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EEYOUHERE Nov 10. 2024

소망은 족제비 같은 것

찬 기운이 멋쩍은 듯 슬슬 물러나고, 볕을 쏟아부을지 비를 흩뿌릴지 하늘이 갈팡질팡 망설이는 봄. 이런 때에 당신은 유독 결심하기를 좋아한다.


마침내 겨울 외투를 봉인하고 하늘하늘한 옷가지를 꺼내듯, 묵은 마음을 털어내고 새로운 생각들을 피워내고 싶어 진다.


사실 진짜 새로운 생각이란 없지만, 그마저도 이미 수차례 실패했던 꿈들의 변주에 불과하지만, 새로운 소망을 품을 때만큼 인간이 아름다운 순간은 없다. 불확실성을 연료로 활활 타오르는 때가 그 어떤 성취를 이루고 난 후보다 더 찬란한 법이니까.


봄은 이것저것 피어나고 생동하는 것들을 많이 보라고 봄이라고 한다. 나는 그 말을 좋아하고, 깊이 믿고 있어서 봄엔 눈을 더욱 부릅뜬다. 길을 거닐면서 ‘봄은 이것저것 많이 보라고 봄-’이라고 읊조린다.


나는 부릅뜬 눈으로 앞으로의 모든 가능성을 머금은 당신을 본다. 뭔가를 해보겠다고 결심한 가슴 뜨거운 당신. 아름답다고, 닮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당신은 고개를 가만 두지 않는다. 갸우뚱하고, 절레절레 가로젓는다. 모든 시작은 두려운 것이 당연함에도 당신은 자꾸만 비겁해진다. 마음에 품었던 것을 둘러둘러 피해 가려고 한다. 가당치 않다는 듯, 허황된 생각이라는 듯 슬그머니.


당신은 ‘어차피’ 뒤에 오는 말들에 무참히 패한다. 

어차피 난 못해. 

어차피 별로 원하던 것도 아니었어. 

어차피……


그러고는 당신한테서 포착됐던 아름다움을 들고 내게서 멀리 도망간다. 내가 다신 보지 못하도록 꼭꼭 숨긴다.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부분은 깔끔하게 도려내 서랍에 넣어 둔다. 당신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렇게 나는 당신이 품었던 소망과 멀어진다. 사실 가장 멀어지는 건 당신일테지만.


당신의 바람처럼 나도, 훗날 당신이 짜잔- 하고 성취의 정상에 서서 함박웃음 짓기를, 그래서 내가 놀라 까뒤집어지며 기뻐하기를 바란다. 구질구질하고 지난한 과정은 다 건너뛰고 말이다. 하지만 그런 날은 아마 오지 않을 거다. 당신이 소망하는 것에 대해 주저하고 멋쩍어하면, 소망도 주저하고 숨어버릴 테니까.


소망은 미끄덩하고 재빠른 족제비 같은 것.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 녀석을 잘 길러내기 위해서 당신은 좀 더 투명해질 필요가 있다.


나는 당신이 다 열고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대화가 각자의 자리에서 꾸는 꿈들로 활활 타오르기를, 주저 없이, 그을음 없이 투명하게 타오르기를 바란다. 빈껍데기뿐인 세간의 소문들로부터, 우리를 자꾸만 땅바닥으로 추락시키는 먹고사는 문제로부터 되도록 멀찍이 떨어져 그것들이 우리의 대화에 얼씬도 하지 못하도록 우리는 주의를 기울여야 할 테다. 그럼 마침내, 당신은 그 대화를 통해 어떤 길로 나아갈 것이고 나는 곁에서 함께 걸을 것이다. 그건 오직 대화를 통해서만 만날 수 있는 길이다. 그렇게 우리는 소망하는 것들에 겨우 몇 발자국 다가갈 수 있다.


가장 절망적인 시기를 지날 때에도 바라는 것을 함께 바라 볼 수 있다면, 그것들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다면 우리의 여정은 그 자체로 빛난다. 너무 아름다워 눈물이 흐를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러한 빛을 품은 관계에만 우정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싶다. 그러곤 자주 들여다보고 안아주고 싶다.

이전 01화 Can't Go Back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