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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예지 Aug 25. 2021

공부를 하는 중에도 인터넷을 하고 싶어요.


무언가에 몰입되어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경험이 있으신가요? 좋아하는 드라마를 몰아서 볼 때, 밤이 깊어가는 것도 모르고, 졸음도 잊은 채 화면 속으로  빠져듭니다. 



공부를 한다는 건 정확하게 무엇일까요? 공부의 사전적 의미는 '학문이나 기술을 배워서 익힘'입니다. 원래의 뜻은 무엇을 도와 성취하도록 한다'라는 의미에서 출발했습니다.  





학원에서 수업을 듣거나, 책상에 앉아 책을 펴고 바라보고 있는 것이 항상 공부는 아닙니다. 수업을 '집중'해서 듣고,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 책을 읽으며 내용을 머릿속에 저장을 할 때 공부를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한 공부는 나의 지식이 되어  내 생각을 말하고 쓰는 것으로 온전히 나의 것이 됩니다. 남의 질문에 답하는 시험을 통해서도 공부의 결과가 증명되는 것이고요. 



공부가 무엇인지 왜 하는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공부가 연상되는 행위만으로 공부를 한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메타인지라는 개념이 등장합니다. '아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가짜 지식과 '남에게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진짜 지식. 아이들이 학교와 학원에서 열심히 배워왔는데도 막상 시험을 보면 성적이 나오지 않고, '아는 것인데 틀렸다'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친숙함의 오류 때문입니다. 많이 들어본 것이지 내가 진짜로 아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공부를 하는 중에도 인터넷이 하고 싶다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공부에 집중하고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공부를 해야 할 것 같으니까, 책상에 앉긴 했는데, 집중도 안 되고, 하고 싶지도 않으니 당연히 주의가 산만해집니다. 내 주변에서 접하는 것 중에 별다른 노력이 필요하지 않고, 자극이 있고, 최근에 많이 접했던 행위. 이것들의 교집합이 주로 생각납니다. 



생각해 보세요. 우리에게 오락거리가 되고, 작은 쾌락을 주는 단순한 행위들을 한 번 살펴보자고요. 드라마나 영화,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것, 유튜브, 웹툰, 게임, 맛집을 찾아다니며 먹는 행위까지. 그중에 어렵고 지루한 것이 있나요? 



공부라는 것은 의도적이 노력이 필요한 행위입니다. 우리나라만 놓고 본다고 해도, 스스로 원해서 공부를 하는 학생이 몇이나 될까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졸업까지 12년에 이르는 정형화된 학업 스케줄에 따라 학교를 다니고 시험을 보고 성적을 매깁니다. 



대학 가면 One-Way 경쟁은 끝이 나지만, 그때부터 Multi-Way 경쟁이 시작됩니다. 어찌 보면 하라는 것만 하던 때가 더 쉬울 수도 있어요. 내 스스로 기회를 찾아서 그에 맞는 노력을 하고 결과를 보는 것은 사회에 막 발을 디딘 청년들에게 생소하고 어렵습니다.



자율성이라는 것은 근사하게 느껴지지만 동시에 스트레스를 줍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책임지는 것을 싫어하는데, 자율성과 책임은 바늘과 실처럼 붙어 다니거든요. 





제가 아주 좋아하고 삶의 진리로 받아들이는 말이 있습니다. "원하는 것에 집중하지 않으면 원치 않는 것에 집중을 빼앗긴다." 



무엇인가 몰두해야 할 일이 있는데 다른 생각이 난다는 것은, 첫째, 집중해야 할 것에 집중하지 못한 것이고, 둘째로 동시에 엉뚱한 데에 집중을 빼앗기는 것입니다.  엉뚱한 것은 내가 인생에서 이루고자 하는 목표와 상관없는 활동에 해당합니다.



만약 이 학생이, 스스로 정한 뚜렷한 목표가 있고, 그 목표가 자신의 삶에서 중요하다고 느끼며 간절히 원하는 것이라면요? 그 목표 달성을 위한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라면요? 공부하겠다고 앉아서 인터넷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까요? 



물론, 아무리 목표가 있고 간절해도 힘이 드는 활동에는 휴식이 필요하고, 쉬고 싶고, 인터넷도 보고 싶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잠깐의 스쳐가는 생각이지 고민이 될 정도로 하고 싶지는 않지요. 뚜렷한 목표와 실행이 있을 때는 인터넷을 봐도 됩니다. 오로지 필요한 부분에 있어 유용하게 쓰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하고 싶지 않은데 생각나는 것들은 대부분 삶의 중요한 부분의 공백에서 시작됩니다. 



제 경험을 좀 말씀드려 볼까요? 육아로 회사를 그만둔 뒤, 아이가 커 가면서 여유 시간이 늘어났습니다. 스스로 일 적인 에너지가 넘쳐서 집에서 가만히 못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뭐라도 해야지. 언젠가는. 회사를 다시 다니든, 뭘 배우든, 뭔가 할 거야.



하지만, 생각만 하고 '내게 딱 맞는 일을 찾을 때까지' 기다리기만 했습니다. 맞는지 알 수도 없는 일을 하느라 이것저것 건드려 보고 시간, 에너지, 돈 낭비할 필요 없다는, 지금 보면 아주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요.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냥 시간만 흘렀어요. 그 많은 시간은 뭘 하며 보냈을까요? 



유튜브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의미 있는 강의들을 들으려는 목적이었습니다. 실제로, 투자와 자기계발, 의식 성장 관련된 영상들을 주로 봤고, 좋은 세상이라고 생각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친구가 '뭐 하며 시간 보내느냐'라고 하면 자랑스럽게 '유튜브 본다'라고 했고, '유튜브 자꾸 보면 안 좋다'라고 하면, 속으로 '안 좋긴, 공짜로 좋은 강의도 많이 듣고 얼마나 유익한데. 내가 애들처럼 오락 영상이나 보는 줄 아니'라고 생각하며 귓등으로 들었었습니다.



그런데 그 좋은 강의가 좋아하는 가수의 뮤비로 이어지고, 짤막한 영상들의 잔치가 되었습니다. 어떨 땐 1시간가량 되는 좋은 강연도 있었지만, 5분~20분짜리 짤막한 영상으로 일주일이 그냥 가기도 했어요.



이런 삶의 패턴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원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집중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집중을 놓치는 순간, 우리의 주의를 끄는 새롭고 신기한 것들이 끊임없이 유혹합니다. 유익한 것들과 뒤섞여 있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조차 못 하게 됩니다. 



공부를 하는 중에 인터넷이 보고 싶을 때, 인터넷이 문제는 아닙니다. 부엌을 들락거리며 냉장고를 뒤지는 것도, 옆에 있는 침대에 자꾸 눕는 것도, 오지도 않은 카톡을 들여다보는 것도 다 원인은 같습니다. 내가 하는 행위의 목적, 이유, 동기부여가 안 되는 것이 문제이지요. 인터넷은 지루함을 덜어주고 나의 집중을 빼앗길 수 있는 대상이 되어 주는 것이죠.



마음이 흔들리고 머리가 산만해질 때마다 되뇌입니다.  

"원하는 것에 집중하지 않으면, 원치 않는 것에 집중을 빼앗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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