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 8일 (월) 오후 8:00
엄마에게,
안녕. 벌써 5월이라니. 여기 온 지 두 달이 지났다는 게 믿기지가 않는다. 1/3이 지난 셈이야. 엄마한테는 어떻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는데. 나한테는 정말 빨리 지나간다.
그리고 엄마한테 편지 쓰는 것도 생각보다 잘하고 있어서 스스로 기특한걸. 시작할 때는 일주일에 한 번 쓸 수 있을까, 그냥 이주에 한 번 쓴다 할까 싶었는데 정작 해보니까 뚱땅뚱땅 써져서 별로 안 어렵네.
이번 주는 뭘 했는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아무것도 안 했어. 일단 화요일 아침에 베를린에서 도착해서 곧장 짐 풀고 엄마한테 편지 쓰고 가계부 정리하고 오후 수업 갔고.
아 저녁에는 영화관에 갔네. 여기에는 일반 영화관 하나랑 예술 영화관 같은 게 하나 있는데 예술 영화관에서 우크라이나 독립 영화를 상영하더라고. 보고 싶어서 독일어 온라인 수업 아직 안 끝났는데 그냥 노트북 끄고 영화관 가버렸어. 그 수업은 어차피 드랍할 것 같거든…….
전쟁이 끝난 2025년의 우크라이나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였는데 솔직히 엄청 지루했어. 여로가 남아 있어서이기도 하겠지만 눈이 자꾸 감길 정도로 잔잔해서.
다 보고 이해도 잘 안 간다고 생각했거든? 근데 나랑 같은 플랫 쓰는 우크라이나 친구 I 있댔잖아. 걔랑 부엌에서 마주쳐서 그 영화 얘기했는데 걔도 얼마 전에 그걸 봤다는 거야. 그래서 I 설명을 대충 들으니까 좀 갈피가 잡히는 것 같았어.
그리고 수요일에는 검도 수업 갔고. 독일어로 된 검도 교재를 받았지 뭐야. 쌤이 이참에 독일어 공부도 하면 되겠다면서 줬는데. 웃기는 소리.
검도 수업에서 독일인들끼리 대화하는 걸 듣다가 생각난 건데, 확실히 이 사이에 있으니까 듣기는 빨리 느는 것 같아. 들려도 해석 못하니까 소용이 없긴 하지만 아는 단어가 있으면 정말 잘 들려. 영어보다 귀가 빨리 트인 듯. 환경의 차이가 아니라 언어의 차이일 수도 있겠지만.
그리고 엄마랑 통화한 게 목요일이었나? 그날은 방 청소하고 빨래하고 여하튼 집안일하고 있었어. 베를린에서 사 온 우비는 세탁기에서 운명을 다해버렸어. 아무도 내게 우비는 세탁기에 돌리면 안 된다고 알려주지 않았거든. 어떻게 해보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버려야 할 것 같아. 돈 아까운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같이 망한 빨래들을 처리하고 새 우비를 또 사야 한다는 게 귀찮구먼.
금요일에는 저번에 말했던 독일인 친구 M이랑 만났어. M이 파스타를 싸와서 시금치만 추가해서 내 방에서 같이 먹었지. 얘기하다가 한국 드라마에서 이해 안 가는 거 있었냐고 물어봤는데 맛있는 거 먹고 ‘캬~’ 하는 게 신기하다던데 전혀 상상도 못 한 거라서 너무 웃겼어. 독일에는 그런 거 없냐고 물었더니 현실은 드라마가 아니니까라던데…… 우리는 현실에서도 진짜로 하잖아……? 우리의 캬는 전혀 과장이 아니란 말이지.
아니 그리고 한글을 좀 읽을 줄 알더라고. 뜻은 거의 모르는데 여하튼 읽어. 그래서 챙겨 왔던 윤동주 시집 보여줬어. ‘봄’이라는 시를 M이 소리 내어 읽어보고 나서 영어로 번역해주려고 했는데 도저히 안 되더라. 영어를 한글로 번역하는 게 훨씬 쉬운 것 같아. 영어 번역본이 있으면 보여주고 싶다.
그리고 다음날에 바비큐 파티가 있대서 나도 간다고 했는데, 낮잠을 삼십 분쯤 자려나 했는데 세 시간을 자버린 거야. 그래서 시간도 늦고 해서 그냥 안 가기로 했어. 갑자기 왜 그렇게 잤는지 아직도 의문.
휴학했을 때도 느낀 거지만 낮잠 자는 건 정말 좋은 일 같아. 밝을 때 끼려고 안대 산 건데 정작 낮잠 잘 때는 눈부시게 자는 게 좋아서 잘 안 껴. 늦잠 잘 때는 애용하지만. 사실 베를린 갔을 때 안대 잃어버린 줄 알고 슬퍼하면서 돌아왔는데 집에 와서 짐 푸니까 가방 안에 잘 들어있더라.
계속하는 생각이고 엄마한테도 몇 번 말한 것 같긴 한데 나는 기필코 프리랜서로 살아야겠다. 처음에는 직장 가지고 시작해도 나중에는 꼭 프리랜서가 돼서 자고 싶을 때 자고 놀고 싶을 때 놀고 일하고 싶을 때 일해야지. 그리고 놀러 나갈 때는 사람 없는 평일에 나가고 주말에는 집에만 있을 거야. 요즘 계속 주말에 놀러 나갔더니 사람에 치이느라 힘들다.
요즘 단 게 왜 이렇게 당기는지 모르겠어. 엄청 맛있는 초콜릿을 찾아서 시도 때도 없이 먹고 있어. 초콜릿 바에 죠리퐁 넣은 거 같아. 너무 많이 먹는 것 같아서 줄여야 할 듯.
그리고 막걸리 먹고 싶다. 막걸리가 먹고 싶은 건지 막걸리의 안주가 먹고 싶은 건지 좀 헷갈리지만 대충 그래.
그리고 월요일에는 밴드 공연 보러 프랑크푸르트에 가. 엄청 큰 밴드라 한국에 올 일이 없을 것 같아서 나도 평생 못 볼 줄 알았는데 얼떨결에 세 번이나 보게 됐지 뭐야. 공연 보러 많이 갔지만 독일 공연은 또 처음이라 궁금하군. 프랑크푸르트 가는 김에 좀 일찍 가서 맛있는 저녁 먹고 갈 거다.
그래서 월요일에 어버이날이니까 영상 통화하려고 했는데 그때 밖일 것 같아서. 그냥 화요일에 할래. 화요일 저녁에 봐요.
엄마 딸 김지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