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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니 Apr 11. 2024

암.밍.아.웃

"암진단 후 가족과 주위에 알리기"

진단받은 지 벌써 삼일째

이제 아무리 흔한 질환이라고 해도 그래도 암이라는데, 갑상선 암은 별거 아니라고 해도 그래도 암이라는데, 세상에나 암이라는데 오진도 많은 게 암이라는데... 사실 믿고 싶지 않았던 거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거다. 그냥 한번 더 확인하고 싶었다. 내가 정말 암.인.지.아.닌.지.

 

지난 이틀간의 여유와 슬픔은 아주 잠시뿐. 병원에 예약 전화를 돌리고 아직 내가 휴직인지 모르는 업체들 전화를 쳐내느라 기대했던 여유로운 육아휴직은 온 데 간 데 없다. 되려 정신 단디 차리지 않으면 안 되겠다 싶다. 암 커뮤니티에서 유명하시다는 교수님들 중 가까운 대학병원*① 두 곳에 진료 예약을 빠르게 잡고 필요한 서류들을 하나 둘 챙겨두었다. 대학병원 진료 전 몇 주간의 시간 텀이 있어 로컬 갑상선 전문 병원에 진료예약도 바로 잡았다. 혹시 양성일수도, 또 꼭 수술이 아닌 비수술적인 치료도 하는 병원이라니 조금은 긍정적인 가능성을 두고 건강검진받았던 서류들을 잘 챙겨 짝꿍과*② 두 손 꼭 잡고 이르게 병원을 향한다. 대기실에 태연한 척 앉아있는데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다행히 사람이 많지 않다.


"환자분! 들어오세요!"

"선생님... 혹시 양성이거나 암이 아닐 가능성은... 있을까요?"

"암은 맞고요. 크기가 작더라도 모양이 좋지 못하네요.

피막 근처에 있다 보니 빨리 큰 병원 가시는 게 좋습니다. 예약은 하셨나요?"

"아... 네... 예약은 집 근처 대학병원으로 잡아 놓아서 가장 빠른 날짜로 차주에 가보려고요..."

"잘하셨네요. 치료 잘 받으시고 오세요. 수술은 아마 하실 것 같네요"


너무 명료하고도 짧고 굵게 진료는 끝이 났다. 내심 아니길 바란 마음이 있었다면 거짓말이겠지. 나름 큰 일에는 대범한 면이 있어서 이번 일에도 동요 없이 최대한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이겨내 보자 했는데 역시 너무 큰 기대를 가지고 있었던 탓인가 "암은 확실하다"는 그 확인사살이 그다지 기분 좋지는 않다. 아니 정확히는 많이 슬프다. 진료실을 나와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차에 타서야 참았던 울음이 터지고 짝꿍의 큰 손과 곁을 두어 하염없이 울어보니 역시 내편이 제일이다. 조금은 진정이 된다.


이젠 다음 할 일을 하자.

암.밍.아.웃*③ 나는 이제 정말 암경험자다.







병원을 다녀온 뒤 나의 '암밍아웃'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제일 먼저 나를 지키기 위해서 회사에부터 소식을 알렸다. 개인적인 일을 굳이 회사에 까지 알리냐 마느냐는 개인의 선택이지만 휴직임에도 계속되는 업무연락으로부터의 거리 두기와 나 역시 이젠 정말 온전히 나만을 생각하자 하는 일종의 자기 방어랄까. 인사팀에 정식으로 이러이러한 사유로 육아휴직이 길어질 것 같다 알리고, 긴 부재에 영향을 미칠 팀원들과 유관부서 동료에게 전화를 돌렸다. 솔직히 가까운 몇몇 이에게만 말해도 이런 류의 소문은 며칠 아니 몇 시간 만에 삽시간에 퍼지기 마련이라 직장에의 알림은 꽤나 심플했다. "팀장님 여긴 걱정 마시고 팀장님 치료만 생각하세요" 정말 아끼는 팀원 한 명은 몇 달 뒤 돌아올 예정이었던 이의 불투명한 복귀소식에 본인도 불안할 텐데, 함께 가슴 아파하고 울어주는 마음이 참말 고맙고 예쁘다. "잘 지내고 있어! 옆팀 팀장님께 잘 말해두었으니깐 걱정 말고, 곧 보자! 우리!" 애써 울음을 삼키며 담담하게 약속이자 다짐의 말을 건넨다.


