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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돌이 되면

나의 애송시 감상노트 25

by kacy

내가 돌이 되면

서정주


내가

돌이 되면


돌은

연꽃이 되고


연꽃은

호수가 되고


내가

호수가 되면


호수는

연꽃이 되고


연꽃은

돌이 되고

(‘동천’ 민중서관 1968)


이 시를 읽고 당신은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십니까.

내가 돌이 되었다가 연꽃으로 변하고 다시 호수가 되고, 그리고 그 반대의 순서로 나는 다시 돌이 됩니다.


미당의 시적 상상력의 많은 부분이 불교적인 것에 그 바탕을 두고 있음을 우리는 익히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연유인지, 직업적 문학평론가 중에서도 이 시를 ‘불교의 윤회적 세계관’을 풀이한 선시(禪詩)라고 평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다음 생에는 돌이 되었다가 또 그다음 생에서는 연꽃이, 또 그다음 생에서는 호수가 된다는 건가요?


또 다른 평론의 경우는 이 시가 우리 삶의 ‘순환’ 또는 ‘변화’의 모습을 나타낸 시라고 평합니다. 우리의 삶이 때로는 거칠고 굳은 돌처럼, 때로는 아름다운 멋진 연꽃처럼, 때로는 모든 것을 담아내고 인내하는 잔잔한 호수처럼 바뀌는 삶의 변화무쌍함을 나타내고 있다고 말합니다.


먼저 이 시가 불교적 윤회(輪回) 사상을 나타내고 있다는 평은 그야말로 어불성설(語不成說)입니다.

불교의 윤회관(輪回觀)은 현세의 내가 사는 동안 지은 업(業)에 따라서 다음 생에서는 지옥으로 떨어질 수도 있고 심지어는 짐승으로 태어날 수도 있으며, 좋은 업을 쌓으면 다시 사람으로 태어난다는, 우리 생명이 수레바퀴가 도는 것처럼 계속적으로 생명을 가지되 그 업의 좋고 나쁨에 따른 차별적 내생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이 시에서 말하는 돌멩이로 태어나거나 꽃으로 태어나는 등의 일은 불교의 윤회사상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이 시가 우리 삶의 변화무쌍함의 표현도 결코 아닙니다. 이것은 아래의 글을 보시면 알게 되십니다.

미당 시인은 이 시에 대해, 시를 발표한 지 25년쯤 지나서 직접 이 시를 착상하게 된 일을 그의 산문집에서 꽤 소상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그의 글에서는 이 시에 얽힌 한 에피소드를 먼저 들려줍니다.

“1978년 추운 정월 나는 세계 일주 여행 중에 캐나다에 들러서, 어느 밤 토론토의 백인 시인들의 자작시 낭독 모임에 참석해 영역(英譯)한 몇 편의 내 시 작품을 누구를 시켜 낭독게 해 그들에게 들려주었다. ‘국화 옆에서’니 뭐니 그런 것들을 읽었을 때에는 별다른 반향이 없더니, ‘내가 돌이 되면’이란 시를 낭송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는 물론 어떤 털보 시인은 단상으로 뛰어 올라와서 나를 덥석 끌어안고 내 땀에 뽀뽀까지 해주었다.”(1)


시인은 1961년 겨울에 충북 보은에 있는 속리산 법주사를 방문합니다. 그는 그 절의 큰 마당 한쪽에 있는 8세기경 통일신라 때 화강암으로 만든 ‘석련지(石蓮池)란 이름의 조각품에 '반하여 넋을 쏟고 있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 석련지‘의 모양은 큰 돌을 쪼아서 바깥은 연꽃 문양을 새긴 사발 모양을 한 것으로, 가운데는 깊게 파내어서 물을 담을 수 있도록 만든 것입니다.


시인은 활짝 핀 연꽃의 가운데에 물을 담을 수 있는 못(池) 모양의 ’초현실주의적‘인 것을 넘어선 조각품의 구성 앞에 넋을 뺏기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고 합니다.

“불교의 진리를 상징하며 꽃 피어 있는 연꽃을 모시어 받들고 있고, 그 속에 고여 있는 건 맑힐 대로 맑힌 ' 진리의 호수'라는 것이니, 이건 초현실주의의 무의식의 구성과는 아주 다른 묘미가 있어 나는 여기 몰두할 밖에 없었고, 그런 나머지 내 알량한 소품 <내가 돌이 되면>을 만들게 되었던 것이다.”(2)


시인은 이 글에서 이 시를 통하여 전하고자 하는 바를, '(우리의) 마음부터 잘 맑혀 내야 함'과 '우리의 감각부터 꽃다움을 회복하기를 바란다’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이 산문의 끝을 아래의 석가모니의 말로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연꽃 마음을 내

그 연꽃잎잎으로

백 가지의 좋은 빛을 내어 보아라.

-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


이렇게 시인은 이 시를 통하여 불교적 의미를 담은 것이되, 무슨 ‘윤회’니 ‘순환’이니 하는 것이 아닌, 우리의 마음 가짐의 변화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이 시가 나타내고자 하는 대강의 의미를 위의 시인의 글에 비추어 해석해 봅시다.

여기의 ‘돌’ ‘연꽃’ 그리고 ‘호수’와 같은 표현은 ‘내' 마음의 상태를 은유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처음 우리 마음이 돌처럼 굳고 거친 것이라 하여도 마음을 다하여 정진해 나가면 연꽃이 상징하는 진리의 깨달음에 닿을 수 있으며 더욱 나아가 우리의 마음이 맑고 맑은 ‘진리의 호수’를 담아내는 경지에 이를 수 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미당은 이 시가 실린 시집 ‘동천’의 머리말에서도 이 시집에 실린 많은 시가 ‘특히 불교에서 배운 특수한 은유법의 매력에 크게 힘입었음을 여기 고백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그 털보 서양 시인이 이 시로부터 무슨 감동을 받아 그에게 달려와 빰에다 뽀뽀까지 했는지 꽤 생각을 해보았지만. 그가 이런 불교적 논리까지를 이해하고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서양시인의 그러한 돌발적 감동의 연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1. 서정주. 미당 서정주 전집 11. 나의 시. 은행나무 2017. 181쪽

2. 위의 책. 1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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