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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니 Apr 18. 2024

학교동기, 연수동기, 조리원동기, 이제는 갑상선 동기?

"갑상선 정보 카페"

태어나 성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하기까지 우리는 수많은 집단에 속해 살아가게 된다. 대한민국만큼 동기 집단이 많은 곳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동기'라는 단어는 사회 곳곳에, 또 함께 있다는 그 소속 이외에 더 큰 의미로 늘 다가왔다. 초중고를 거쳐 대학 동창은 물론이거니와 회사에서의 고충 또한 제일 마음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동기가 아니었던가. 나의 상황을 인지할 수 있는 환경적 위치와 서로에 공감할 수 있는 유대감을 가진 동기는 그 수가 많을수록 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왔다. "올해는 연구소 동기들이 많아 좋겠어" 하는 선배의 말 한마디는 "오~ ○○씨 PPT 장표 잘 만드네~"하는 칭찬보다 어떨 때는 더 우쭐함의 지표가 되어 주기도 한다.


조리원 동기는 또 어떠한가 10년 넘게 만난 사람도 언니 동생 편하게 말 못 놓는 E와 I 성향 그 어디쯤의 나도 한 밤중의 모유수유실, 마사지실에서의 몇 마디와 눈빛 만으로 서로의 언니동생이 되는 마법 같은 힘을 내게 하지. 웬만한 맘카페와 육아서 뺨치는 선배맘의 조언은 거의 신적인 존재가 따로 없고 2주간의 짧은 기간에 형성된 동지애는 조리원 밖에서도 이어져 아이가 아플 때, 육아로 우울할 때, 독박육아로 놀이메이트가 필요할 때 도움을 얻는 소중한 인연으로 이어져왔다.




이렇듯 많은 동기들을 거쳐

나는 이제 갑상선 동기가 생겼다.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느슨했졌다 조여졌다 하는 마음의 반복된 날들이 흐른다. 암 진단을 받고 초록창에 검색을 해 갑상선 질환과 관련된 대표 카페*①들을 하나씩 모았다. [갑상선 포럼], [거북이 가족], [갑상선 사랑]... 새로 올라온글이 많아 활동이 활발해 보이는 곳 순서로 가입을 누르고 궁금한 것들을 검색해 하나하나 읽어본다. 책에서는 볼 수 없는 생생한 증상과 다양한 케이스들, 절대 누가 시켜서는 쓸 수 없는 수술 후기들이 빼곡하다. 댓글 하나에도 꾹꾹 담은 위로가 느껴지는데 꼭 모두가 내 마음 같아서 마음이 저릿해진다.    


아픈 사람... 암밍아웃 후 주위에 많은 이들이 나를 걱정하고 말한다. 하지만 가끔은 나의 필요나 상황을 모른 채 무심코 한 말들, 건넨 손길로 마음이 불편해질 때도 있다. 모두 나를 위한 따뜻한 배려에서 온 말이지만 그 배려가 날카롭게 느껴질 때의 괴로운 마음은 어디 터놓기도 참 어려워... '너는 아프지 않잖아! 지금 내 마음을 전부 다 이해할 수 없잖아!' 하는 삐딱한 마음조차 보담고 이해될 수 있는 이곳. 유난히 차갑고 여유 없는 이 계절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는 보물섬을 발견했다.



공감의 폭이 넓으면 사람은 마음을 더 쉽게 내어 놓는다.


"안녕하세요. 저는 S병원, C교수님 진료 예약하며 기다리고 있어요"

소속 병원은 출신학교처럼 내 이름표가 되고 같은 병원이라면 초등 동문이라도 만난 것처럼 더욱 반갑다. 가입 첫날 용기 내어 가입인사라는 것을 올려보았다(원래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에 크게 적극적이지는 않은 편이다). 인사 조건은 첫째 현재 다니는 병원/담당의사와 둘째 질병상태와 치료경과 이 두 가지 정도면 충분하다. 아이들 올 시간이라 잊고 있던 카페글을 저녁즈음 다시 들어가 보니 댓글이 꽤나 달렸네? "저도 C교수님 진료 앞두고 있어요 반가워요!" "저도 같은 교수님 수술 기다리고 있어요. 힘내세요""C교수님 수술 동기들 팬클럽이 있어요. 관심 있으시면 들어오세요!" 수술 동기? 교수님 팬클럽?*② 이거 들어가도 되는 거야...?.... 뭐 들어갔다 이상하면 다시 나오면 되지 고민은 아주 잠깐 이상하리만큼 의심병 많은 내가 뭐에 홀린 듯 덥석 채팅방 주소를 받았다.



