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6일 (화) 오후 9:30
엄마에게
엄마야 안녕. 처음으로 말도 없이 지각해 버렸네.
뉘른베르크에서 돌아오는 길에 예정에도 없이 프랑크푸르트에서 놀게 되면서 편지 보내는 걸 잊어버렸어. 한 명 생일이어서 한국인 몇 명이 오랜만에 얼굴 봤거든. 카톡 보내놨으니 걱정은 안 했겠지만 그래도 기다리고 있었을 텐데 미안해.
월요일이 제일 힘든 요일이니까 월요일에 편지 보내주려고 했는데 항상 월요일이 내 마지막 여행날이어서 시간 맞춰 쓰기가 어렵다. 이참에 화요일 편지로 바꿀까 봐.
뉘른베르크에는 락임팍이라는 록페스티벌이 있어서 갔어. 유럽 와서 보는 첫 록페스티벌이었지. 페스티벌은 금토일인데, 하루 일찍 가서 목요일에는 관광을 잠깐 했어. 그래봤자 시내 거리를 걷고 박물관에 하나 가는 게 다였지만.
뉘른베르크는 뮌헨이랑 가까운 곳이라 그런지 내가 생각하는 전통적인 독일 모습이랑 가장 비슷한 것 같아. 그리고 내가 간 기간에 무슨 축제도 있다고 들은 것 같은데, 간단한 전통 의상을 입은 사람들도 많이 보였어. 페스티벌 부지로 가려고 기차역에서 기다리는데, 우리 플랫폼에는 다 밴드 로고 새겨진 티셔츠 입고 있고, 바로 옆 플랫폼에는 전통 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많아서 웃겼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밴드가 너무 이른 시간에 공연해서 나도 페스티벌에 일찍 가야 했어. 페스티벌 첫날이니까 입장 줄이 길 거라 생각해서 미리 갔는데 엄청 한산하더라고.
원래는 일찍 들어간 김에 그냥 부지 구경하고 배를 좀 채울 생각이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밴드 보컬이 목을 푸는 소리가 들리는 거야. 그래서 갑자기 얘네를 코앞에서 볼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서 두 시간쯤 대충 기다리고 엄청 좋은 자리에서 봤어.
이 밴드 이름은 낫띵벗띠브즈인데 사실 한국에서도 한 번 공연을 봤어. 그때도 엄청 좋았고, 그때 얘네가 이틀 연속 공연을 하는데 그중 하루만 갔거든. 근데 그 해에 내가 가장 후회하는 것 중 하나로 이 밴드 공연을 두 번 다 가지 않은 걸 떠올릴 정도였지.
원래 좋아하던 곡들 다시 들은 것도 좋았고, 그 이후로도 3년이 더 지났으니 새로운 곡도 많이 나와서 그것들을 들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 가장 마지막에 나온 신곡을 듣지 못했다는 거 하나가 아쉽네.
Overcome이라는 노래인데 처음 들었을 때는 이 밴드 스타일과 다르다고 생각해서 맘에 안 들었거든. 그런데 지난번 칸에 가기 위해 새벽에 버스를 타고 이동하고 있을 때 어쩌다가 그 노래를 들었는데 처음으로 노래를 들으면서 코끝이 찡해지는 경험을 했거든. 노래 들으면서 운 적이 한 번도 없는데 그때가 가장 가까운 순간이었던 것 같아. 엄마도 한 번 들어봐.
내가 이번 페스티벌에서 가장 보고 싶은 아티스트 두 팀 다 금요일에 있었고 충분히 잘 놀았기 때문에 이 날 하루 즐긴 것만으로도 3일 값어치를 한 것 같았어. 이제 그냥 기센으로 돌아가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하지만 당연히 그러지는 않았지.
토요일 헤드라이너는 독일의 엄청 유명한 밴드 Die Toten Hosen이었어. 독일어를 처음 공부하고 내가 뭘 읽을 수 있나 궁금해서 독일 뉴스 기사를 보러 갔을 때, 이 밴드가 40주년을 맞이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어. 그때 이후로 가끔 들었는데, 기센에서 라이브 공연을 하는 펍에 갔을 때 공연하던 밴드가 이 디토텐호젠의 곡을 하고 시작하더라고. 내가 아는 독일어 노래가 거의 없는데 그걸 하다니! 싶어서 너무 반가웠어.
