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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EYOUHERE Nov 24. 2024

기지개를 켜다 만난 사람

오직 내 삶에 몰두하는 하루와 그다음 하루의 사이,
기지개를 켜다 부딪친 사람과 우연히

뚱한 표정으로 인사하고

시시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렇게 실소가 터지듯

예기치 않게

자연스럽게

사랑에 빠지고 싶다-


고 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금 달콤한 사랑의 환상에

마음을 열어젖히고 싶다-

누군가와 함께인 채로 행복할 기회를

내게 돌려주겠다-

고 썼다.


그리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당신을 만났다.

기지개를 켜다가.


사랑에 다시 한번 무모해지리라 마음먹었던 그때

잘해보겠다는 거창한 결의 따위는 없이

있는 그대로

부족한 대로

대신 포기해버리지 않고

열렬히 최선의 마음을 주겠노라-

고도 썼다.


최악으로 치닫다가도

토닥이며 수습할 수 있을 정도,

딱 그 정도는 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고도 썼다.


그렇게 나는 당신에게

거창한 결의 없이

있는 그대로

부족한 대로

포기하지 않고

열렬히 최선의 마음을 쏟았다.

최악을 보여주고도

숨지 않고 수습했다.

딱 그 정도를 했다.


진심을 담아 쓴 것은

이따금 예언이 되고, 저주가 된다.

내가 쓴 만큼 하고 나니,

당신과 나의 이야기도 딱 끝나버렸으니까.


그렇게 함께 오래오래 행복하고 싶다-

딱 한 줄만 더 썼더라면 그렇게 됐을까?

알 수 없다.


기지개를 켜다 만난 당신. 당신은 0과 1의 세계에서 항상 1인 사람이다. 흔들림이 없다. 강한데 굳이 강하다고 주장할 필요 없어 순하다. 약점은 곧 극복될 무엇이고, 단점은 문제 삼지 않으니 당신은 있는 그대로 완전하다. 언제나 잘 먹고, 잘 웃고, 열심히 하는 것도 잘-, 대충 하는 것도 잘-이니까 뭘 해도 그르치는 일이 없다.


모르는 사람들은 당신에 대해 쉽게 말할 수도 있으리라. 당신은 때때로 그저 운이 좋은 사람으로 퉁쳐진다. 당신은 그런 말들에도 어깨를 으쓱할 뿐.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개의치 않는다. 당신은 당신으로 완전하니까.


당신이 그 단란함과 평온함을 지키기 위해, 1의 상태에 머무르기 위해 무얼 절제하는지 감히 상상하기 어렵다. 그렇게 되기까지 과연 어떤 일을 겪었는지도. 그 불가해성이, 내가 가닿을 수 없을 것만 같은 1의 신비가 나로 하여금 당신 곁에 머무르게 했다. 당신이 내게 필요한 사람이라 믿게 했다. 모난 데 없이 매끈하고 단단한 당신 품에서 나 역시, 한없이 매끈해지고 단단해졌다. 참 고마운 당신.


당신과 나는 느릿느릿 걷는다. 발을 맞춰 걷다가 자주, 또 오래 멈춘다. 나란히 고개를 젖혀 하늘을 바라보고 날씨를 예찬하느라, 만나는 길고양이들과 일일이 눈 맞추느라, 길가에 널린 촌스러운 간판들에, 사람들의 우스꽝스러운 장면에 폭소를 터뜨리느라 멈춘다. 낄낄낄. 낮과 밤이 당신과 나의 웃음소리로 채워지면 그 밖의 다른 심각한 일들도 다 우스워졌다. 다 괜찮아졌다. 당신은 사랑이 이토록 마법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다. 참 기특한 당신.


당신의 신중함이 머뭇거림으로, 고요가 회피로 읽힐 때면 혼자서 조용히 무너져내리는 날도 있었다. 비겁하다고 소리치고 홱 돌아서 도망치고 싶었던 순간들. 나의 오독과, 우리 사이의 불통이 사랑을 가로막던 순간들. 그런 순간들도 무탈히 흘려보낼 수 있었던 것 역시 당신 덕분이다. 당신의 신중함과 고요가 조각보처럼 내게도 꿰매졌기 때문에. 모난 데는 도려내지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덧대어졌기 때문에. 그렇게 내가 바라던 나의 모습으로 길을 안내해 주고서 당신은 이제 어디 가고 없다. 참 얄궂은 당신.


당신은 다시금 단조로운 생활을 이어간다. 자기 몫의 최선을 다 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꽉 찬 단조로움. 그 안에서 당신은 뭐든 시도해 볼 힘을 얻는다. 변수 없이, 소란 없이, 돌발 상황 없이, 당신이 맞이하는 매일의 깨끗한 아침을 조용히 응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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