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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니 Mar 21. 2024

나의 갑상선 해방일지

"시작하는 이야기"

전라남도 장성.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출장길이다.

이번 프로젝트는 유방암경험자부터 함께 콜라보하는 채소수 제품으로 원료부터 공정까지, 작년 하늘로 가신 아빠 생각을 하며 정말 공을 많이 들이고 있다. 서울로 올라오는 srt안 다른 업무로 메이가 연락이 왔다. 뭐 우리는 늘 매일같이 서로의 안부와 업무로 통화를 하는 사이니 이날의 전화 역시 내게는 특별할 건 없었다. 한 통의 연락을 받기 전까지는 말이다.


"병원에서 전화 들어오네?나 지난주 토요일에 정기검진 때문에 휴가 냈었잖아. 검사받은 결과 나왔나 보다. 요즘은 생각보다 결과가 엄청 빠른가봐. 별거 없어서 그런가? 끊고 내가 다시 연락할게 메이*①"

"안녕하세요 건강검진받으셨던 내과입니다. 결과가 나와서 연락드려요"

"아 네네"

"조직검사 결과가 좋지 않아서요"

"암입니다"


2022년 1월 18일, 달리는 기차 안에서 나는 울고 또 울었다.

한통의 전화와 함께 그렇게 나는 갑상선암 경험자*②가 되어 있었다. 이 상황이 허탈하고 그저 웃긴데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여느 소설이나 영화에서 보았듯이 가장 먼저 가족들이 떠오르고, 아직 정신을 못 차렸는지 당장 집에 가서 밤새 써 내려가야 할 사업계획서와 업무메일도 생각났다. 당장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머리가 백지장처럼 하얗게 됐다가 그 백지장에 해야 할 일을 쓱싹쓱싹 썼다가 또 잊었다 썼다를 반복해 나갔다.

내가 기억하는 그날은 정확히 그러했다.




갑상선암을 알게 되고 2년여 시간이 흘렀다. 지금에까지 수술에 불안했던 마음들과 치료에 고단했던 날들이 있었다. 호르몬의 날뜀 속에 이유 모를 우울감이 생기는 때도, 매일같이 먹어야 하는 호르몬제가 지겨워지는 날도 물론 있다. 이 모든 것들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졌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암'이전과 이후에는 많은 것이 긍정적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지금 나는 이전보다 더 평온하고 풍요로운 삶을 산다. 치열함만이 그리고 이루어낸 성과만이 대단한 삶이라는 생각에서 조금은 벗어나게 되었고, 남을 위해 사는 것을 과감하게 그만두고 (여전히 쉽지는 않지만) 나는 나를 위해 살아간다.


갑상선암을 경험하며 많은 변화들을 공유하고 같이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와 응원이 되는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해 왔다. 갑상선암은 암중에서도 별거 아니라던데? 내 글을 누가 필요로 할까? 싶어 선뜻 글을 쓰지 못했지만 나는 이제 용기를 내기로 했다. 내 문장 하나로 함께 눈물을 흘려줄 누군가를 위해, 수술의 과정이 어떠한지 궁금한 사람을 위해 수술과 치유 그리고 그 이후의 과정에 필요했던 정보들이 작게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나 그리고 단 한 명의 독자라도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누군가를 위해 2024년 3월 21일 나는 나의 갑상선 해방일지를 시작한다.




*1. 우리 회사는 오그라들지만 서로의 영어이름을 쓴다.

*2. 경험자는 암을 진단받은 적이 있는 모든 사람을 뜻합니다. 최근에는 치료 이후의 삶이 중요해지면서 암환자라는 표현 대신 암경험자라는 표현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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