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겟 맞춤형 소형 컨셉 영화관 시대로의 진입
영화관은 코로나에 의해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업종 중 하나로 꼽힌다. 2019년 2억 2천만 명이 영화관을 찾았지만, 코로나가 기승을 부린 2020년, 2021년에는 각각 6천만 명으로 관객수가 무려 73%가 감소했다. 2022년 코로나 방역지침이 완화되어 1억 1천만 명까지 회복되었지만, 여전히 코로나 이전에 비해 50%나 감소했다. 2023년은 3분의 1이 지나가는 4월 말이지만 누적 관객수는 3천만 명에 불과하다. 여름 성수기와 12월 성수기가 남았다 하지만 최대 1억 2천만 명 대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정도의 관객으로는 지금의 영화관 모델은 살아남을 수가 없다.
필자가 본 현재 영화관의 가장 큰 문제점은 초기투자비와 유지비가 너무 높다는 것이다. 우선 영화를 틀기 위한 영사장비가 매우 비싸다. 영화관에서 사용하는 영사장비는 DCI(Digital Cinema Initiative)라는 국제 표준을 통과한 장비만이 사용이 가능한데, 높은 수준의 밝기, 색채 표현이 가능해야 하는 것은 물론, 영화관용 영화 파일인 DCP(Digital Cinema Package)를 재생할 수 있어야 하고, KDM(Key Delivery Message)이라는 보안키가 있어야지만 영화 파일이 재생되도록 하는 보안시스템도 갖춰야 하기에 일반적인 프로젝터와는 비교가 안 되는 가격에 판매가 된다. 이에 따라 영화를 틀기 위해 필수적인 영사장비 3종: 영화관용 프로젝터, 스피커, 스크린 영사장비를 구축하는 것만으로도 최소 2억 원 이상이 든다. 이에 더불어 인테리어 공사와 매점 장사를 위한 집기류 등까지 한다면 금액은 상상을 초월하게 되는데, 보통 1개 영화관에 6~7개의 상영관과 로비, 매점을 갖춘다면 최소 50억~60억 원이 소요된다고 보면 된다.
영화관은 많은 관객을 끌어들여야 하기 때문에 입지가 좋은 대형 몰에 입점하는 것이 보통이다. 대형몰에 입점하기 위해서는 높은 보증금은 물론, 높은 월 임대료와 관리비도 감당해야 한다. 대형몰의 입점 조건은 다양한데, 임차하는 크기에 따라 총매출의 10~20%를 가져가거나 월 몇 억 원의 임대료에 계약하기도 한다. 관리비는 몰에 따라 다르지만 평당 약 3~6만 원의 일반관리비가 책정되고, 사용량에 따라 변동되는 직접관리비가 월 몇백만 원 이상 발생한다.
크게 임차한 공간을 관리하고 판매하기 위해 정직원과 파트타이머를 다수 배치해야 한다. 아무리 작은 매장이어도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의 판매시간대를 365일 채우기 위해 최소 3명 이상의 정직원과, 수십 명의 파트타이머가 필요기에 인건비만 월 몇천만 원이 발생한다.
투자비도 수십억 원인데, 유지비도 월 억대로 발생한다. 하지만 아무리 비용이 높아도 매출이 그만큼 발생하면 될 것이다. 하지만 영화관 판매 구조상 수익률이 매우 낮다. 티켓 판매가의 3%는 영화발전기금으로 먼저 납부해야 하며, 이후 50~60%는 콘텐츠를 제공한 배급사의 몫이다. 이에 따라 영화관은 기껏해야 40% 내외의 티켓수익을 얻는다. 티켓 수익 관련해서는 이전글을 참고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코로나 이전의 영화관의 매출/비용 구조를 보자면 아래 그래프와 같다. 2018년 실적으로 그래프를 제작한 이유는 2019년이 영화계 역사상 최고의 한 해였기 때문에 평균적인 극장의 수익 구조를 보기에는 적절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래 그래프와 같이 매출에서 각종 비용을 제했을 때 코로나 이전의 영화관 평균 영업이익률은 약 4~7% 수준이었다.
코로나가 풀린 2022년 멀티플렉스의 실적을 살펴보자.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서 각 멀티플렉스 사업자의 2022년 사업보고서와 감사보고서를 참조했다.
