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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예지 Aug 17. 2021

멋진 신세계, 우리 모두가 행복한 노예는 아닐까?

스스로가 자유롭다고 착각하는 사람만큼 
노예화된 사람은 없다.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멋진 신세계(원제 Brave New World)>는 영국의 명문 집안 출신으로서 광범위한 지식과 우아한 문체로 다양한 작품을 남긴 올더스 헉슬리의 대표작이다.



헉슬리는 능률적인 전체주의 국가에 대해 '노예 생활을 사랑하기 때문에 억압할 필요도 없는 무수한 노예들을 통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오늘날의 전체주의 국가에서는 노예들에게 그런 삶을 사랑하게끔 만드는 것이 선전 기관과 언론인, 학교 선생들에게 부여된 사명이라고.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원제 Brave New World> / 소담출판사



섬뜩하지 않은가? 우리도 어디서 이런 비슷한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학교라는 제도를 통한 집단 교육, 철저한 자본주의 하에서 회사로 대표되는 자발적 노예 생활.



한때 국내 철학 관련 강연, 책, 방송 등에서 '냉장고'로 대표되는 자본주의와 '회사'로 대표되는 자발적 노예에 대한 언급이 많이 있었다. "나를 좀 사주세요." 하고 회사에 가서 구직활동을 하고, 딱 먹고살고 아주 약간의 여유를 부릴 만큼의 돈만 받는 회사 생활.



모든 현상을 너무 비판적으로 또는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이 책이 1932년에 초판 발행되었다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현대사회와 우리가 가끔 상상하는 미래사회를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물론, 우려와 경고의 관점으로.



개인적으로는 인간 배양과 완전한 성 개방, 고도로 문명화된 사회라는 측면보다는, 계층 분할을 위해 태아 단계부터 다르게 '만들어지는' 생명과 어린 시절의 최면 교육을 통한 생후 '행동 통제'가 충격적이면서도 뇌리에 깊이 꽂혔다.



가장 낮은 계층(책에서는 '앱실론'이라 칭하고 있다.)은 지적 능력이 필요가 없으므로 산소를 적게 주입해 두뇌 발달과 신체발육을 저지한다. 책을 읽는 개인적인 활동을 하느라 집단생활에 방해가 될까 봐, 어린 아기들을 대상으로 책을 기피하는 조건 유도 작업도 실시한다.



책을 읽는 중간중간 스마트폰과 온라인 중독이라는 키워드가 계속 머리를 맴돌았다. 우리 스스로 두뇌를 남에게 맡긴 것인가? 스스로 고유의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인가? 책과는 달리, 어느 누구도 사회를 통제하려는 목적으로 스마트폰이나 SNS를 만들지는 않았다. 분명, 편리함과 신기술로 시작되었다. 가장 파급력이 큰 것은 기술과 자본의 결합인 것 같다. 결국, '신기술'과 '자본주의'의 결합, 즉 돈을 벌고자 하는 인간의 강력한 욕망이 현재의 온라인 산업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헉슬리가 1946년 개정판을 내며 쓴 머리글을 소개해 본다. 그는 미래에 추진될 '맨해튼계획(2차 대전 당시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계획)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행복의 문제란 사람들이 노예생활을 사랑하게 만드는 것이며, 노예생활을 사랑하는 속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어린 시절 최면을 통한 조건 유도, 경제적인 안정을 통한 노예 생활을 사랑하게 만드는 것. 현실의 (직장을 통한) 자발적 노예와 개념이 같다. 인간적인 차이점들에 관한 발달된 학문을 통해 어떤 개인에게도 그에 걸맞은 자리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한다.



올더스 헉슬리(Aldous Leonard Huxley, 1894~1963)  ※출처 : 나무위키



이 글을 1946년도에 썼다니! 작가의 통찰력이 대단했다는 것도 인정하지만, 사람의 본성과 사회구조의 흐름이라는 것이 결국은 시대를 관통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이상향이어도 사람들은 상당히 자주 현실로부터 휴식을 취할 필요성을 느껴, '술이나 마약보다 덜 해로우며 기쁨을 더 많이 제공하는 무엇'이 필요하다고 한다. 알코올이나 다른 마약들의 대용품. 왜 여기서 자꾸 스마트폰이 떠오르는 것일까? 알코올이나 마약이 특정 연령대나 특정 지역에 한정되어 해를 끼친다면,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온라인 콘텐츠, SNS 중독)은 어린아이부터 나이 든 노인까지, 연령과 지역을 가리지 않고(인터넷 연결만 된다면!), 지구상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아주 강력한 도구가 된다.



더 중요한 건, 편리하고 필수적인 기능과 뒤섞여있어, '해로운 것'이라고 단정 짓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유용한 것으로 인식되고, 과하게 사용하는 '아이들'이 문제인 것으로 결론지어진다.



우리의 미래사회가 <멋진 신세계>에서 그리는 그런 모습이 될 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아니, 그래야만 할 것 같다. 다만, 인간성 상실에 가장 쉬운 방법이 무엇인지, 무엇을 경계하며 살아야 하는지는 한 시도 잊지 말아야 한다.



책에서 거듭 등장하는 '소마'는 위에서 언급한 술이나 마약보다 덜 해로우며 기쁨을 제공하는 약이다. 엄밀히 말하면 덜 해로운 것이 아니다.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점에서만 나을 뿐이다. 사회체계에서 적극 권장하는 보편화된 처방이다. 노예에서 벗어나려는 자각과 감정반응이 일어날 때마다 스스로 노예로 다시 세팅하는 도구다.



아, 얼마나 영리한가! '노예생활을 사랑'하는, '행복한 노예'이기 때문에, 조금만 벗어나도 두려워하며 스스로 노예 세팅을 하고 안심한다. 이 구조를 설계한 자들은 인간 본성을 정말 꿰뚫고 있구나. 표준형 사람들(감마), 다양성이 없는 사람들(델타), 획일화된 사람들(앱실론). 계층이 낮은 사람들은 의도적으로 표준화되어 탄생된다. 지적 활동을 빼앗긴 채 구조에 100% 순응하여 살아가는 것이다. 오로지 지배층만 책을 읽고 사고 활동을 한다.





스마트폰을 통해 온라인 활동을 하는 동안, 우리는 인간의 지능을 활용한 지적 활동을 하는 것일까? 콘텐츠 기획자들, 거대 IT기업 기술자들이 설계하는 SNS 구조 안에서 누군가에 의해 의도된 활동들을 하는 것은 아닐까? <멋진 신세계>에서와 같이 태아적 암시 주입과 조건 유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구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은 아닐는지.



우리 스스로는 신기술에 금방 적응하고, 잘 다루고, 신인류인 것처럼, 최고로 고도화된 문명인인 것처럼 느낄지 모른다. 사실은 내 의식의 작동이 멈추고 두뇌가 굳어져가는 것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가끔 자각을 하고 폰을 놓아 보지만, 곧바로 불안감과 어색한 불편함으로 다시 폰을 켜고 미소를 짓는다. 소마와 너무 똑같지 않은가!



우리의 삶은 우리가 하루라고 부르는 '시간'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우리가 같은 인간인 동시에 세상 어느 누구와도 같지 않은 나다움을 주는 '두뇌'가 있다. 이 두 가지를 빼앗아가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나는 <멋진 신세계>를 읽으며, 21세기 스마트폰이 점령한 지금의 모습이 너무나 겹쳐져 자꾸만 놀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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