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사랑에 관해서라면 몇 날 밤을 새워서라도 이야기할 수 있다. 그 이야기들은 아마도 당신이 일생동안 잘 증류해 낸 것이리라. 마음 졸이며 보낸 새벽 시간, 머리털까지- 가장 마지막 겹의 피부까지- 둥둥- 진동하던 심장박동의 감각, 구질구질한 것이라도 다 안고팠던 시절의 기억들로부터 말이다. 당신은 사람들과 술잔을 나누며 한숨을 푹푹 쉬기도, 깔깔 웃어 넘기기도 한다. “그래서어~ 사랑이 므어라고 생가캐~?” 서로에게 물으면서.
대화가 무르익고 모두가 사랑에 대해 한 마디씩 침을 튀기며 이야기했을 때쯤 당신은 더 이상 한 사람을 위해 마음 졸이며 사랑할 수 없게 됐음을 고백한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신의 마음은 대체로 세상을 향해 활짝 젖혀져 있고, 기대하기를 좋아하는 탓에 바람같이 가벼이 스치는 인연에도 쉽게 무너지곤 했다. 더 외로워지지 않기 위해 외로워지기로 결심한 당신.
천진난만하게 사랑하던 때, 자신 만만하게 변치 않는 마음을 약속하던 때, 주제를 모르던 때, 그래서 마음을 표현하는 데에 거리낌 없이 용감하던 때, 촌스럽게 울고 웃던 때가 당신에게도 있었다.
사랑이 전부라 노래하던 시절, 당신의 마음 한가운데로 쏟아지던 빛의 내용은 무엇이었나. 첫 만남의 환상에서 미끄러지더라도 서로를 보듬으며 안전히 착지하리란 믿음을 나누는 것, 매섭게 휘몰아치는 현실에 맞서다가도 잠깐씩 비켜서서 함께 시시콜콜한 웃음을 나누는 것,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고, 나를 괴롭게 하는 직장 동료에게 대신 저주를 퍼부어 주는 것. 이와 같이 삶의 일련의 사건들 안팎에서 나란히 포개어지자는 약속이 아니던가. 이미 사랑에 오래 좌절한 당신은 약속하는 법을 까먹었다. 약속을 지키는 것보다 약속을 맺는 것이 더 어려워지고, 당신은 이 역시 어른이 되는 과정인가 싶다.
풍요 속 빈곤. 먹고 마실 것이 풍족한 와중에 모두가 ‘자기’라는 각자의 세계에 고립된 전지구적 재난의 현장에서, 비상 선언이 이어진다. 4B(4非: 비혼·비출산·비연애·비섹스)까지 이야기하지 않아도 곳곳에서 발견되는 촘촘한 포기의 흔적들. 당신도 한몫 거든다. ‘차라리’ 뒤에 오는 말들에 자기를 욱여넣는다. “차라리 혼자가 편해. 서로 상처 주고 괴로울 바엔 차라리 혼자 외로운 게 나아. 이건 비겁한 게 아니야, 현명한 거지-” 다독이면서. 그렇게 당신과 나는 홀로 됨이 각자의 최선으로 자리 잡아버린 시대의 우울을 꿀꺽 삼킨다.
당신은 한동안 가벼운 관계에 저녁 시간을 내어준다. 후루룩 먹고 얼른 치워버리는 라면 한 그릇처럼 감정의 허기를 때우는 만남을 이어나간다. 혹시나 하는 기대, 순수한 호기심이 곁들여진 적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당신은 곧 깨닫는다. 아무런 기대도, 궁금증도 갖지 않는 편이 낫다는 것을. 합목적성. 그것이다! 이런 만남에는 목적에 맞게 냉소적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그런 생각은 천천히 스미기도 하고, 한 번의 수틀린 만남으로 인해 단번에 박히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결국 쓸쓸해지는 건 매한가지.
그렇게 속 빈 껍데기가 되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당신은 생각한다. 그런 만남을 뒤로하고 어김없이 찾아오는 순간에 당신은 기다렸다는 듯 허물을 벗어던지고, 홀로 완전할 테니까. 그런 관계에 목적 이상의 의미를 두지 않겠다고 결심함과 동시에 그런 만남의 횟수는 곧 차츰 줄어들고 당신은 세상 모든 가벼운 것들에 단념한다. ‘시간 때우기’란 목적에 그런 가벼운 것들이 더 이상 적합하지 않게 되었으니까. 사실, 때워야 할 것은 시간이 아니라 공허한 마음, 결핍이라는 것을 알아버렸으니까.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니고 어떤 누구도 대신 채워줄 수 없는, 모두가 조금씩 갖고 있는 당신 자신만의 결핍. 충치를 치료하듯, 썩은 부분은 도려내고 알맞은 재료들을 채워 넣은 후에야 뭘 먹든 아픔 없이 씹어 삼킬 수 있다. 그게 사랑이든 뭐든.
당신과 나는 조금은 편안해진 얼굴로 다시 술잔을 기울인다. 그동안 우리가 잘못된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는 것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사랑이 무엇인지 정의 내리는 일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에 웃음 지으면서.
우리는 단어의 배열을 바꿔야 했다. 내가 ‘무엇’을 앞으로 끄집어내는 동안, 당신은 ‘사랑’을 뒤로 밀었다. 우리의 질문은 재창조되었다. What Is Love? 에서 Love What?으로. 우리는 무얼 사랑할까, 무얼 사랑하게 될까. 당신과 나는 그간 꾸역꾸역 삼켰던 우울이, 시시한 만남의 공허가 조금씩 가시는 걸 느낀다.
이제 주도권은 우리에게 있다. Love What? 그 질문의 답은 언제나 우리에게서 시작되는 것이니까. 무얼 사랑하든 당신 맘이고, 내 맘이니까. 사랑이 무엇인지 정의하려는 시도로부터 실패하고 낙담하는 대신, 무엇을 사랑할지 골똘하고 주변을 사랑하는 것들로 채우자고. ‘진짜 사랑’ 같은 것에 매달리면서 지금 우리가 쥐고 있는 것들을 얕잡아 보고 홀대하지 말자고. 꽃, 바다, 강아지, 고양이… 사랑하기 아주 쉬운 것들부터, 도저히 화해되지 않는 ‘나’라는 존재까지. 매일 새롭게 사랑할 무엇들을 나열하다 보면, 언젠가 반드시, 그 리스트 끝에 적히는 한 사람을 만나게 될 거라고. 당신도, 나도.
마지막으로, 시인 랭보의 말을 전한다.
사랑은 재발명되어야만 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