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리니 Mar 28. 2024

얼룩이 나비

"갑상선의 기능과 증상에 관하여"

"환자분 갑상선에 결절이 있어요.

여기 얼룩덜룩 한 모양 보이시죠?"


대학시절 즈음인가 우연히 알게 된 갑상선 결절 소식 이후로는 매년 엄마의 잔소리는 연중행사로 이어져온다. 내심 나도 처음에는 신경이 쓰였는지 인터넷으로 '갑상선 명의'가 있는 로컬 병원을 찾아 꼬박꼬박 초음파 검사를 받았다. 결절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내 갑상선에 금이 간 건가 싶었는데, 이 세계에서는 '갑상선에 생긴 혹 = 갑상선 결절'이라 불린다. 실금이라도 간 모양인가 싶지만 실시간으로 보이는 흑백의 초음파 영상에서도 뚜렷이 보일 정도로 그 색이 얼룩덜룩하고 거친 모양새가 달 표면 같기도 하다.*① 단순 염증이 아니라 결절이라는 의사의 소견에 그리 큰 타격감은 없었지만, 매년 들어야 하는 엄마의 잔소리로 인한 피로감은 꽤나 성가시게 다가온다. 



"대전 고모 갑상선 약 먹고 있다던데,

아빠네 식구들 갑상선 가족력 있는 거 알지?

바빠도 너가 알아서 가끔 초음파 찍고 검사해봐. 알았니?"


썩은이는 빼고, 살이 찌면 다이어트를 하고, 기미가 생기면 피부과에 가서 레이저를 빼는 등 살면서 대부분의 증상은 해결책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마련. 하지만 갑상선 결절은 피검사상 특별한 이슈가 없는 한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없다. 의료계의 매뉴얼상 매년 추적검사를 권하는 귀찮음만이 있을 뿐. 병원에 가도 딱히 원인과 관리가 없으니 스트레스받지 말고 잘 먹고 잘 자고 운동 열심히 하라는 정석 같은 말만 들을 뿐이다. 




나는 내 일이 늘 좋았다. 멋진 커리어 우먼으로 살아가는 당당한 딸이자 엄마였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애 둘 낳고 회사 복귀하면서 야근에 회식에 아이들 잘 때나 집에 오는 일이 왕왕이 었고, 내새꾸들 얼굴이라도 한번 보고 재우려고 발 동동거리며 집에 도착하면 나름 엄마 역할을 한답시고 쉰 목소리*②로 그림책 한 권 읽어주는 동안 "엄마?...... 엄마?............. 엄마 자?"내가 잠이 들어버리는 웃픈 상황이 발생해 왔다. 그렇게 내가 자는 건지 아이들을 재우는 건지 모르게 치러진 육퇴 후에는 회사에서 못다 한 업무를 마무리하며 주중을 보내고 나는 좋은 엄마야! 누구보다 열심히 잘하고 있어!라는 강박과 '좋은○○프레임'에 갇혀 주말은 산이며 바다며 외출로 몸을 혹사시킨 날들의 연속이었다.


무엇이든 완벽한 게 해야 안심이 되는 내 지랄 맞은 성격 탓인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싫은 소리 꾹꾹 참으며 혼자만 스트레스받아하는 모지람 탓인가... 갑상선 암 진단을 받을 즈음 릴레이 회의가 끝나고 나면 목소리가 쉬고 따끔따끔한 느낌이 들었는데 이것이 갑상선암의 증상*③ 중 하나인줄 누가 았았단 말인가. 그마저도 바쁘다는 핑계로 몇 년 만의 건강검진으로 갑상선 암을 발견하게 되었으니 그토록 힘들게 버티면 쌓아온 것들이 모래성처럼 부서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아프려고 여기까지 버티며 올라온 게 아닌데... 엄마가 제때제때 추적검사 하라고 할 때 말 들을걸... 서럽고 야속했다. 출장길 건강검진받은 내과의 암진단 전화를 받고(1화. 나의 갑상선 해방일지 참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초록창을 검색했다. #갑상선암 #갑상선암수술 #갑상선암치료...


'다행이다... 갑상선암은 대부분 초기에 발견한다잖아!?

거북이 암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완치율도 높고 천천히 진행된다고 하니 괜찮을 거야...

괜찮아야지... 나는 아직 하고 싶은 것도 할 것도 너무 많아!'


얼룩덜룩 나비가 힘겹게 날갯짓을 다시 한다. 

나비의 날갯짓은 작지 않다.

 



*1. 갑상선은 목 앞쪽에 위치한 나비 모양의 기관으로 '갑상선 호르몬'을 분비해 우리 몸의 체온과 심박동 수, 대사를 촉진하고 유지시키는 역할을 한다. 국내 암 발생률 1위를 차지할 만큼 흔하고, 대부분 초기에 발견되며 남성에 비해 여성 발병률이 5~6배 정도 된다. 갑상선암 가족력이 있거나 방사선 노출 등 갑상선암 관련 위험 요인이 있는 경우 정기적인 검진을 통해 조기에 발견하려 노력하도록 하자.


*2. 갑상선 염 vs 갑상선 결절

갑상선염은 갑상선에 염증이 있는 상태다. 이 염증이 계속 진행되면 갑상선기능저하증이나 갑상선암으로 발전할 수 있어 추적이 필요한데, 혈액검사로 그 기능을 확인한다. 주로 ▶TSH(Thyroid Stimulation Hormone, 갑상선 자극 호르몬)와 ▶Free T4 (Thyroxine, 유리형(遊離型) 싸이록신) 검사가 시행된다. 갑상선결절이 갑상선 암일 가능성보다는 단순 결절이나 물혹 등 양성 결절일 가능성이 훨씬 더 높기 때문에 지나치게 걱정하지는 않아도 된다. 걱정은 덜고, 의료진의 지시에 따라 주기적으로 갑상선 초음파 검사를 받고 갑상선 결절의 변화를 면밀히 살펴보는 세심함만 가지도록 하자.


*3. 갑상선암의 이상증후

초기에는 증상이 없어 검진 외에는 조기 진단이 어려우며 흔히 갑상선암이 의심되는 증상은 다음과 같다. ▶목의 앞부분에 딱딱한 결절이 만져지거나 ▶최근에 갑자기 커진 경우, 결절로 인해 기도나 식도가 눌려 ▶호흡곤란을 일으키거나 음식물을 삼키기 힘든 경우, ▶쉰 목소리로 변한 경우 등이 발생했을 때도 반드시 초음파를 통해 검사를 실시하도록 하자. 


* 위의 내용은 대한갑상선학회와 갑상선 관련 저서를 참고해 작성하였습니다.

이전 01화 나의 갑상선 해방일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