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러큐스대 유학기 1996
식료품은 어디에서 사야할까. 물론 김치나 라면등 한국식품은 파는 곳이 따로 있다. 그러나, 커피, 설탕, 우유, 빵, 잼, 파, 물, 콜라, 고기등 다른 식품들은 미국의 식품점에서 사야한다. 씨라큐즈에 정착한 초기에는 납힐 아파트 근처의 그린힐스 (Green Hills)라는 식품점에 자주 다녔다. 그리 큰 식품점은 아니었지만, 그린힐스 카드라는 것을 만들면 물건을 살 때마다 조금씩 할인을 해주었다. 물론, 많이 사면 더 많이 할인의 혜택을 받는다.
그런데, 점차 생활하면서 그 식품점의 물건값이 결코 싸지 않다는 것을 알게됐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한국인들은 모두 웨그만이라는 큰 수퍼마켓에 다니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과 물건값을 비교해보면 내가 산 가격이 조금씩 비싸다는 것이 발견됐다. 글세, 한국도 아닌 미국에서 같은 물건을 조금이라도 더 비싸게 주고 산다는 것은 그리 기분좋은 일은 아니었다.
웨그만에 처음 가면 ‘웨그만카드’라는 것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물건을 살 때마다 할인을 받을 수 있다. 웨그만에서 내미는 서류에 주소와 이름, 전화번호, 사회보장번호등 온갖 것들을 다 기입하면 처음에는 임시카드를 만들어주고, 2주일 쯤 지난 뒤에 집으로 정식 카드를 부쳐준다. 그리고 나면, 일주일에 한 번씩 식료품 쇼핑을 갈 때마다 카드를 지니고 가야 한다. 누구나 그렇게 한다. 씨라큐즈 지역에 사는 사람들 치고 웨그만 카드를 안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드물 정도이다. 언제 가도 약 20개 정도 되는 계산대가 항상 붐비고 있다. 계산대에 있는 기계에 카드를 그으면 컴퓨터가 알아서 각 품목마다 얼마씩 할인해 준다. 20달러 어치를 사면 1불50센트 정도 깎아준다. 물론 품목에 따라 할인율이 다르긴 하다.
웨그만은 전국적인 식품 체인점이다. 그래서 미국에서 어디를 가나 웨그만을 볼 수 있다. 씨라큐즈 지역에도 웨그만이 두 개나 있다. 이 식품점은 무척이나 넓다. 내가 가는 곳은 그야말로 축구장의 잔디가 깔린 그라운드 만한 넓이이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연중 무휴, 24시간 영업을 한다는 사실이다. 언제나 먹을 것이 생각나면 카드와 달러를 들고 웨그만에 간다. 그리고, 사고 싶은 만큼, 돈이 허락하는 만큼 식품을 살 수가 있다. 그것도 다른 식품점들보다 훨씬 싼 가격에...
처음에는 그저 그러려니 생각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넓으니까, 식품점도 이렇게 넓구나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이 지역에 웨그만이 들어오면서 소규모 식품점들은 모두 문을 닫아야 했다. 도저히 가격에서 경쟁이 안되고, 물건의 종류도 많았다. 없는 것이 없다. 화장품에서 휴지, 자동차 냉각수까지 식품외에도 물건이 수없이 많다. 책까지도 판다. 그러니, 사람들은 모두 일주일에 한두번 씩은 반드시 웨그만을 찾아서 식품도 사고, 다른 것도 산다. 웨그만은 사람들이 그렇게 할 수 있게 만들어져 있다.
아무튼, 웨그만의 영향은 소규모 식품점들의문들 닫게 하는 정도로 그치지 않았다. 식품 공급업자들은 웨그만과 거래를 하지 않으면, 장사를 못한다. 이들은 웨그만이 하라는 대로 해야한다. 그래야 식품 장사를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웨그만은 식품업계의 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사실을 몇 달 지난 뒤에 알게됐다.
카드를 만들 때 웨그만 서류에 기입한 나의 신상정보가 온갖 곳에 날아다니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집에 날아드는 쓸데없는 우편물 (junk mail)들로 알 수 있었다. 그 우편물들은 여러 군데에서 보내는 광고쪽지들이었다. 나는 식품만 사기 때문에 그나마 그런 우편물들이 덜 오는 편이었지만, 예를 들어 개를 키우는 집에는 개먹이를 광고하는 쪽지들이 수없이 날아든다. 내가 갓난아기용 기저귀를 산다면, 아기옷, 유모차, 분유 등의 광고가 날아든다.
웨그만은 내가 무슨 물건들을 얼마나 많이 얼마나 자주 사는 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고, 그 정보들을 다른 업자들에게 팔아넘길 수 있다. 무서운 세상이다. 웨그만은 이곳 사람들에게 하나의 식품점이라기 보다는 모든 사람들의 생활을 꿰뚫고 있는 “빅 부라더 (Big Brother)"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