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라산스카, 그 비밀을 찾아서(2)

나의 애송시 감상노트 27

by kacy


( 나의 애송시 감상노트 26에 이은 글입니다.)


라산스카(3)

김종삼


바로크 시대 음악을 들을 때마다

팔레스트리나 들을 때마다

그 시대 풍경 다가올 때마다

하늘나라 다가올 때마다

맑은 물가 다가올 때마다

라산스카

나 지은 죄 많아

죽어서도

영혼이

없으리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민음사. 1982)


위의 시는 김종삼 시인의 두 번째 ‘라산스카’ 발표 후 19년이 지난 1982년에 발행한 시집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에 실린 시로, 그의 나이 61세가 되는 해입니다. 그가 간경화로 사망하기 2년 전으로 방송국 정년퇴직 후 극도의 생활고에 시달리던 때입니다. 뿐만 아니라 과도한 음주로 자주 병원을 전전하기도 하여, 죽음과 대면하는 시를 다수 남기던 시기입니다. 바로 다음과 같은 시입니다.


그때의 내가 아니다.

미션계라는 간이 종합병원에서이다.

나는 넝마 같은 환자복을 입고 있었다.

고통스러워 난폭하게 죽어가고 있었다.

하루 이틀 다른 병원으로 옮기어질 때까지

시간을 끌고 있었다.

벼랑바위가 자주 나타나곤 했다.

‘非詩’ 부분


바로크 시대 음악은 17세기에서 18세기 전반까지의 음악으로, 이 시대를 대표하는 사람이 비발디, 헨델, 그리고 바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팔레스트리나’는 16세기 이탈리아 작곡가입니다. 미사곡을 주로 한 많은 종교음악을 작곡하였습니다.

그는 이런 중후한 음악을 들을 때마다, 그에게 하늘나라가 다가옴을 느끼기도 하고, 맑은 물가 옆에 이르러 닿은 기분을 가짐을 고백합니다. 그의 나이도 이제 60이 넘어 죽음을 생각합니다.

‘나 지은 죄 많아 죽어서도 영혼이 없으리’라고 독백합니다. 김종삼의 시에서 이러한 죄의식은 그의 시 전편에 깔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의 시 '꿈이었던가.' '극형' '형(刑)' 등에서 이러한 죄의식은 더욱 분명합니다.

여기서 ‘라산스카’의 이미지를 좀 더 구체화하고 있습니다.

‘라산스카/ 나 지은 죄 많아/ 죽어서도/영혼이/ 없으리’ 이 절규하는 듯한 이 구절은 ‘라산스카’에게 호소하는 말인가요? 아니면 다른 무엇입니까?


이제 그의 마지막 ‘라산스카’ 시를 읽어 봅니다.

라산스카(4)


집이라곤 비인 오두막 하나밖에 없는

草木의 나라

새로 낳은

한 줄기의 거미줄처럼

水邊의

라산스카


라산스카

인간 되었던 모진 시련 모든 추함 다 겪고서

작대기를 짚고서.

(‘평화롭게’ 고려원 1984)


이 시는 그가 세상을 떠난 해에 발간한 그의 마지막 시선집 ‘평화롭게’에 실린 이 제목의 마지막 시편입니다.

첫 연 ‘비인 오두막 하나밖에 없는 초목의 나라’는 그의 평생의 삶을 한 줄로 요약한 시구라고 할 수 있는 표현입니다. 그의 실재 삶에서 어디 산꼭대기 단칸방도 변변히 못 구하던, 철저히 실생활에는 관심이 없었던 그런 생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가 추구하던 시의 세계는 그야말로 ‘환상의 영토에 자라나는’ 초목만 사는 그런 퓨리턴처럼 순수한 세계였습니다.

‘새로 나온/ 한 줄기의 거미줄처럼/ 수변의/ 라산스카’

그는 그의 다른 시 ‘나의 本’에서도 그를 ‘稀代의 거미줄이다’라고 표현한 것처럼 여기서는 ‘라산스카’를 새로 나온 한 줄기의 거미줄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라산스카’는 ‘수변’, 물가에 와 있습니다. 이 표현은 앞의 ‘라산스카(3)’에서 ‘맑은 물가 다가올 때마다’와 같은 이미지입니다. 이 물가는 혹시 ‘요단강’ 가를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요.

