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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나의 애송시 감상노트 24

by kacy


청포도

이육사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을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 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이 시는 육사의 다른 시와는 그 분위기가 사뭇 다른, 서정적 느낌이 듬뿍 나는 그런 시입니다. 만약 육사가 그 엄혹한 시기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그는 우리의 또 한 사람의 서정시인이 되지 않았을까 상상해 봅니다. 그러나 이 시가 쓰여진 때가 1939년으로 육사가 ‘한발 재겨 디딜 곳 조차 없는’(‘절정’ 일부) 독립운동의 한가운데서 이 시를 썼다는 것에서, 이 시가 가진 가치를 더 크게 새겨야 할 것입니다.


그의 고향은 경북 안동입니다. 도산서원에서 멀지 않은 원촌이란 마을로 바로 낙동강 옆의 강마을입니다. 그는 20대 초반에 대구로 이사하기 전까지 이곳 낙동강변에 살았습니다. 그는 집안에서 한학을 배우다가 나중에 도산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합니다. 그리고 독립운동에 투신하여 17번 씩이나 투옥되고 결국 북경 감옥에서 순국하고 맙니다. 그의 나이 40세.


이 시의 배경은 고향입니다. 한창 포도가 익어가는 칠월. 그리고 푸른 바다 처럼 넓은 강에서는 멀리서 흰 돛단배가 밀려오는 곳, 이곳은 시인이 어린 시절을 보낸, 낙동강을 옆에 끼고 있는 그의 고향이라면 충분히 그려 볼 수 있는 정경입니다. 강 위에 멀리 떠 있던 흰 돛단배가 강변 가까이 곱게 밀려 들어오는 광경은 그에게 익숙한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그가 기다리는 손님이 흰 돛단배를 타고 올 것을 상상합니다. 고단한 몸으로 청포를 입고 온다고. 여기서 말하는 손님은 우리 민족을 해방 시킬 ‘초인’일 수도, 아니면 어떤 그의 특정한 사람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여기서 시인이 이 ‘손님’을 맞이하기 위하여 준비해 놓은 앞의 1,2,3 연의 그림 같은 배경을 눈에 그려 보아야 합니다. 시를 읽어 보면 바로 이 대목 ‘내가 바라던 손님이 청포를 입고 온다고 했으니’가 이 시의 전체 구성에서 시의 클라이막스로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앞의 세 연과 이후의 두 연은 그를 맞이할 무대의 묘사로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시는 한숨 돌린 듯, 포근하고 느긋한 마음으로 손님과 같이 포도를 따 먹는 기쁜 순간을 말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연도 이 손님을 위한 무대인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합니다.

이렇게 이 시는 오시는 손님을 위한 배경 장치로 앞에는 청포도와 푸른 바다와, 흰 돛단배를, 그리고 뒤에는 하얀 은쟁반과 하이얀 모시 수건을 배치하여, 그 푸른색과 흰색의 대비를 마치 한 폭의 수채화도 같이 아름답게 그리고 있습니다.


이 시의 해석에서 항상 따라다니는 것으로, 그 당시 우리나라에 청포도가 어디 있었느냐고 시비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말은 공연한 트집이지만, 평자들은 대체로 이를 말 그대로 품종으로서의 ‘청포도’로 봅니다. 시인이 반드시 눈앞에 보이는 것만 말해야 할 하등의 이유는 없으니까요. 말하자면 정지용 시 ‘향수’에서 그즈음에 무슨 얼룩 황소가 있었느냐고 하는 것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또 하나의 가능성으로, 이 ‘청포도’가 푸른색의 익어가는 포도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연구자도 있습니다.


칠월이면 포도는 알이 굵어지고 그야말로 푸르른 여름 하늘 같은 깊은 푸른색을 띠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검어질 준비를 할 때입니다. 이런 상태의 푸른색의 포도를 일반적으로 청포도라고 하지는 않지만, 시인은 할아버지로부터 한학 공부를 했을 뿐 아니라, 중국의 대학에서 수학한 적도 있고, 또 한문시를 몇편 쓰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그는 한문에 익숙한 사람으로, 아직 익지 않은 푸른색 포도를 청포도라고 했을 가능성입니다. 여기 손님이 입고 올 옷을 청포라고 한 이유가 분명 있겠지만, 어쨌든 그 이미지를 맞추기 위해서 굳이 청포도라고 표현할 수도 있어 보입니다.

시인이 첫 연을 ‘내 고장 칠월은/ 푸른 포도가 익어가는 시절’이라고 표현했다면 어땠을까요. ‘푸른 포도’보다 ‘청포도’가 주는 이미지가 훨씬 강하고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으신가요.


육사의 묘소는 안동의 고향마을 뒷산에 모셨다가 지금은 그 부근의 ‘이육사 문학관’으로 옮겨져 있습니다.

“육사의 묘소는 나무에 가려 비록 강물은 보이지 않지만, 가만히 듣고 있으면 낙동강 물소리가 고향마을을 가로질러 마티골을 타고 올라온다. 밤이면 그 소리는 더욱 세차게 들려옵니다.”(1)


지금도 육사는 그 거친 숨을 조용히 가다듬으며 그의 고향 안동의 낙동강 물소리를 하늘나라에서 가만히 듣고 있을 것입니다.


김희곤. 새로 쓰는 이육사 평전. 도서출판 지영사. 2000. 2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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