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언니’라는 호칭 다음으로 가장 다정하게 부르고 싶은 이름, 그것은 ‘동료’다. 가족보다, 친구들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집 밖에서 만난 두 번째 가족. 미우나 고우나, 매주 월요일 오전 10시부터 매일 9시간씩, 주 5일을 마주해야 하는 사이. 야근이 잦은 광고업의 특성상 매 끼니에 야식까지 같이 먹는데도 밥상머리부터 회의실 책상까지, 모여 앉기만 하면 매번 대화할 거리가 넘치는 애틋한 나의 식구. 동고동락하는 그들에 대해 쓰려니 벌써부터 뜨거워지는 마음이다.
이 사람들의 정체성은 단 한 번도 ‘회사원’이었던 적이 없다. 광고'회사'에 다니면서도 말이다.
광고인. 크리에이터. 아트디렉터. 카피라이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이 사람들의 직함은 ‘00 회사, 00직’이라는, 단순히 직무를 설명하는 기능을 웃돈다. ‘이러이러한 업무를 수행하는 누구’에 그치지 않고, 일종의 자부심이나 소명의식, 요즘 말로는 추구미까지 가미된 단어가 그들의 명함에 찍힌다. 간혹, 이러한 직함의 멋만 취하려는 이들도 보았다. 직함에 비해 헐거운 퍼포먼스로 덜그럭 덜그럭 꼴 사나운 소리를 내는 사람들.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 사람들을 만나기 전까지는.
직업정신(Professionality). 이 사람들은 내게 이걸 가르쳐주었다. 몸소 보여주고, 에둘러 말해주고, 내가 스스로 겪고 깨달을 때까지 지켜봐 주었다. “우리는 다 프로야. 프로답게 일하자” 말하는 이들의 열정이, 사명감이,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즐길 줄 아는 순수한 마음이 나를 고양시켰다. 헐거이 덜그럭거리던 나를, 진짜 광고인, 진짜 크리에이터, 진짜 카피라이터로 만들어주었다. 모든 건 태도의 문제라는 말처럼, 프로의 태도로 바라보니 그저 불만스럽던 것들은 물러나고, 우리가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들이 드러났다. 아주 아주 해사한 모습으로.
프로의 정신으로 일을 대한다는 건, 각을 잡고 진지한 태도로 임한다는 말이 아니다. 어쩌면 그것과는 정반대의 모습에 가까울 수도 있겠다. 내가 이 사람들에게서 배운 것은, 잘잘못을 따지고, 잇속을 챙기고, 정확한 일처리에만 몰두하는 등의 딱딱한 태도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너그러운 마음. 서로가 준비한 아이디어를, 그것이 미숙할지라도, 창창한 가능성을 품고 아장아장 걷는 아이를 바라보듯 널따란 마음으로 경청하는 것. 외부의 공격과 내부의 균열로 혼탁해진 와중에도 주어진 과제의 본질에 악착같이 발을 딛고 서는 것. 그리고 포기하지 않도록, 길을 잃지 않도록 서로를 독려하는 것. 때로는 외주 업체에게 아쉬운 소리도 할 줄 아는 것. 하지만 반드시 인간적인 대화 안에서, 존중의 마음으로. 거기에, 두고두고 보답하리라는 약속을 까먹지 않고 이행하는 것. 그렇게 그 사람들과도 두터운 신뢰를 쌓는 것. 무례한 사람들, 무능력하면서 말만 많은 사람들과 일하게 되더라도 그들을 탓하는 데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 것.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할 것! 촬영장의 스태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바르게 인사하는 것. 촬영 장비에 기대거나 앉지 않는 것. 그것은 그들의 자산이므로 절대 함부로 다루지 않을 것! 광고주의 요구사항에 눈을 흘기며 팔짱부터 끼지 않는 것. 그들은 억대의 예산을 들고 물건을 사러 온 고객이므로 까탈스러울 수 있음을 이해할 것! 시공간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해야 할 때, 우리에겐 이미 지금까지 이뤄낸 기적들이 있고, 곁에는 힘을 실어줄 사람들이 있으며 결국엔 다 해내리라 믿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아무리 바빠도 밥은 맛있는 걸로 먹을 것!
막 이 업계에 발을 들였을 때쯤 만났던 선배들은 하나같이 이런 얘기를 했다. “광고는 예술이 아니야. 광고로 예술을 하려고 하면 안 돼” 의중은 알겠으나, 그때나 지금이나 동의하기 참 어렵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그게 뭐든 예술적으로 행해질 수 있고, 예술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심지어 이를 닦고, 밥을 차려 먹는 등 일상의 행위까지도 예술적일 수 있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이다.
비단 미감에 대한 이야기만이 아니다. 이건 테크닉 혹은 감도, 그리고 진정성에 대한 얘기. 광고업으로 이야기하자면, 15초짜리 영상물, 한 장의 이미지, 디지털에서 옥외에 이르기까지 시시각각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는 결과물뿐만 아니라 그 결과물을 내는 일련의 과정 역시 세심하게 다뤄져야 하는 것이다. 불필요한 절차, 쿠세, 트집, 대충 같은 것들로부터 최대한 멀어지려 애쓰면서, 마지막까지 디테일을 놓치지 않도록 유의하면서.
숙련된 정비공이 장비를 다루고 능숙하게 손을 움직이는 모양을 들여다본 적이 있는가? 완벽을 위해 밤낮없이 작업물에 열정을 쏟으면서도 피곤한 기색 하나 없는 장인의 눈빛은? 예술을 하고 예술이 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진심을 다하는 것. 그래서 아름다워지는 것. 한 철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충실함은 시간에 영원을 들이는 방식이라고. 나와 동료들은 매일, 오래도록 남을 무언가를 만드는 중이다. 충실하고 또 즐겁게. 그렇게, 짧게는 3개월, 길게는 6개월짜리 캠페인으로는 다 담을 수 없고, 다 설명할 수 없이 각자에게 주어지는 달콤한 결실. 좋아하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방식으로 하고 있고, 앞으로는 더 좋아질 것이라는 단단한 믿음. 그것들은 절대로 쉬이 오지 않는 것. 한 번 오면 오래 남는 것. 실로 예술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일로 만난 사이. 자칫 어려울 수 있고, 어쩌면 더 조심해야 하는 사이. 우리는 그런 어려움과 조심하는 마음을 잊은 적이 없다. 다만 목적이 같아서, 일을 대하는 온도가 비슷해서, 서로에게 길이 든 시간 속에 신뢰와 기대가 차곡차곡 쌓여서 우리는 여전히 함께다. 함께인 동안 우리는 얼마나 더 아름다워질까. 피가 마르는 야근과 보고의 연속, 치열하고 때론 분통 터지는 상황들 속에서 우리는 또 어떤 영원한 것을 빚어낼까. 길이길이 남을, 남아서 나를 (말 그대로) 먹여 살릴 것들을 어렴풋이 예상하며, 언제나 그랬듯, 그 모든 순간 많이 웃을 나와 나의 동료들의 얼굴을 생각하며 글도, 올해도 마무리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