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20일 (화) 오후 8:00
엄마에게
엄마야 안녕, 이번에는 오랜만에 여유롭게, 여행 이야기가 아닌 일상 이야기를 쓴다.
일상이라고 해도 일상 같지는 않았어. 계속 다음 여행 준비를 했거든. 엄마아빠한테 통보한 대로 8월 배낭여행을 위해 예약해야 할 것도 많았고. 결정적으로는 당장 다음 주, 편지를 쓰는 지금 시점으로는 내일 출발하는 글래스톤베리 록페스티벌을 위해 짐을 쌌지.
영국에서 하는 이 록페스티벌을 위해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캠핑을 하려다 보니 필요한 준비물이 많았어. 대충 이렇게 저렇게 짐을 싸야지 생각해 놨는데, 생각해 보니까 비행기를 타야 해서 짐에 제한이 있더라고. 그래서 최소한으로 줄이고 줄이느라 고생했지.
영국 밤이 워낙 춥대서 걱정이야. 캠핑 때문에 챙겨 왔지만 5월까지도 잘 입은 내복도 오랜만에 다시 꺼내고, 한국에서부터 가져온 침낭도 드디어 개시한다. 엄마가 생리통용으로 챙겨준 핫팩도 그냥 보온용으로 가져가려고. 거기서 기념품 겸 후드티를 사서 껴입을 것 같기도 해.
사실 지금 가장 신경 쓰이는 건 생리를 안 하고 있다는 거. 원래 월초에 했어야 하는데 아직까지 안 하고 있어서 너무 짜증 난다. 안 할 거라면 아예 7월까지 안 하면 좋겠는데 말이지.
엄마도 내가 집에서 이 페스티벌 티켓팅하던 거 기억하지. 독일로 교환학생을 오는 게 결정된 이후로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 이 록페스티벌이었을 정도로 엄청 기다리던 여행인데, 당장 닥치니까 별 생각이 안 든다. 당연히 기대되긴 하는데, 상상만큼 설레지는 않아. 뭐 도착하면 또 다를 수도 있겠지만. 이미 독일 록페스티벌에 한 번 가봐서 그런가. 현실감이 없어서 그런가.
독일 록페스티벌 락임팍에 갈 때는 하루종일 거기에 나오는 밴드 노래만 듣고 그랬는데 지금은 별로 실감도 안 나고, 다른 것도 신경 써야 하고. 그래, 아까는 갑자기 취업 공고 사이트에 들어갔다니까. 한국 돌아가면 오랜만에 다시 학교 다녀야 하니까 수강신청 일정 알아보는 중이었는데, 과목 살펴봤더니 갑자기 취업이 걱정돼서. 나 이제 4학년 마지막 학기 다녀야 하는데……. 진짜 싫다.
근데 좀 재밌는 건 같은 플랫 사는 I도 별로 다르지 않더라고. 심지어 걔는 이번에 석사 졸업하는 거고 원래도 일을 했는데 말이지. I도 이제 학생 신분을 벗어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길래 다들 똑같구나 싶어서 묘하게 안심했어.
암스테르담으로 여행 가는 당일이었나 바로 전날인가 배낭 하나 사서 한참 잘 썼거든. 근데 그거 뜯어졌어. 어떻게 수선해보려고 했는데 어떻게 해도 잘 안 되더라고. 바느질은 자신도 없고 뜯어진 천 소재가 원래 성긴 것 같아서 대신 본드를 샀는데, 면에도 쓸 수 있다는데 거짓말인 것 같아. 잘 안 신는 양말 잘라서 덧대 붙이려고 했거든? 처음에는 좀 붙어 있는데, 다 마르고 나면 또 딱딱하게 굳어서 떨어져 버려.
일단은 출국할 때 한국에서 가져온 가방을 다시 써야겠어. 독일 와서 가방 사고 나서 옛날 거 버리려다가 귀찮다고 미루고 있었는데 이게 도움이 될 줄이야. 그 가방이 무거워서 그렇지 튼튼하긴 해. 중학생 때 산 가방을 지금도 쓰고 있네……. 아 근데 오래 메고 다니기에는 진짜 무거운데. 그렇다고 가방 또 사기도 짜증 나고. 여행 다녀오면 가방 수선 재도전해야지.
그리고 지금 내 방에는 거미가 두 마리 살거든? 그렇게 크지도 않고 귀퉁이에 있어서 그냥 날벌레 잡아먹고살라고 내버려 두고 있었는데, 요즘 자꾸 범위를 넓히려 들고 벌레도 잘 못 잡는 것 같아서 싹 청소해 버릴까 고민 중이야. 볼 때마다 사냥에 실패하고 있다. 아직까지 살아있는 걸 보면 아예 굶는 건 아닌 모양이지만.
아 한여름 되기 전에 방충망도 다시 보수해야 한다. 요즘은 또 벌레가 잘 안 들어와서 잊고 있었어. 그래도 방충망이 잘 돼있어야 밤에도 창문을 열 수 있으니까. 지금은 밤에 내 방 불만 켜져 있으면 창문에 나방 붙어 있어서 진짜 끔찍하거든. 아직은 그렇게 덥지 않아서 밤에는 창문 안 열어도 괜찮은데, 진짜 여름 되면 좀 다를 것 같잖아.
기숙사에서 7월을 어떻게 날지가 걱정이다. 에어컨도 선풍기도 없고. 커튼도 귀찮아서 설치 안 해서 햇빛도 그대로 들어올 거라. 그래도, 다들 대충 살 만하니까 에어컨이 없는 거겠지 싶긴 해. 난 더위도 덜 타는 편이니까. 괜찮겠지?
근데 여행할 때도 이제는 날씨가 신경 쓰이더라. 처음에는 그냥 비 안 오고, 날 좋고, 또 옷차림 가벼워서 좋았거든. 근데 8월 여행 계획 세우면서 보니까 처음에는 옷 챙겨도 부피가 작아서 좋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10분만 밖에서 걸어도 힘들 거고, 밤새 이동하는 무박 여행하면 못 씻어서 땀냄새날 거고, 여러 명이랑 같이 쓰는 도미토리형 숙소 가면 냄새나고 샤워실도 붐비겠구나 싶고. 애초에 호텔 아니면 에어컨 있는 숙소가 거의 없더라. 대체 어떤 한 달 배낭여행이 될지 벌써 떨린다. 긍정과 부정의 의미 둘 다로.
지금 월요일 밤에 편지 쓰고 있는데, 화요일에 공항 근처에 잡은 숙소로 갈 거야. 수요일 아침 7시 비행기라서. 그거 타고 런던 히드로 공항 가면, 거기서 바로 페스티벌 부지로 가는 버스를 탄다. 카드 환전은 했는데 현금 환전을 안 해서 공항 도착하고 시간 나면 파운드 좀 뽑으려고. 공항에서 하면 비싸겠지만 미리 안 한 내 잘못이지 뭐. 요즘 환율이 그래도 좀 떨어져서 다행이다.
또 갔다 와서 편지 쓸게요. 거기서 어떤 일이 일어나서 엄마한테 알려줄지 궁금하다. 음악 페스티벌이기도 하지만 워낙 규모가 큰 축제라 단순한 음악 페스티벌 이상이거든. 내가 다녀와서 알려주마.
그럼 안녕!
엄마를 사랑하는 딸 김지눅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