① CJ CGV: 매출 1조 3천억 원, 영업이익 -730억 원
② 롯데컬처웍스: 매출 4천5백억 원, 영업이익 -141억 원
③ 메가박스중앙: 매출 2천2백억 원, 영업이익 -79억 원
보다시피 영업손실 상태로, 복구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특히 위 실적이 '영업이익'이라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멀티플렉스 사업자들은 코로나 기간을 버티기 위해 다양한 경로로 운영 자금을 빌려왔는데, 그 채무액이 너무 엄청나 금융비용이 영업손실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금융비용 등을 포함한 총 포괄손익을 확인해 보면 다음과 같다.
① CJ CGV 총 포괄손익 -2,370억 원
② 롯데컬처웍스 총 포괄손익 -361억 원
③ 메가박스중앙 총 포괄손익 -19억 원
3사 중 유일하게 메가박스만 영업이익보다 총 포괄손익이 좋았는데, 법인세수익이 무려 220억이나 된 결과여서 일시적인 착시현상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멀티플렉스는 코로나 이전에도 수익성이 높지 않았는데, 코로나를 겪으며 수익성이 심각하게 악화되었고, 심지어 코로나를 버티기 위해 자금을 끌어들이면서 금융비용이 큰 폭으로 증가해 손익이 크게 마이너스가 나게 되었다.
즉, 멀티플렉스 모델은 더 이상 유지가 불가능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런 답답한 상황에서 영화관 업계의 해결책은 없는 것일까? 필자가 생각하는 해답은 간단하다. 무거운 멀티플렉스 모델을 벗어나야 한다. 패밀리 레스토랑이 전국을 뒤덮었던 시절이 있었다. 양식에는 아웃백, VIPS, TGIF, 애슐리, 베니건스가, 한식에는 계절밥상, 자연별곡, 풀잎채가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대중의 취향이 다양화됨에 따라, 매력 있는 공간과 새로운 F&B를 제공하는 매장을 더 선호하게 되었다. 이에 늘 똑같은 패밀리 레스토랑은 거의 사장되고 말았다. 필자는 이 패밀리 레스토랑의 흥망성쇠가 영화관 업계에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다 생각한다. 멀티플렉스는 패밀리 레스토랑이고, 대중의 취향은 이미 변한 지 오래이다. 시간이 패밀리 레스토랑보다 늦었을 뿐, 또 멀티플렉스를 대체할 매력 있는 새로운 영화관 모델이 없었을 뿐이다.
그럼 어떤 영화관 모델이 매력 있는 영화관일까?
첫 번째, 합리적인 영화 가격정책을 갖춘 영화관이다. 소비자는 단순히 '저렴한' 가격만을 찾지는 않는다. 가성비의 시대에서 가심비의 시대로 전환된 지 오래인 지금, 소비자는 '합리적인' 가격을 찾는다. 이것이 15,000원의 일반관보다 22,000원의 IMAX나 20,000원인 Dolby관이 오히려 장사가 잘 되는 이유이다. 소비자가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는 기술력이나 서비스, 공간가치를 지닌 영화관이라면 가격이 높아도 된다. 그 합리적 가격의 기준점을 잡아주는 것은 이미 전국에 깔려있는 멀티플렉스의 영화가격(15,000원)이다. 예를 들어 동탄에 만든 한옥영화관인 '안영채 X 모노플렉스'의 경우 가격이 15,000원인데, 멀티플렉스와 동일한 가격이면서 좌석 간 간격을 넓히고 식사를 하면서 영화를 볼 수 있는 서비스적, 공간적 매력이 있어 고객에게 좋은 영화관으로 인식되고 있다.
두 번째, 타겟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영화관이다. 기존의 멀티플렉스는 고객의 취향을 생각하지 않고 평균적인 기준으로 영화관을 만들었다. 키즈 전용 영화관인 '밀크북 바이 모노플렉스'는 만 7세 미만의 유아 타겟으로 만든 영화관으로, '우리 아이 첫 영화관'이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있다. 영화관도 노키즈존이 필요하니 마니 하는 지금, 어린 자녀를 둔 부모님이 편하게 올 수 있고, 영화를 보면서 떠들어도 되고 움직여도 되는 영화관은 밀크북 바이 모노플렉스가 유일하다. 필자는 이렇게 맞춤형으로 영화관을 만들 수 있는 타겟을 ① 만 7세 미만의 키즈, ② 일본 애니메이션 오타쿠, ③ 실버, 이렇게 3가지로 보고 있다. 일반적인 영화관으로 충족하지 못할 이 세 집단의 니즈를 전용 영화관을 만듦으로써 해소해 줄 수 있다면 아주 매력 있는 영화관 모델이 탄생할 것으로 생각한다.
