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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니 Apr 04. 2024

멈추고 나면 비로소 보이는 것

"갑상선암 조직검사, 세침검사"



"훈아 우리 훈이 구구단을 하네 벌써?"

"아유 엄마! 나 오단해! 구구단 하는 게 언젠데~ 들어볼래?"


정말 오랜만의 휴가다...

얼떨결에 육아휴직 D+1. 너무 바쁜 시즌이라 겨우 한 달 육아휴직을 받아놓고 일주일 남은 시점에 급하게 휴직 일정을 앞당겼다. 이걸 병가라 해야 하나 애매한 상황이다. 아침부터 눈소식이*① 있었는데 새하얀 함박눈이 펑펑 내린다. 제주에 놀러 가 계신 엄마한테 제주 풍광이며 맛집 음식 사진이며 계속 연락이 오는데 '엄마 나 아파서 쉬어'라고 말할 수 없는 딸은 애써 태연한 척, 집이 아닌 회사에 출근한 척 하기가 참 마음에 쓰인다.


 오는 것을 지독히 싫어한다. 펑펑 내리는 눈. 그마저도 평화로워 보이는 것은 무엇일까. 아직 몇 가지 처리할 일들이 남긴 했지만 놀라울 정도로 머리가 가뿐하다. 준이 어린이집을 보내고, 훈이가 방학이라 아침 학습지를 봐주는데 이게 얼마만이더라... 아이들은 그저 엄마가 출근을 안 하고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마냥 신이 났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아이들은 부쩍 커 있었다. 회사일에 열정 다 바쳐 각각의 프로세스는 줄줄 꾀고 모르는 게 없다고 잘난 척하던 어제까지의 나는 정작 집에 있으니 모르는 게 참 많은 부족한 엄마다.


퇴근 전철에 몸을 싣는 대신 오래간만에 이르게 저녁을 준비했다. 씻은 쌀을 밥솥에 넣고 고속취사 버튼을 누르는 대신 넉넉하게 시간을 두고 잡곡을 불려본다. 제일 자신 있는 것으로 하자! 육수포 국물이 우러나길 기다리는 동안 아이들 좋아하는 달걀 풀어 대왕 계란말이에 김치도 썰어내었다. 매일 같이 보는 식구들 얼굴, 주방살림, 내 집구석구석인데도 순간 울컥하고 뜨거워진다. 멈추고 나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 따순 밥도 온기 있는 저녁식사도 너무 그리웠다. 모든 게 그저 감사하고 뭉클했던 시간이, 하루가 이렇게 간다.




갑상선 결절(종양, 혹) 상태가 좋지 않으면 그 다음 순서로 조직검사를 권유받게 된다. 갑상선 조직검사, 세침검사 *②에 대한 덧붙임의 이야기...


일주일 전 건강검진에서 담당의사가 갑상선 모양이 좋지 않다며 혹시라도 모르니 조직검사를 하겠냐고 물었다. 이제 나이도 나이인 만큼 한 번쯤 받아볼까? 가벼운 마음으로 그러겠다 하고 출근 없는 토요일로 예약을 잡았다. 여느 때처럼 정신없이 일주일이 가고 검사 당일. 어떤 검사인가 검색이나 해보자 하며 병원을 걸어가는데 검색 결과만 봐도 등줄기에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심장이 뛰어서 곧 가슴밖으로 나올 기세다. "참을만해요" "금방 따끔하고 끝나요" "생각보다 뻐근해서 휴가 쓰고 하루종일 쉬는 걸 추천합니다". 등 그 반응도 각양각색인데 가볍게 나온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는 게 병원을 향해 더디게만 가진다.


'뭐야.. 목에 바늘을 꽂는다고? 망했다... 괜히 한다고 한 거 같은데...'


나는 바늘공포증이 있다. 주사라도 맞을 성 치면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아들 둘 낳는 것보다 출산 후 놓아주는 링거가 나를 더 힘들게 했더랬다. 그런 나에게 갑상선 세침검사는 어찌 보면 수술보다 너무나 혹독한 것으로 기억된다. 목에 부분마취를 하고 직접 아주 가는 바늘을 찔러 조직을 채취하는 검사라 사실 주사에 대한 공포만 없다면 그리 엄살떨 일도 아니지만, 주사로 채취하는 뻐근한 그 느낌이 날 것으로 느껴지는 순간이란! 다시 떠올려도 정.말.싫.다. 나와 비슷한 분들에게 세침검사 경험자의 작은 조언을 붙이자면 말을 하거나 움직이거나 혹은 침을 삼키면 다칠 수 있다고 하니 첫째! 침은 미리미리 삼키고 검사할 때는 숨만 쉬도록 하자. 또한 검사 시 최대한 긴장 풀기를 추천한다. 솔직히 나도 그게 잘 안되는지라 '그게 어디 내 맘대로 되는가?' 싶지만 검사 시간이 2분 정도로 매우 짧은 데다 긴장해 힘을 주게 되면 워낙 피부와 뼈 사이가 근접한 부위라서 인지 두세 번 채취하는 그 순간의 느낌을 더 잘 느끼게 되니 무조건! 힘을 풀자! 그러지 않으면 더 괴로울 수 있으니 이는 온전히 경험담에 나오는 팁이라겠다.  마지막으로 검사 후에는 다소 불편하거나 침을 삼킬 때도 이물감이 들 수 있으니 이 점도 참고하면 좋겠다.




*1. 4월의 눈에 의아할 테지만, 2년 전 기록해 놓은 노트를 다시 꺼내 곱씹으며 살을 덧붙여 발행하고 있어요.


*2. 세침흡인검사(Fine neddle aspiration biopsy): 세침검사라고 간단히 불리며 대략 체취 최대 5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초음파를 보며 의심되는 갑상선 결절을 조직검사용 바늘로 찔러 조직을 얻은 후 양성 혹은 악성을 진단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행하는 검사다. 필요시 국소마취를 시행하며 초음파로 양성이 의심되는 곳을 확인한 후 목에 조직검사용 바늘을 삽입하여 조직을 채취한다.

* 위의 내용은 대한갑상선학회, 서울아산병원 외 갑상선 관련 저서를 참고해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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