가까운 친구 몇에 안부전화를 했다. "너 휴직 시작했어? 얼마 못 냈지? 우리 복귀전에 빨리 얼굴 봐야지 야~"라고 가볍게 시작한 대화는 무거운 나의 암밍아웃으로 어색한 공기의 흐름을 만든다. 통화만으로도 느낄 수 있어... 하지만 그네들의 진심 어린 온정의 말로 어색한 공기는 이내 따뜻해진다. 마음이 녹아내리고 마냥 또 어리광을 피우며 울고 싶어 진다. '아 나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었구나' '괜찮아 괜찮아해도 괜찮지 않구나' 싶다. 이젠 더 이상 회사에서도 업무로 나를 괴롭히는 일은 없다. 주말에 밥 하지 말고 아이들 먹이라는 치킨쿠폰에 병원 다니면 손 많이 씻게 된다고 핸드크림까지 무한한 관심과 호사를 누리고 있다. 은근 나는 관종이었던가 보다. 정작 관심받아야 할 울 엄마와 아이들에게는 이 사실을 알리지 못한 채 말이다.


정식적으로는 어제부터가 나의 6주의 육아휴직 기간이다. 이미 알고 계신 엄마는 오늘부터 쉬니 기분이 어떻냐고 아침부터 카톡이 한가득이다. 휴직 이후 제주 여행도 계획 중이었던지라 엄마는 이곳저곳 사진을 보내며 네가 올 때까지 동백이 펴있어야 하는데..라고 한다. 메시지를 보니 가슴이 미어진다. 마음속으로만 삼키고 못 보내는 메시지가 한가득. '엄마 나 사실 며칠 전부터 쉬고 있어...' '그리고 나 제주도 당장은 못 갈 것 같아...' '나 너무 불안하고 걱정되는데, 엄마한테 말 못 해 미안.. 매번 걱정만 끼치는 딸이라 내가 미안...'가족에게는 과연 언제 알려야 하는 걸까? 아이들은 엄마가 아프다는 것에 불안해하지 않을는지, 특히 몇 달 전 아빠를 너무나 급히 하늘나라로 보낸 엄마의 경우는 딸마저 암이라는 소식에 어떤 심정일까 더 고민은 깊어진다.


한 친구 녀석에게 깊은 고민을 털어놓았다.

"나 엄마한테 아직 말을 못 했어... 언제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어"

"내가 작년에 아빠 전립선암 판정받으시고 수술 때까지 그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힘들더라고...웬만하면 수술날짜 잡히고 최대한 결과가 정확히 나오면 이야기드리도록 해.

가족들은 기다리는 시간이 제일 어려워"


아직은 아닌 것이다.

당분간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늘 그렇듯이 시답잖은 톡과

아이들 사진을 마구 보내야겠다.

더 아무렇지 않은 듯.






*1. 초진 대학병원(3차 병원) 구비 서류

대학병원, 즉 3차 병원에 가려면 필수적인 서류가 있어요. 저는 다행히 진료 전 조직검사를 한 슬라이드가 미리 준비가 되어 바로 병원검진을 갈 수 있었습니다. 우선 로컬 병원에서 작성해 준 진료의뢰서는 필수입니다. 미리 몇 가지 검사를 마친 상태라면 해당 영상 CD, 조직검사 슬라이드, 검사진단지를 구비하시면 진료에 도움이 많이 됩니다. 하지만 없다고 걱정은 마세요. 대학병원에서 내부에서 진행하는 검사를 진행하면 되기 때문에 그냥 내원하시고 의료진의 안내를 받아 진행하시면 됩니다.


*2. 짝꿍. 내 삶의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함께 사는 남성. 매우 따뜻한 심성에 불같은 나와는 달리 고요하고 차분함을 가장 큰 무기로 장착하고 있다.


*3. 암밍아웃

암에 걸렸다는 것을 타인에게 알리는 행동. 회사와 친구들에는 가급적 빨리 알리는 것을 추천해요. 업무로부터 나를 보호받을 수 있고 지인들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가족들에게는 검사가 어느 정도 진행된 후 병기와 치료법들이 확실해진 후 알리는 것을 추천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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