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러큐스대 유학기 1996
납힐 아파트는 한국의 아파트들과 비교해서 겉모양은 대단히 튼튼해 보이는데 실제로는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위층에서 걸어 다니는 소리가 무척이나 크게 들리는 것이다. 분명히 624호 (내가 524호니까)에 사는 사람들은 노인이 아닌 것 같았다. 조금 뛰어다니면 천정이 무너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옆방에서 나는 소음은 그리 크게 들리지 않는다. 내 기억에는 거의 듣지 못한 것 같다.
그런데, 어느날 학교에서 돌아와보니 방문밑에 쪽지가 놓여있었다. 그 내용을 소개해보면 이렇다.
“2월24일. 월요일.
당신은 새벽 1시에 계속 쿵쿵거리며 다니는데 내가 잠을 못자겠어. 이번달에 나는 집세를 ㅡ안낼거고 더 이상 당신이 쿵쿵거리며 다니는 것을 참지도 않을거야 -- 당신은 항상 쿵쿵거려. 그리고 나는 이미 아파트 관리인에게 이 문제를 얘기했는데, 만일 이 소음이 계속되면 나는 다시 아파트 관리인에게 가서 따질거야. 그리고 이번에는 당신의 소음을 녹음기에 녹음해놓겠어.“
나로서는 그렇게 뛰어다니지 않았는데, 이런 쪽지를 받으니 어안이 벙벙했다. 아마도 6층에서 뛰는 소리가 4층까지 들리는 것이거나 옆방에서 뛰는 소리가 그 집에 들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424호에 사는 사람은 아마도 혼자사는 노인일거라고 짐작이 갔다.
그래도, 위층의 충격이 전해지는 정도로 봐서 내가 살살 걸어다녀도 어느 정도는 그 소리가 전해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위협적인 쪽지를 보낸 것이 괘씸하기는 했지만, 오죽하면 그런 쪽지를 보냈을 것인가 생각하니 안됐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날 밤부터는 걸어다닐 때 무척이나 신경을 써서 조심했다. 젊은 사람들도 그런 소음이 잠을 방해하면 신경이 곤두서는데 노인들은 오죽하겠는가!
그런데, 그 쪽지를 보고 생각한 것은 왜 이 사람들은 직접 찾아와서 얘기하지 않고, 쪽지를 슬며시 문밑으로 들여보냈을까 하는 것이었다. 약한 노인이 젊은 사람에게 항의하다가 봉변이라도 당할 까봐 그런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