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를 배우고 있었다.
“쉼표가 있잖아요. 쉼표를 확실하게 쉬어주셔야 돼요.” 곽샘이 말했다.
“쉼표를요? 아, 제대로 안 쉬었나요?”
“쉼표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치셨어요. 될 수 있으면 아예 숨까지 쉬어주세요. 이렇게. 흡후...”
“흡후... 이렇게요?”
“예. 쉼표도 하나의 음표예요. 소리는 나지 않지만 그 음악의 중요한 일부라구요. 쉴 때 확실히 쉬어주는 것만으로도 소리가 달라져요. 음악에 여유가 생기죠. 반대로 쉼표를 제대로 쉬어주지 않으면 소리가 조잡해져요. 뭔가 급한 느낌이 나고, 음악을 서두르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다른 음표들까지 소리가 이상해져요. 그러나 그 쉼표를 그 길이만큼 확실히 쉬어주면 다른 음이 살아나죠. 쉼표도 그 음악의 중요한 일부라는 걸 아셔야돼요.”
“예, 그렇군요.”
“그리고, 템포가 빨라질수록 흥분하시면 안돼요. 숨 쉴 때 확실히 쉬고, 더 차분하게 치셔야돼요. 음악을 다스리라는 얘기죠.”
그 당연한 얘기를 왜 지금까지 몰랐을까. 그저 4분음표, 16분음표 등 콩나물에 꼬리 달린 것들만 찾아 치느라 바빠서 쉼표를 등한시한 것이다. 작곡가가 쉼표를 그려넣은 것은 그 만큼 쉬어달라는 의미다. 쉰다는 얘기는 소리가 없는 상태 또는 직전에 친 음표의 음이 그냥 울리고 있는 상태다. 적막이 될 수도 있고, 은은한 메아리만 있는 상태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뒤에 올 빠른 레가토를 준비하는 시공간이 될 수도 있고, 직전에 친 화음을 음미하는 시공간이 될 수도 있다. 시공간이라는 단어를 쓴 이유는 시간과 공간은 원래 분리돼 있지 않고 함께 묶여 있기 때문이다. 음악은 기본적으로 시간예술이다. 음이 시간을 따라 흐르면서 하나의 예술작품을 형성한다. 그러나 시간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피아노와 그 앞에 앉아 있는 연주자, 그리고 연주자의 손이 피아노 건반을 누르는 행위는 3차원 즉, 공간이다. 그 공간에서 건반을 누르는 행위는 시간에 맞춰 이뤄진다. 4차원인 것이다. 그래서 시공간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인생을 `연주‘한다. 한번 가면 다시는 오지 않을 인생이므로 심혈을 기울여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나간다. 경쟁사회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우월한 지위를 차지하고 더 많은 부를 얻고, 더 높은 명예를 얻기 위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공간을 전력 질주한다. 우리나라의 어린이들은 유치원 때부터 또는 그 이전부터 바쁘게 인생을 산다. 엄마를 따라 영어학원에 갔다가, 수학학원, 피아노학원, 미술학원을 정신없이 왔다갔다 한다. 부모는 자기 아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모든 분야에서 더 월등한 성적을 내기를 바란다. 그래야 그 아이의 미래가 밝다고 여긴다. 그런 부모의 기대에 아이가 잘 부응한다고 치자. 아이는 초등학교에서, 중학교에서, 고등학교에서 공부를 열심히해서 좋은 대학에 입학한다. 그리고 행정고시를 본다. 대학 졸업반 때 행시에 합격한다. 이제 인생은 탄탄대로인 것 같다. 사무관을 거쳐, 서기관, 부이사관, 1급에 차관보까지 직업관료가 거치는 엘리트 코스를 모두 밟는다. 그 와중에 국비로 미국 유학까지 가서 박사학위를 받아온다. 그의 인생에 실패란 없다. 오로지 약진만이 있을 뿐이다. 그의 인생은 씩씩한 행진곡이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그의 인생 악보에 쉼표가 없다. 그는 오로지 공부와 업무밖에 몰랐다. 그리고 그 두 가지를 너무나 잘했다. 인생의 굴곡은 없었다. 그가 과연 어디까지 올라갔을까. 그는 차관이 되지 못했다. 차관보까지는 직업관료가 일만 잘하면 올라갈 수 있다. 그러나 차관은 일만 잘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정치적으로 결정되는 자리다. 그는 차관보를 끝으로 은퇴한다. 나이는 아직 오십대 중반밖에 되지 않았다. 이제부터 어떻게 살 것인가. 그는 자신이 차관이 되지 못한 것은 이 세상이 정상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자기보다 일도 못하고 지방대학을 나온 동료가 자기를 제치고 차관이 될 수 있을까. 그야말로 `멘붕’이다. 세상 사람들을 보기가 싫다. 그저 주위 사람들과 연락을 끊고 집에 칩거한다.