여기서도 평론가들이 말하는 '라산스카'가 어떤 장소를 말한다는 해석이 적용 될 수 없습니다. 혹시 '라산스카의 물가'라면 그런 해석이 가능하지만 시는 분명히 '물가의 라산스카'입니다. 물가에 누군가 또는 무엇이 있다는 표현입니다.


마지막 연에서 이제 시인은 ‘라산스카’를 가장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라산스카/ 인간 되었던 모진 시련 모든 추함 다 겪고서/ 작대기를 짚고서’에서 ‘라산스카’는 죽음을 앞둔 한 연약한 인간의 모습, 지팡이에 의지하여 물가에 가까이 다가가 지나온 至難했던 삶을 회상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 ‘라산스카는’ 누구입니까?

그렇습니다. ‘라산스카’는 바로 시인 자신입니다.

앞의 ‘라산스카’(3)과 '라산스카'(4)의 ‘라산스카’의 자리에 시인‘김종삼’을 대입해 봅니다.


'김종삼

나 지은 죄 많아

죽어서도

영혼이 없으리'


‘김종삼

인간 되었던 모진 시련

모든 추함 다 겪고서

작대기를 짚고서’


이제 그의 첫 번째 ‘라산스카(1)’를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하늘 속/ 맑은/ 변두리/ 새소리 하나/ 물방울 소리 하나// 마음 한 줄기 비추이는/ 라산스카’

이것은 그의 시가 지향하는 것, 즉 그는 하늘 아래 맑은 변두리 어디에서라도 그의 시가 ' 새소리 하나' ’'물방울 소리 하나'라도 되어 한 줄기 빛을 비추이는 시인이 되기를 갈망하는 시작(詩作)의 자세, 그의 마음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도 ’ 라산스카‘의 자리에 시인 김종삼을 대입하면 그 뜻이 분명해집니다.

그는 그의 다른 시에서 위의 시와 비슷한 그의 역할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희미한

風琴 소리가

툭 툭 끊어지고

있었다.

그동안 무엇을 하였느냐는 물음에 대해

다름 아닌 인간을 찾아다니며

물 몇 통 길어다 준 일 밖에는 없다고

‘물통’ 부분


두 번째 ‘라산스카(2)’도 다시 보면

‘라산스카/ 늦가을이면 광채 속에/ 기어가는 벌레를 보다가’에서도 이 표현은 분명히 시인 자신의 모습을 이렇게 그리고 있다는 것을 이제 알 수 있습니다.


‘라산스카’라는 단어는 물론 위의 가수의 이름에서 가지고 온 것은 사실이겠지만, 이는 그의 전체 ‘라산스카’ 시에서 그의 자아와 같은 이미지로 사용된 것이 그의 후기 시로 갈수록 분명해짐을 알 수 있습니다.

김종삼 시인은 생전에 ‘라산스카’가 무엇을 뜻하는지 누가 물어보면 ‘장사 밑천’이라며 알려줄 수 없다고 농담을 하였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모든 평론에서 일관되게 ‘라산스카’가 미국 소프라노 가수의 이름이 상징하는 순수한 영혼을 상징하는 단어라거나, 또는 시인이 추구하는 이상향 등의 장소로 해석해 온 것이 김종삼의 ‘라산스카’ 시 해석에서 절대적 위치에 있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 해석과는 다른, 시 본문에 충실한 시 읽기로 자연스럽게 도출할 수 있는 결론, 즉 ‘라산스카’는 시인 김종삼을 가리키는, 바로 그의 시적 자아의 이미지로 그의 시에서 사용된 것입니다.


김종삼 시인은 그의 '먼 시인의 영역'이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내가 지금까지 소위 '시작(詩作)'이란 것을 해 오면서 지니고 있는 한 가지 변함없는 소신은 '시란 그것을 보는 편에서 쉽게 씌어진 듯이 쉽게 읽힐 수 있는 것이라야 한다'는 것이다."(1)


이러한 시인 본인의 말 대로 우리들 독자의 시각에서 가장 우선해야 할 타당한 시 읽기는, 온갖 현란한 상상력을 동원한 고답적 해석 이전에 지극히 상식적 해석에서 그 의미를 구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라산스카’는 시인 ‘김종삼’이다.


(‘라산스카’ 시의 일련번호는 편의상 붙인 것입니다.)


1. 김종삼. 문학사상. 1973.3




keyword
수요일 연재
이전 26화라산스카, 그 비밀을 찾아서(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