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종종 잘 짜인 연극 같아질 때가 있다. 뭉터기의 고지서들은 우편함에서 당신의 손길을 기다리고, 불미스러운 일들이 폭죽처럼 여기저기서 터진다. 미운 사람들은 한꺼번에 미워지고, 함께 웃던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 수군대는 것을 우연히 듣게 되기도 한다. 가장 마음 썼던 사람들은 각자의 불행을 줍고 소각하기에 여념이 없는데, 당신은 하필 이럴 때 컨디션 난조다. 당신은 혼자된 기분에 휩싸인다.
극을 절정으로 치닫게 하기 위해 세계는 한동안 일사불란하다. 당신은 한없이 흔들리고 맥없이 기울어진다. 격변의 한가운데 던져진 당신. 하지만 모든 이야기가 그렇듯 어찌어찌 갈등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해소되고 결말에 다다른다. 그리고 잠깐의 안정이 찾아든다.
세계의 건방진 침입이 몇 차례 이어지고, 당신은 언젠가부터 당신만의 평화를 이룩한다. 얼마나 지났을까, 당신은 평평한 평화 속에서 그동안은 느껴보지 못한 불쾌한 기운을 맞닥뜨린다. 단란한 일상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권태의 멜랑콜리아.
당신은 그 기운을 물리치기 위해선 불안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는다. 그러고는 불안을 갈망하게 된다. 당신은 알맞은 불안이 문을 두드리지 않아 몹시 불쾌하다. 그동안 당신을 괴롭히는 줄로만 알았던 불안은 사실 당신을 지켜주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인생의 아이러니.
한계, 장애물, 불미스러운 사고, 시련, 수수께끼. 당신이 도망쳐야 할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니라 위기 없는 평화라는 것, 그 배배 꼬인 진실 앞에 무릎 꿇는다. 여기서부터 인생의 숙제가 시작된다. 이제 당신은 세상이 던져주지 않아도 스스로 불안을 창조해야만 한다. 창조하고 맞서기를 반복해야 한다.
당신은 훌쩍 모험을 떠나기 보기로 한다. 가장 익숙한 생활 방식, 가장 익숙한 장소와 얼굴들로부터 멀찍이 떠나보는 여행. 그것은 새로운 취미를 가져보는 것과 같이 자잘한 일상의 변화일 수도 있고, 오래 묵혀두었던 꿈과 다시 마주하는 용감한 결단일 수도 있다.
유혹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리라. 의식하지 않아도 문제없이 흐르는 하루하루에 안주하고 싶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을 그저 따르는 편리한 욕망에 자꾸만 눈길이 가리라. 당장 기쁨을 주는 칩(Cheap) 하고 숏(Short) 한 것들에 돈과 시간을 탕진하고 다들 그렇게 산다고 둘러대고 싶어 지리라. 당신의 노동이 매일 빠르게 업데이트되는 쇼핑리스트를 착실히 비워내기 위한 임시방편의 것으로 전락하게 두고, 얻기 어려운 것, 진정으로 귀한 것들은 나중으로 방치하고 싶어 지리라.
하지만 착실히 살아온 당신이기에 잠시 주춤할 뿐, 유혹에 지지 않는다. 매일 부닥치는 어려움들에도 당신은 더이상 우왕좌왕 하지 않는다. 주변은 당신을 응원하고, 당신의 여정에 관심 갖는 사람들로 채워진다. 그렇게 당신은 불안 속에서도 균형을 잡고, 주변 사람들과 틈틈이 기쁨을 나눈다. 그리고 그 곁에는 내가 있다. 누구보다 들뜬 얼굴을 하고선, 당신의 내일을 기다리는 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