그의 인생 악보에는 쉼표가 없었다. 오로지 음표만 있었다. 그가 쉬는 방법을 일찍 터득했더라면 오히려 자신의 은퇴를 기뻐했을 것이다. 밤을 새워 공부와 업무를 하다가도, 어느 날 훌훌 털고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 다른 세상을 감상한다거나, 평소에 미니어처 건축물을 만드는 취미를 가졌다거나, 주말마다 패러글라이딩이나 스쿠버 다이빙을 즐겨했다면 그의 인생 2막은 자신이 진정으로 즐기는 일로 채워질 수 있었을 것이다. 또는 인생에 공부와 업무보다 더 중요한 무엇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계기가 있었다면 막상 공부와 업무가 끝났을 때 `멘붕‘ 상태에 빠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가 주중에는 업무에 몰두하다가도 주말이면 만사 제쳐두고 낚시를 하러 방방곡곡을 달려간다거나, 영화에 빠져 영화평론을 틈틈이 쓴다거나, 카메라를 들고 전국의 골목길을 찾아다닌다거나 했다면 그의 인생 2막이 그리 삭막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가 정말 즐길 수 있는 취미를 갖고 었었다면 공직생활을 마쳤을 때 그 취미를 인생 2막으로 `레가토’시킬 수 있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막상 살다보면 그렇게 여유를 갖기가 쉽지 않다. 인생을 고속으로 질주하다보면 ‘쉼표에서 확실히 쉬어주고’ `더 빨리 달려야 할 때 흥분하지 않고 더 차분히‘ 달리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승진이 눈앞에 보이고 일확천금이 바로 코앞에 있는데 어떻게 차분할 수 있을까. 바로 거기에서 고수와 하수의 차이가 나타난다. 승진의 사다리를 올라가기 위해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은 결국 인심을 잃는다. 주위 동료들의 진심어린 존경이나 우정이 없다면 하루하루의 생활이 별로 즐겁지 않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실의에 빠진 아랫사람을 다독여주기도 하고, 승진 못한 동료들과 코가 삐뚤어지게 술을 마시며 그를 위로해주기도 하고, 잘 나가는 동료에게 질투의 눈길 대신 선의의 농담을 던지는 여유를 가지는 것, 바로 그것이 고수의 여유다. 바둑도 마찬가지고 피아노 연주도 마찬가지고, 마라톤도 마찬가지고 인생도 마찬가지다. 고수는 그 게임을, 그 연주를, 그 인생을 `다스릴 줄’ 안다. 또는 남녀관계도 마찬가지 아닐까. 불타오르는 사랑에 모든 것을 맡기고 단기간에 모든 감정을 태워없애기 보다는, 뜨겁게 불타는 사랑의 감정을 차분하게 쉼표를 확실히 쉬어가며 `다스린다면‘ 그 사랑은 더 오래 지속되지 않을까.
마라톤도 다스려야 한다. 마라톤 대회에 출전할 때 예상기록은 대충 머릿속에 그려져 있다. 어찌보면 마라톤 경기가 열리는 날은 머릿속의 기록을 확인하는 날에 불과하다. 그 전날까지 기록은 이미 나와있다. 무슨 얘기냐 하면 평소에 헬스클럽에서 다리 근육을 강화하고, 일주일에 70km 이상 달리는 연습을 하지 않았다면 마라톤 풀코스의 기록이 좋을 것이라고는 결코 기대할 수 없다는 말이다. 나로 말하자면 그저 4시간대 초반만 나와도 잘 달린 것이다. 그러나 3시간대 기록에 다시 진입하는데 실패했다고 해서 나의 레이스가 모두 실패한 것은 아니다. 마라톤은 완주에 의미를 두는 스포츠다. 풀코스 즉, 42.195km를 달리는데 초반에 너무 힘을 쓰며 빨리 달린다면 얼마 못가서 레이스를 포기하게 된다. 그래서 페이스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 그날 컨디션이 좋다고 처음부터 마구 달리면 안된다. 컨디션이 좋을 수록 초반에 천천히 달려야 한다. 마라톤에는 "달리면서 쉰다"는 말이 있다. 천천히 달리면서 페이스 조절을 하고 힘을 비축한다는 얘기다. 마라톤에서도 쉼표가 중요하다. 그렇게 가다가 땀이 나기 시작하면 그때 약간 속도를 올리고, 30km지점을 지나면 또다시 약간 속도를 올리고, 35km 지점을 지날 때 힘이 남아있으면 그때부터는 달릴 수 있는 속도로 달리면 된다. 그렇게 완주한 뒤에는 한 달 정도 달리지 말고 쉬어야 한다. 쉼표. 그래야 다음 마라톤을 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