어서 유네스코에 등재된 것은 우연과 의지가 결합된 필연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듯하다.

어쨌든, 먼 여행을 해야 하는 사찰에 들어가면 저절로 도시의 유혹과 자극에서 벗어나 고요함과 직면하게 된다. 사람의 접근도 많이 없고 전기도 통하지 않을 만큼의 산골에 있기 때문에 - 요즘도 전화가 터지지 않는 사찰이 있다.- 한 가지에 집중하기 매우 좋은 환경이기도 했다. 그래서 한국의 역대 대통령 중 법대를 나왔다고 하는 분들은 사법고시 통과를 위해 사찰에 들어가 몇 개월이고 공부에 매진했다는 이야기들이 자서전에 수록되기도 한다. 달마야 놀자에서 배우 김영준이 고시생으로 등장한 것이 우연이 아니다. 어느 한적한 절에는 한 명씩 학력고사(현재 수능 같은 시험)나 사법고시등을 준비하는 사람이 한 명쯤 있었던 시대였다. 당시는 책과 의지만으로 공부해도 고시합격은 충분히 가능한 시절이었지만, 요즈음처럼 인터넷 강의를 듣지 않으면 공부를 하기 힘든 세상에서 사찰에서의 은둔공부는 스님들이 오히려 말리는 추세이다.

뿐만 아니라 사찰이 비록 사람의 손길이 닿아있어도 굉장히 자연 친화적인 공간이다. 템플스테이를 가면 포행 - 명상 후 사찰 주변을 산책하며 에너지를 정리하는 시간-이 기본적인 프로그램으로 들어가 있다. 한적하고 사람이 없는 곳에서  높은 나무와 맑은 공기는 즐거움을 준다. 게다가 육식을 금지하며 소규모 논밭을 경작하거나 장을 직접 담그는 사찰의 특성상 높은 확률로 유기농 채식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어느 조용한 사찰과 암자는 요새처럼 요양원이 따로 없던 시절에 지병을 가진 분들이 요양을 하는 공간이 되기도 했다.


“저희들을 이렇게 감싸주시는 이유가 뭡니까?”

처음의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달마야 놀자의 두목 재규(박신양)와 그의 부하들은 속세의 습관을 버리지 못해 사사건건 스님들과 부딪힌다. 가뜩이나 마뜩잖은 시선을 가지고 있는 젊은 스님들은 자신들의 수행과 일상을 깨는 조폭들에게 실력행사를 한다. 재규는 아무리 말썽을 피워도 자기 수하의 제자들보다 굴러들어 온 자신들을 감싸주는 주지스님에게 질문을 던졌다.

“너 밑 빠진 독에 물 채울 때 어떤 생각으로 채웠어?”

“그냥…. 항아리를 물에 던졌습니다.”

“나도 밑 빠진 너희들을 내 마음에 던졌을 뿐이야."

거의 모든 내기에서 연속해서 져서 사찰에서 쫓겨나게 생긴 조폭일행에게 주지스님은 밑 빠진 항아리에 먼저 물을 가득 채운 쪽의 의견을 들어주기로 한다. 주지스님은 자신의 생각대로 말빨(?)로 때우려 한 스님 쪽보다 밑 빠진 항아리를 물에 던져버린 재규 일행의 손을 들어주며 망설임 없이 이유를 말해준다.

 대승불교의 여러 종파에서도 선종의 영향을 많이 받은 한국불교의 수행법은 항상 화두가 중요하다. 내가 드는 질문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한 근원을 한번 생각해 보는 것이다. 대부분 화두에 관한 일화는 제자의 고민을 들은 스승이 전혀 예상치 못한 엉뚱한 대답을 해주는 것으로 이뤄져 있다. 삶을 살아가는 데에는 정답지가 없다. 때문에 항상 내 현재 위치와 상황을 고려하여 어떤 생각을 하는지 나아갈 방향은 무엇인지 고민하지만 고민 후의 선택이 항상 원하는 방향으로 나온다고 할 수는 없다. 우리 안의 생각패턴은 대부분 정해져 있어서 다른 시각을 가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가 새삼 스님들의 대화를 찾고 치유를 받는 이유는 뭘까? 창의력과 상상력이 중요한 이 세상에서 알고 있지만 부정하려고 하거나 전혀 생각지도 못한 생각의 패턴을 인정하고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누군가 필요했던 게 아닐까? 밑 빠진 재규를 마음에 담은 주지스님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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