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건 다 가졌다.. 그런데 죽어야한다니...

조 블랙의 사랑

by 비마

평생 일에 몰두했다. 이제 큰 커뮤니케이션 그룹의 회장이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두 딸도 나를 사랑한다. 행복하다. 그리고 내 나이 겨우 65세. 더 이상 원하는 것이 없을 정도로 다 가졌다. 그런데, 저승사자가 나를 찾아왔다. 이게 뭐지? 뭐긴 뭐야 그게 인생이지.


그런데, 그 저승사자가 내가 가장 사랑하는 둘째딸과 사랑에 빠졌다. 그리고는 나와 함께 그 딸 마저 데리고 저승으로 가겠다고 한다. 이건 뭐지? 뭐긴 뭐야 그거야 말로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시츄에이션이지.

아무튼 재미있게 봤다. 내가 보기에는 저승사자를 등장시켜 인생을 한번 비틀면서 바라본 영화다.

영화사에 길이 남을 탱고를 선보인 '여인의 향기(Scent of a Woman: 1992년작)'로 `알 파치노(Al Pacino: 1940년생)'에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마틴 브레스트 (Martin Brest: 1951년생) 감독. 이번에는 `조 블랙의 사랑(Meet Joe Black: 1998년작)'으로 브래드 피트 (Brad Pitt: 1963년생) 를 명배우로 한 등급 올려주고, 영국 출신 2급 할리우드 배우 클레어 폴라니 (Claire Forlani: 1972년생)의 숨겨진 미모와 매력을 만천하에 한껏 드러내 보여준다. 영화 제작 당시 마틴 브레스트 감독은 47세. 주인공인 앤서니 홉킨스 (Anthony Hopkins: 1937년생)는 61세. 브래드 피트는 35세. 클레어 폴라니는 26세였다.


줄거리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종합병원 내과 레지던트인 폴라니 (편의상 배우의 이름을 사용)는 어느날 커피숍에서 브래드 피트를 우연히 만나고 그를 좋아하게 된다. 그런데, 그는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그의 몸을 저승사자가 빌려 앤서니 홉킨스를 방문한다. 이제 갈 시간이 됐다며. 그런데, 홉킨스의 딸인 폴라니와 마주치게 되고,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진다. 저승사자는 홉킨스에게 딸도 함께 저승으로 데려가겠노라고 말하고 홉킨스는 분노한다. 홉킨스의 분노와 설득에 계획을 재고하는 저승사자. 결국, 홉킨스의 65세 생일 파티후에 홉킨스만 데려가고, 브래드 피트의 몸에 다시 원래의 영혼을 넣어 환생시켜준다. 브래드 피트와 폴라니는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저승사자가 인간계에 내려와 인간사에 개입한다는 줄거리가 매우 흥미로웠다. 나한테 어느날 저승사자가 말을 걸면 어떤 기분일까.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질 수도 있을까. 영화를 보며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때로 사람들의 흥미를 끌려면 황당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매우 효과적이다. 이 영화는 그런 황당한 이야기를 매우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고, 그래서 스토리의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다. 영화라는 것이 그런 것 아닌가. 황당한 이야기를 하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세상사를 잊고 잠시 이야기에 몰입하도록 하는 것. 그리고, 영화가 끝났을 때 관객들이 약간의 감동과 함께 몰입한 이야기가 끝난데 대해 아쉬움을 느끼도록 하는 것. 물론, 그에 더해 인생의 의미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한다면 그저 영화가 아니라, 명화가 된다.


홉킨스의 얘기를 안할 수가 없다. 1992년 조너던 드미 ( Robert Jonathan Demme) 감독의 영화 `양들의 침묵 (The Silence of the Lambs)' 에서 희대의 사이코패스 연쇄 살인마 `한니발 렉터'역을 소름돋을 정도로 생생하게 그려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영국 출신 배우다. 그는 `조 블랙의 사랑'에서는 인생의 정점에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저승사자를 따라가야 하는 65세 남성을 역시 멋지게 그려냈다. 인간이 저승사자를 만날 때 수백만 가지의 방식으로 반응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그가 그때까지 어떻게 살아왔느냐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날 것이다. 어떤 사람은 겁에 질려 혼비백산한 모습을 보일 수도 있고, 누구는 제발 시간을 좀 더 달라고 애원하는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홉킨스처럼 품위를 갖추고, 주제넘게 인간을 사랑하는 저승사자를 꾸짖으며, 당당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한 인간의 품위라는 것은 어느날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방식과 추구한 목표가 그 품격의 유무(有無)와 고저(高低)로 나타난다. 그에게 품격이 있느냐 없느냐, 있다면 얼마나 높으냐가 저승사자에 대한 태도를 결정한다.


이 영화에는 명대사가 많다. 생각나는 건 모두 홉킨스의 대사이다.

몇가지 꼽아보자면,

"사랑은 열정이고, 집착이다. (Love is passion, obsession)"

"삶의 여정에서 사랑에 깊이 빠져보지 않는다? 그건 전혀 인생을 산 게 아니야. (To make the journey and not fall deeply in love? Well, you haven't lived a life at all.)"

딸을 데려가겠다는 저승사자에게.

"뭐든 너를 즐겁게 해주기 때문에 그걸 가지겠다? 그건 사랑이 아니지. (To take whatever you want because it pleases you. That's not love.)"

저승사자: "그럼 뭐야? (What is it?)"

"그냥 막연한 열병이고 당장 네가 마음껏 채우고 싶은 욕구지. 거기엔 중요한 건 다 빠져있어. (Some aimless infatuation which, for the moment, you feel like indulging. It's missing everything that matters.)"

저승사자: "그게 뭔데? (Which is what?)"

"신뢰, 책임... 너의 선택과 감정의 무게를 감당하는 것. 그리고, 그걸 지키면서 남은 인생을 보내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랑의 대상을 아프게 하지 않는 것. (Trust, responsibility.. taking the weight for your choices and feelings.. and spending the rest of your life, living up to them. and above all, not hurting the object of your love.)"

저승사자 "그게 당신이 말하는 사랑의 정의인가? (So that's what love is according to William Parrish?)."

"내 말에 무한대를 곱하고, 그걸 영겁의 깊이까지 가져가봐. (Multiply it by infinity, and take it to the depth of forever.) 넌 그래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감 잡기도 어려울 거야. (And you will still have barely a glimpse of what I'm talking about.)"


마지막으로, 영화 음악 얘기를 빠뜨릴 수 없다. 영화 어느 장면인가 기억은 나지 않지만, `Somewhere Over the Rainbow(저 무지개 너머 어딘가: 영화 `오즈의 마법사' 주제가)'가 은은히 흘러나왔다. 그리고, 마지막에 홉킨스의 65세 생일을 기념하는 성대한 파티에서 관현악단이 무언가를 연주한다. 노래가 아니라 연주였다. 그래서 그 음악이 뭔지는 생각을 해봐야 했다. 이게 뭐였지? 귀에 상당히 익은 음악이었다. 그래, 바로 그거군.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의 "What a Wonderful World (야, 세상 참 멋지다.)" 저승사자에게 끌려가기 직전에 홉킨스가 듣는 음악이다. 이렇게 멋진 세상을 두고 가야하다니. 그런데 하필 왜 이 음악을 연주하나. 약올리는 것도 아니고... 어쨌거나 마틴 브레스트 감독의 멋진 음악 선택이었다.

아, 그리고... `저승사자'가 영어로 뭐냐고? 간단하다. `De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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