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회, 인연, 그리고 관계주의
물 위에 지어진 작은 암자에서는 노승과 동자승이 살고 있다. 그들은 삶의 사계절을 그곳에서 난다. 속세를 벗어나 고요할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암자의 사계절은 그렇지 않았고, 그곳에서 노승이 된 동자승은 윤회의 고리를 벗어나지 못한 채 또 다른 봄을 맞게 된다.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줄거리이다. 영화를 좀 본 사람들에게 2000년 이후 나온 영화 중 불교적 색채가 가장 잘 드러난 한국영화가 무엇이냐고 묻는 다면 아마도 이 영화를 손에 꼽을 것이다. 불교의 핵심인 윤회론을 큰 줄거리에서 잘 보여주고 작품이다.
한 때 해외 유투버가 한국에서 한 실험 하나가 화제가 되었다. 그는 카페에 혼자 들어가 꽤 값이 나가는 노트북과 지갑 등이 든 가방을 테이블에 두고 밖에 10여분 돌아다녔다. 물론, 가방이 놓인 자리는 짐을 지켜줄 사람이 없는 상태였다. 다른 나라였다면 이미 중요한 물품들이 없어지고 남았을 텐데, 그의 가방은 그대로 있었다. 다른 유투버들이 비슷한 실험을 몇 번 더 했었는데 결과는 언제나 비슷했다.
또한 의지와 효율성의 극치를 이루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일본 어느 공항에서 이미 탑승한 비행기의 이륙이 취소되어 다음날 비행기를 타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공항에 체류해야 해서 해당 항공편에 탑승했던 사람들의 여권을 걷어 도장을 찍고 돌려주는데, 외국이름이 익숙지 않았던 일본 직원이 호명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기다리는 시간이 아까웠던 한국인 하나가 직원의 양해를 구하여 한국 여권을 구분한 다음 한국이름으로 호명을 하고, 멀어서 못 받은 사람들은 앞에서 받아 넘겨주어 일사천리로 일이 끝났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어느새 공항에서 가장 자기 편한 자리에 진을 치고 자고 있었으며 다음날 아침 항공사에서 제공한 맥모닝 쿠폰으로 아침을 먹고 있었더라는 이야기였다.
“우리나라는 일본의 집단주의와는 다른 관계주의 문화입니다.”
위의 말은 EBS의 세상을 바꾸는 시간(이하 세바시)에 나운 허태균 심리학자의 강의에서 나온 의견이다. 우리나라는 일본과 비슷해서 자주 비교되는데, 심리학의 연구결과는 서로 다른 양상을 보인다. 일본의 집단주의는 집단이 가는 방향이 나와 달라도 집단에 순종해 의견을 피력할 수 없지만, 우리나라는 집단이 가는 방향과 자신이 가는 방향이 다르다면 자신의 의견과 권리를 피력한다. 그리고 그 행위는 집단안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함으로 보았다. 때문에 일본의 집단주의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성향을 해석하려고 시도하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 수업의 요지였다. 물론 내가 들었던 것은 수업의 일부였고 사람들의 성향은 한 가지만으로 정의될 수 없다. 하지만 친구와 식사를 할 때 서로 무엇을 먹고 싶은지 묻고 상대의 대답에 따라 내 메뉴를 바꿔 서로 나눠 먹는 다던가 하는 예를 들으며 한참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난다.
이 때문에 허태균 심리학자는 ‘서양 사람들이 보기에 한국인은 일관성이 없게 느껴질 수 있다 ‘는 표현을 했다. 개인주의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고 책임도 자신이 진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자신의 권리만 챙긴다고 보기엔 대의를 위해서 포기도 잘한다. 언뜻 존재감의 이야기와 권리포기의 이야기가 다른 것처럼 느껴지지만 한국인에게 그 두 개는 동음 이의어이다.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다는 것이 타인에게 영향을 주고 싶다는 이야기고, 타인에게 영향을 끼치기 위해서는 권리의 일부를 포기할 수 있다. 어떻게 존재감을 드러내고 권리를 포기함으로써 타인에게 영향을 준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한국인은 대체로 ‘연기적’ 관점으로 사고를 한다. ‘연기’란 ‘인연생기’의 준말로 발생된 모든 일들은 서로의 원인으로 존재하여 연결되어 결과가 된다는 불교용어이다. 오랜 세월 동안 행동을 하기 전에 행동이 미칠 영향에 대해 사고를 하고 행동하는 것이 관습처럼 학습되어 있다. 과학으로 이야기하자면 원인과 결과를 생각하며 행동한다는 것도 비슷하다. 때문에 선한 일을 하면 선한 결과가 나쁜 일을 하면 나쁜 결과가 일어는 권선징악적인 관점이나 지금 생에서 하는 일들이 원인이 되어 윤회가 결정된다는 불교의 논리와도 연결된다. 하지만 다음생에 업을 받기 위해서 지금 선한 일을 하는 것만으로는 좀 싱거워 보인다.
카페나 길거리에 놓고 간 가방을 건드리지 않는다는 것이 CCTV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CCTV가 ‘자전거만 빼고 모든 것이 안전한 나라’라는 타이틀을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CCTV가 문제였다면, 자전거도 훔쳐가지 말았어야 한다. 대체로 안전한 상황들은 ‘이것을 잃어버리면 이 사람이 곤란할 텐데’라던지 ‘내가 잃어버려도 다른 사람이 찾아주리라’는 사고에서 시작된다. 또한 직원이 마땅히 해야 할 일’-한국인의 여권을 미리 거둬 사람들에게 나눠준다던가, 도로에 차의 전복으로 쏟아진 병들을 한데 모아 치우는 행위‘를 한마음이 되어서 하는 것은 그 행위를 했을 때 얻어지는 결과는 모두가 만족스럽기 때문에 노력을 들이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워낙 이런 관점에서 일을 하다 보니 효율적인 면을 추구하게 되고, 한국인과 일을 했던 사람들은 크게 만족했더라…는 이야기도 더러 나온다. 즉, 연기적 관점의 사고는 현재 상황에서 조금의 노력으로 가장 빠르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해주는 도구이기도 하다.
간혹 연기적 사고가 단점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생각이 많으면 보통 부정적으로 빠지기 마련인데, 부정적 사고에 빠지면 일어나지 않은 일들을 걱정을 하며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게 된다. 혹은 아직 나비의 날갯짓에 미치지도 않은 것을 스스로 과대포장하여 마치 이미 큰 영향이 된 것 마냥 행동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다면, 가게에 가서 내가 누군지 알아를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는 진상들을 생각해 보면 될 것이다.
윤회를 표현한 영화는 감독의 이름값만큼 아름다웠지만, 그 감독은 추문만큼 마지막이 좋지 못했다. 불교의 방식으로 이야기하다면, 그의 업대로 살다가 업보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다시 봄이 되었다. 사계절의 이름이 들어간 문화 콘텐츠가 그렇게 많고 그 이름이 들어간 콘텐츠들은 항상 어떤 일이 일어나건 시간은 여전히 흐르고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어쩌면 인연대로 돌아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한국인의 생에 대한 태도가 그대로 녹아들어 간 사계절이기에 한국인들은 사랑하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