반갑습니다~어서 오세요

C교수님 팬클럽이지만 소소하게 일상과 정보를 나누고 서로 위로하고 위로받는 공간입니다.

외래나 수술날짜 알려드리면 일정표에 올려드려요!


입장하자마자 엄청난 환대를 받았다. 자연스례 갑상 선에 대한 일상을 나누는 이들. 같은 날 수술을 하게 된 이들을 수술동기*③라 칭하며 서로의 수술날짜를 기억해 수술 정보를 공유해 주고 한 목소리로 응원한다. 수술 후 살 빼기가 왜 이렇게 힘드냐고 하는 투정도 오늘 아이랑 대판 했는데 이게 갑상선이 없어 호르몬 때문인가 보다는 농담반 진담반의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자칫 서운할 수 있는 말도 여기서는 그냥 웃어넘길 수 있다. 신입들의 줄줄이 소시지처럼 이어지는 질문세례에도 눈치 보일일 어디 있나!? 선배들의 답변은 더욱 줄줄이 소시지라 가끔은 올라온 글들을 읽느라 버거울 때도 있지만 특별히 대화를 강요하는 이도 나무라는 이도 없는 이곳에선 서로의 사정을 익히 아니 서운할 것도 아쉬울 것도 없다. 느슨한 연대의 힘이다.


갑상선 수술에 대한 다양한 오픈 소스들과 의료진의 전문 서적들. 모두 다 매뉴얼 같이 맞는 말이지만 나에게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보면 '함께 아픔을 공유할 수 있는 소통의 창구'였던 것이다. 함께 아프고 울고 공감해 주며 치유됨이 필요했다. 스쳐가는 인연이라 하더라도 불안한 마음을 잠재울 수 있는 수많은 동지들의 목소리에 더 위안을 받고 마음을 열었다. 


혼자 해도 충분하지만 같이 동행하면 더 좋다.

그래서 난 갑상선 동기가 참 좋다.





*1. 갑상선 질환 카페

전문 서적등을 참고해도 잘 나오지 않는 세세한 케이스들이나 후기들을 나와 유사한 경우를 찾아 검색해 도움을 받을 수 있어요. 대표적인 카페로 위에 언급드린 ▶[갑상선 포럼: https://cafe.naver.com/thyroidcancers], [거북이 가족: https://cafe.naver.com/thyroidfamily] 등이 있습니다. 물론 개인의 경험에 의한 지극이 주관적인 내용도 상당해 모든 정보는 취사선택 해 보아야겠지만 치료와 수술 과정 전반에 있어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어 커뮤니티에 가입하시는 것을 추천드려요.  


*2. 병원별/교수님 오픈채팅방

최근 암경험자분들의 커뮤니티 특징을 살펴보면 기존 온라인에 국한된 것에서 더 나아가 같은 병원, 같은 교수님과 같이 더 작은 단위로 단체 채팅방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적극적인 소규모 오프라인 모임이 활성화되어 수술날짜가 비슷해 같은 기간 입원해 있는 경우를 수술 동기라 칭하기도 하고, 외래 진료일이 같을 경우 채팅방을 통해 만나 인사를 나누기도 해요.(물론 강요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병원과 교수님이 같다 보니, 수술과 치료에 대한 더 자세한 후기를 들을 수 있고 외래 갈 때 병원 1층에 맛집이 어디인지. 몇 번 창구 수납담당자는 피하는 게 좋다든지, 몇 번 입원실에는 창가자리가 제일 좋다 등의 아주 디테일한 경험담까지 알 수 있는 장점이 있답니다.


*3 수술동기

저도 물론 수술동기가 있어요. 이런 불특정 다수의 만남에 대해 약간의 울렁증이 있는 저인데 동기분께서 하루 일찍 퇴원하시며 입원실 앞에 예쁜 쪽지와 음료, 그리고 수술 후 붙이라고 미리 사지 못한 시카밴드까지 두고 가셔서 정말 많이 울고 지금도 종종 연락을 하는 귀한 인연이랍니다. 자세한 사항은 수술 후 이야기에서 풀어내어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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