아마 우리나라의 부활이랑 비슷한 위치가 아닐까 생각해. 굳이 이 밴드의 팬이 아니라도 독일인이라면 다 아는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 모든 관객들이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거든. 이 노래가 뭔지, 무슨 가사인지, 어떻게 호응해야 하는지 다 아는 것 같았어. 나도 가사는 몰라도 멜로디는 익숙해진 상태여서 대충 따라 놀 수 있어서 재밌었어. 이런 경험을 언제 해보나 싶고.
하지만 동시에 소외감이라는 감정을 느끼기도 했던 것 같아. 당연히 독일에 온 이후로 계속 외국인, 외지인이었지만, 그 공연을 보고 있는 순간에 가장 크게 느꼈다. 타지에 혼자 떨어진 주인공이 가족 파티에 초대되어서 웃고 떠드는 다른 사람들을 지켜보는 게 슬로모션으로 보여지는 영화 장면에 들어간 것 같았어. 뭔 느낌인지 알지. 나도 한국 돌아가서 모르면 간첩인 한국 노래 들으면서 놀고 싶다!
금요일, 토요일 둘 다 12시 언저리에 갔는데, 일요일은 보고 싶은 첫 공연이 4시라 급하지 않았어. 원래는 근처에 엄청 평이 좋은 현대 미술관이 있길래 갔다 가려고 했거든. 그런데 아침에 눈을 떠서 준비를 하려다가, 갑자기 여기까지 가면 오늘 밤에 너무 힘들 것 같은 거야. 그래서 혼자서 머리 터져라 고민하다가 그냥 안 가고 숙소에서 쭉 쉬었어. 미술관을 놓친 게 아쉽긴 한데 일단 이 여행은 공연을 즐기는 게 가장 중요하니까.
그리고 3일의 록페스티벌을 마무리한 건 푸파이터즈라는 밴드야. 좋아하던 곡을 다 들을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어. 특히 노을 지는 하늘 아래에서 들으니까 더욱. 한국 페스티벌은 헤드라이너 공연을 할 때 이미 어두워진 상태였던 것 같은데, 여기는 서머타임 때문에 헤드라이너 시작할 때는 좀 밝다가, 점점 노을이 져서 끝날 때쯤 완전히 어두워지거든. 그 낭만이 따로 있네. 이게 야외 페스티벌의 묘미인 것 같아.
사실 노래로만 따지자면 금요일 헤드였던 킹스오브레온을 더 좋아하는데, 페스티벌의 마무리로는 푸파이터즈가 딱이었던 것 같아. 정말 관객까지 포함해서 다 함께 완성하는 무대 같다고 해야 하나.
이렇게 3일 동안 잘 놀았다. 매일 밤 숙소 갈 때마다 기절하듯이 잠들었어. 긴팔 긴바지 입고 얼굴에는 선크림을 잘 발라서 다른 곳은 괜찮은데 손등이 까매졌다. 그리고 먼지가 엄청 많이 묻어서 까만 모자는 회색이 됐고 하얀 운동화는 베이지색이 됐어.
페스티벌에 갔다가 G시로 돌아오니까 글래스톤베리 티켓이 우편함에 도착해 있더라고. 벌써부터 기대되네.
엄마는 원장 선생님이 바뀌었다면서. 특강 수업할 별명은 정했어? 이름 정하고 또 알려줘.
이번에는 아빠한테 엽서를 못 보냈어. 엽서를 쓰기는 했는데 우표 사는 곳을 결국 못 찾았거든. 그냥 엽서에 몇 유로 붙여서 우체통에 넣어버릴까 하는 생각도 했는데 꼭 쓰려니까 우체통도 안 보이더라고. 나중에 아무 데서나 보낼게.
엄마를 사랑하는 딸 김지눅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