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숫자들, 어떤 사람들

by SEEYOUHERE

에어컨은 시간당 285g의 이산화탄소를 내뿜고, 과도한 농업과 개발로 전 세계에선 해마다 240억여 톤의 흙이 사라지고 있으며, 온실가스 배출 정도에 따라 2100년이 되면 적게는 전체 생물 종의 1.6%가, 많게는 30%가 멸종할 것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2023년엔 138명의 여자들이 남편, 애인 등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게 살해당했으며,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등에 의한 성폭행 피해 여성들은 38년 만인 2018년에 피해 사실을 공론화했고, 5년이 지난 2023년에야 국가 기관인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위원회에 의해 “피해가 사실”임을 인정받았다.


안전운임제가 폐지되자 화물노동자의 월소득이 189만 원 삭감되었고 수면시간은 2.6시간 줄었으며, 2023년엔 847명의 화물노동자가 도로에서 죽었다. 2022년엔 3340명의 이주노동자가 사망했고, 2024년 11월 4일엔 몽골 출신 32세 제조업 노동자 강태완 씨가 작업 중 끼어 죽었다. 5살에 한국으로 와 20여 년을 미등록 이주 아동으로 살다가 취업해, 옛 이름 ‘Taivan(타이반)’이 적힌 외국인등록증을 버리고 마침내 ‘강태완’ 이름 석자가 박힌 주민등록증을 취득한 해였다.


러시아-우크라이나 간 전쟁은 3년째 지속 중이고, 가자지구에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발발 1년째인 2024년 10월 7일 기준 총 4만 1909명이 사망했다.


어떤 숫자들. 나를 모르고, 내가 모르는 존재들에 대한, 어쩌면 나에게는 그저 무작위의 숫자들. 이 숫자들은 나를 멈춰 서게 한다. 이 숫자들은 나를 가라앉게 하고, 바닥에 눌어붙은 토사물처럼 한동안 기분 나쁘게 여기저기 끼어있다. 누가 와서 치워주길 기다리는 듯, 은근하고 끈적하게.


내가 겪지 않았고, 내게 닥치지 않은 일들, 내가 부른 적 없던 이름들, 내가 있는 곳에서는 들리지 않는 굉음과 곡성, 내게 가해지지 않은 위해와 공포와 무력. 그것들이, 그 사람들이 거기에 있다. 도처에 있다. 그런데 나는 무사하다. 그 모든 고통과 무관한 채로 산다. 그 퉁명스러운 사실이 끔찍이 여겨질 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빠진다. 하지만 여전히 머리털 하나 다치지 않고 무사한 채로.


2024년 12월 3일 화요일 22시 23분 난데없는 비상계엄으로 모두가 혼란 속에 내동댕이 쳐졌던 그날 밤, 사람들은 밖으로 뛰쳐나가 저항하고, 서로의 안위를 걱정하고, 공포와 어이없음 사이에서 함께 떨었다. 실시간으로 생중계되는 국회의사당 상황을 지켜보면서, 메신저 단체방에 정보를 퍼 나르고 함께 골몰하면서.


그 시각 나는 새벽 6시 반에 알람을 맞추고 잠자리에 들기 위해 누웠다. 시끄러운 뉴스도, 단체 메신저도 들여다보지 않고 고요히, 천장을 보고 누워 생각했다. 내일 새벽 요가에 무탈히 다녀올 수 있을까. 집에서 요가원까지의 도보 10분 거리를, 일상적으로 걷던 그 거리를 언제나처럼 아무 일 없이 걸어갔다가 걸어올 수 있을까. 훼손된 민주주의 보다, 또 많은 이들이 치르게 될 희생보다, 곤두박질 칠 코스피와 퍽퍽해질 살림살이보다, 그 모든 것에 앞서 나는 나의 보지를 걱정했다. 한 국가의 국민이기 전에, 사회의 시민이기 전에, 사람이고 존재이기 전에, 나는 그저 ‘보지 달린 여자’라는 정체 속으로 처박혔다. 그 사건이 나를 그 안으로 처박았고 나는 그날 밤 그 안에 갇혀 있었다. 그것은 내게 무서운 것이었다가 나를 무기력하게 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열심히 경제 활동을 하고, 사회활동에 참여하고, 좋은 세상에 이바지해도, 여자로 태어난 이상, 저 아래 뱃속 깊숙이 품고 살아야 할 끈질기고 묵중한 공포.


많은 이들의 필사적 노력으로 계엄은 해제됐고, 나는 무탈히 새벽 요가를 다녀왔다. ‘보지 달린 여자’의 신분에서 대한민국 국민으로, 서울 시민으로, 경제활동을 하고 요가를 다니고 고양이를 키우는 1인 가구의 미혼 여성으로, 나의 정체는 회복되었다.


같은 해 5월, 경향신문의 [5.18 민주화운동 당시 성폭력 피해 아카이브: 우리는 서로의 증언자] 연재 기사를 읽지 않았다면, 매일 출근하는 버스 안에서 눈물범벅으로 흐느끼며 피해자들의 사연을, 그 고통과 억울한 심정을 들여다보지 않았다면 상황이 좀 달랐을까. 그저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는 한 사람의 국민으로 존재할 수 있었을까.


세상에 만연한 고통이, 불합리가, 분노와 비애가 창밖으로 우수수 떨어진다. 이번엔 방 안까지 조금 스민 정도. 나는 무얼 할 수 있을까, 어떻게 나와 내 소중한 것들을 지킬 수 있을까, 고민이 깊어지는 나의 방. 아직까지는 안전한.


이름 모를 무작위의 자립준비청년을 돕는 후원을 3년째 하고 있다. 기부금을 증액하고 싶어 10년째 해오던 국경 없는 의사회 후원을 지난해 초 해지했었다. 내게도 재정 상황이라는 게 있으니까. 지난달 어느 날, 모르는 개인 번호로 전화가 왔고 울먹이는 목소리가 조심스레 인사를 건네왔다. 그 울먹이는 목소리는 자신을 국경 없는 의사회 소속이라고 밝히며, 다시금 후원 재개를 부탁해도 될지 물었다. 가자지구 민간인들의 인명피해가 심해서 한 푼이 아쉬운 상황이라 죄송스러움을 무릅쓰고 연락을 한다고 했다. 나는 후원을 계속하겠다고 했고, 울상의 목소리는 더 울상이 되어 내게 연신 고맙다고 말했다.


내가 보내는 매달 몇 만 원의 돈이 누군가의 삶에 얼마나 보탬이 될지 나는 알 수 없다. 고통받는 사람들이 거기에 있어서, 누군가는 그들을 대신해 울먹이며 아쉬운 소리를 해야만 해서, 근데 나는 아직 무사해서, 그래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그들이 어떤 숫자들 속에 갇히지 않길 바라서. 한 사람 한 사람으로 남았으면 해서. 내가 그러하듯이 말이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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