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시에서 보내는 쾰른 편지

2023년 6월 13일 (화) 오후 8:39

by all humamwrites


엄마에게


엄마야 안녕. 지금 내 방에 들어온 파리로 고통받다가 창문과 방충망 사이에 가둬두고 편지를 쓴다. 오늘 아침에는 시청에 가서 드디어 비자를 받아왔어. 어제 피곤했는데 아침 9시로 시청 예약이 잡히는 바람에 일찍 일어났다가 비자받고 다시 낮잠을 3시간이나 잤네.


독일 도착했을 때부터 비자 빨리 받으려고 신경 썼는데 이제야 받게 됐다. 맘 놓고 영국에 갈 준비를 해야겠어.




지난주에는 쾰른에 다녀왔어. 금요일에 쾰른에서 하는 콘서트가 있어서 그걸 보러 가는 김에 쾰른 관광도 하기로 했지. 원래 혼자 갈 생각이었는데 이틀 전에 c도 합류하기로 해서 원래 잡아놓았던 숙소에 한 명을 더 추가했어.


그래서 금요일엔 도착해서 독일식 족발 같은 학센을 같이 먹고, c는 혼자 쇼핑하러 놀러 다니고 난 콘서트 보러 갔지. 뮤즈라는 락밴드인데, 중학생 때 j가 노래방에서 그 밴드 노래를 불러서 처음 알게 됐거든? 근데 그때는 노래는 좋은데 목소리가 이상하다고 생각해서 별로 좋아하지 않다가(그때는 심지어 j가 부른 게 더 듣기 좋다고 생각했다) 한참 후에 다시 들어봤더니 너무 좋아서 다시 듣기 시작했지.


그리고 이번에도 오프닝 밴드인 로열 블러드도 엄청 좋아하는 밴드인데, 사실 오프닝 밴드를 더 기대하고 있을 정도였어. 그런데 실제 공연 보니까 뮤즈가 더 선배인 이유를 알 것 같더라. 너무 잘 놀아서 다음날 계속 목소리가 살짝 이상했어.




사실 쾰른은 그렇게 볼거리가 많은 도시가 아니라 4일이나 머물 필요는 없었는데, 일요일이랑 월요일 기차표 값이 차이가 많이 나서 월요일에 오게 됐거든. 그랬더니 3일 내내 엄청 여유롭게 다녔다. 할 일이 별로 없었거든.


토요일에는 아침부터 디저트를 거하게 먹었어. c가 워낙 달달한 디저트를 좋아하거든. 독일의 케이크 바움쿠헨을 독일에 와서 처음 먹었지. 바움쿠헨은 독일어로 그냥 나무 케이크이라는 뜻인데 가운데 구멍이 난 납작한 원통 모양에, 나무의 단면처럼 나이테가 그려져 있어. 한 겹 한 겹 얇게 쌓아서 케이크를 만드는 거라 손이 많이 간대.




쾰른에서 가장 유명한 건 아무래도 쾰른 대성당인 것 같은데. 진짜 커. 정말 정말 커. 그냥 보자마자 헉 싶기도 한데, 진짜 '대'성당이구나 다시 느낀 게. 여기 미술관 갔을 때 조그맣게 루프탑 공간이 있어서 잠깐 갔거든? 근데 큰 성당 같은 건물이 두 개 보이는 거야. 그래서 어 둘 중에 뭐가 쾰른 대성당일까, 했는데 그러고 나서 딱 고개 돌렸더니 그 두 개랑 비교도 안 되게 커다란 놈이 떡하니 서있어서 어우 쟤구나 하고 바로 고개를 끄덕였지. 나는 가우디 성당보다 얘가 더 예쁜 것 같아. 크기랑 색 때문에 압도적이기도 하고.


대성당 보고 나서는 미술관이랑 향수 구경을 했지. 오 드 코오롱의 ‘코오롱’이 쾰른이거든. 유명한 향수 가게가 있어서 기대했는데 생각보다 엄청 작았고, 우리가 이미 프랑스 그라스에서 향수 관광을 할 만큼 해서인지 인상적이지는 않았어. 하지만 향이 좋은 것이 몇 가지가 있어 샘플 사이즈로 사 왔어. 하나는 정말 정말 맘에 들어서 큰 사이즈로 사고 싶었는데 그라스에서 이미 너무 많은 향수를 사서……. 이때 샘플 세트가 애들 선물용으로 좋았는데 사 올 걸 그랬나. 후회 중.


밥 먹으러 가는 길에 가게 구경하면서 갔는데 치즈 가게가 있는 거야. 시식할 수 있는 것도 많아서 먹어봤는데 진짜 맛있었어. 오래된 치즈는 딱 먹자마자 어 이거 맥주 안주인데!라는 생각이 들었어. 집에 가져가서 아빠랑 나는 맥주 안주로, 엄마는 와인 안주로 하면 딱 좋을 텐데. 기념품 살 생각하면 내가 여기 오래 머무는 게 아니라 그냥 딱 여행하고 후딱 돌아가는 게 맘 편했을 것 같다니까.