세 번째, 영화 관람 외 즐거움을 주는 영화관이다. 이제 영화는 OTT의 등장으로 반드시 영화관에서만 봐야 하는 콘텐츠가 아니게 되었다. 이에 영화관은 큰 스크린과 좋은 사운드, 편한 좌석을 제공하는 전통적인 서비스 외 추가적인 요소가 필요하다. 밀크북 바이 모노플렉스에서는 영화 시작 전 30분의 놀이시간을 제공하고, 그중 10분은 어둠에서의 야광댄스타임이다. 자유로운 놀이시간과 더불어 하나의 액티비티를 추가로 제공하기 때문에 유아 자녀를 둔 고객에게 각광받고 있다. 케이트리호텔 X 모노플렉스의 경우 전 석 리클라이너 좌석으로 배치해 편안함을 더했고, 음료와 스낵을 영화 가격에 포함함으로써 가성비를 높였다. 안영채는 좌석 간의 간격을 넓게 배치해 프라이빗함을 더하고, 기존 멀티플렉스에서는 금기되었던 외부 음식 반입을 아예 전면 권장하였다. F&B 몰에 입점한 특성을 살려 다양한 F&B를 구매해 영화를 보면서 먹을 수 있게 함으로써 매력도를 높이고자 한 정책이었다. 위의 리뷰에서도 볼 수 있듯이 고객에게 기존 영화관과 다른 경험을 준다는 점에서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이 세 가지 부분은 소비자의 입장으로 생각해 본 매력 있는 영화관의 조건이다. 이번에는 공급자(사업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새로운 영화관 모델은 기존 멀티플렉스의 문제였던 ① 높은 초기 투자비와 유지비, ② 낮은 수익성을 개선할 수 있어야 한다. 이에 다음과 같은 전략이 필요하다.
첫 번째, 임대료가 비싼 대형몰에 입점하지 않고 기존 업장의 유휴공간을 영화관으로 전환시킨다. 대형몰은 임대료가 매출액의 최대 20~30%에 이르는 등 사실 수익성을 바라기에는 좋은 곳이 아니다. 어떤 건물이건 유휴공간은 존재한다. 모든 건물주의 고민은 어떻게 하면 공실을 줄이고 유휴공간을 활성화시킬지이다. 이런 곳과 협의한다면 좋은 장소를 좋은 조건에 확보할 수 있다. 임대료와 관리비는 물론, 소형 공간이기에 업장을 운영할 인력도 훨씬 적게 들어 유지비를 낮출 수 있다.
두 번째, 투자비를 낮춘다. 기존의 영화관은 1 개관을 짓는데 6~7억이 소요된다. 영사장비 투자비만 해도 1~2억이 소요된다. 배급사로부터 영화를 받기 위해서는 전문 영사장비를 사용해야한다. 현재 모노플렉스가 사용하고 있는 Supra-5000 장비의 경우 홍콩의 서버회사인 GDC에서 제작한 소형 영화관용 프로젝터로, 기존 영사장비 대비 훨씬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며, 최대 가로 9m 스크린을 커버할 수 있다. 소형 영화관에서는 보통 가로 4~6m의 스크린을 사용하기 때문에 Supra-5000이 베스트옵션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스피커의 경우도 소형 영화관에 맞게 스펙을 갖춘다면, 기존 대비 구축비를 훨씬 저렴하게 맞출 수 있다. 인테리어 역시 영화관 공간 자체가 작아지므로 기존대비 훨씬 저렴해질 수 있다.
필자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멀티플렉스 시대가 좀 더 갈 수도 있다. 대기업의 자본과 브랜드 인지도, 인재풀로 다시 성공적인 모델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하지만 1998년 이래 25년간 한 모델로 성장해 온 영화관 업계가 쉬이 변하기 어려울 것이라 필자는 생각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 했다. 영화관과 영화 업계에 새로운 반향을 일으키기 위해 제로 베이스부터 시작하자. 기존의 멀티플렉스 모델을 해체하자. 소비자로부터 힌트를 얻어 새로운 영화관 모델을 수립하자. 설령 실패할지라도 이런 시도가 모여 침체된 영화업계를 살리고, 소비자의 문화생활 다양성을 증진시킬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