일요일에는 독일 가게가 많이 닫아서 할 일이 많지 않거든. 일단 미술관 하나를 보기로 했고 다른 일정은 없었는데, 숙소 호스트가 필하모니 공연 티켓을 우리에게 주셨어. 그 공연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분이 호스트의 다른 숙소에 머물면서 티켓을 줬는데, 자기가 못 갈 것 같다면서 말이야. 클래식을 즐겨 듣는 건 아니지만 이런 기회가 있다면 놓칠 수 없잖아?


엄마가 카톡으로 졸지 않았냐고 물어봤을 때 좀 찔리긴 했다. 엄청 졸렸는데 그래도 안 졸았어. 다만 눈을 감고 듣고 싶은데, 눈 감으면 무조건 졸 것 같아서 쭉 눈을 잘 뜨고 들어야 했지. 어차피 잘 모르지만, 2부는 정석 클래식 같았지만 1부는 은근히 영화 음악 같기도 해서 둘이 다른 느낌으로 좋았어. 금요일에는 락밴드 콘서트 가고, 일요일에는 클래식 콘서트 간 게 재밌지.




그리고 카톡 할 때 내가 엄청 좋은 일이 하나 있다고 했잖아? 그건 이날 간 미술관에서 베르트 모리조 작품을 봤다는 거야. 전에 베를린 구국립 미술관에서 인상주의 작품이 많은 걸 보고 모리조 작품도 있을까 기대했는데 없었다고 했지. 이번에는 아무 생각 없이 보고 있었는데 어? 해서 보니까 모리조였어. 그리고 나는 풍경 그림, 특히 항구 그림을 좋아하나 봐.


c도 미술관에서 엄청 맘에 드는 그림을 찾아 둘 다 신난 상태로 나왔어. 그리고 저녁을 먹으러 간 한식집도 엄청 맛있었어. 치즈 불닭이랑 파전을 먹었는데 정말……. 보통 여기서 한식집 가면 맛이야 있지만, 한국이었으면 굳이 이 돈 주고 안 사 먹을 수준의 가게들이 많은데, 여기는 진짜 맛있어서 놀랐다니까. 한국이었어도 찾아갈 것 같아.




정말 완벽한 하루가 될 뻔했는데 숙소 문제가 터져서 심란했지. 화장실 안에 샤워부스가 있어 그 문을 닫고 샤워해야 하는데 우리가 문을 제대로 닫지 않아 물이 샜고, 그것 때문에 화장실 문틀이 젖어서 틀어졌다는 거야. 엄청 친절하고 친근한 호스트였기도 하고, 우리도 하루를 더 묵어야 하는 상황이라 우리도 부드럽게 대응하고 숙소 예약 업체랑 같이 이야기하기로 했어.


골치 아프긴 했는데 둘이 같이 있어서인지 금세 다른 이야기하면서 여행 끝까지 잘 놀긴 했어. 혼자였으면 더 스트레스받았을 것 같은데 우리도 처음에 놀라긴 했지만 나중에는 또 어떻게든 되겠지 하게 되더라고. 사실 이번 여행은 숙소 문제 말고도 나 혼자 이래저래 비자나 다음 여행, 기숙사 문제 등으로 신경 쓸 게 많은 시기에 갔거든. 혼자였으면 자꾸 소용도 없는 걱정 하면서 시간 낭비했을 것 같은데 c랑 같이 가게 되어서 다행이야. 계속 수다 떨면서 다니니까 혼자 땅굴 팔일은 없었지.




월요일에는 정말 할 일이 없어서 카페에서 한참 앉아서 숙소 문제 답변 고민하고, 이런저런 수다 떨다가, 서점도 두 군데 들러 구경하고. 기차역에서 대충 밥 때우고 돌아온 게 다야. 서점에서는 베를린에서 전시를 봤던 독일 영화감독 관련 책이랑, 한강 채식주의자를 독일어 버전으로 샀다. 읽지도 못할 책을 왜 사는지.


시간이 많았더니 꼭 여행이나 해외 이야기가 아니라 일상적인 이야기도 많이 나누게 되어서 더 재밌었어. 그냥 한국에서 하던 것처럼 진로 얘기, 좋아하는 것 얘기하다가 불현듯 생각해 보니 우리가 해외에 있다는 사실이 더 이상 특별하지 않은 기분이 들어서 그게 특별하달 지. 벌써 나름의 적응을 했구나 싶고. 벌써 여기서 3개월이 넘게 지내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그리고 내 영어와 독일어 실력도 전혀 늘지 않았다는 것도…….


가끔 내가 할 수 있는 독일어를 하려고 해도, 문제는 내가 독일어 질문을 하면 당연히 독일어로 답변을 해주는데 그걸 내가 못 알아듣는다는 거야. 그래도 드문드문 아는 단어와 눈치로 이해할 때는 꽤 뿌듯하다.




숙소 문제도 계속 업데이트해 줄게. 꽤 큰돈이라 잘 해결되길 바라는데 말이지. 그리고 뉘른베르크에서 쓰고 부치지 못한 엽서는 베를린에서 샀던 우표를 붙여서 쾰른에서 보냈어.


이제는 나 학교 갈 준비한다. 안녕!


엄마 딸 김지눅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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