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은 에너지로도 온도는 변할까?

주민 커뮤니티 참여와 반응에 대해

by 어느니


얼마 전 아파트 커뮤니티에 가입했다.

명절을 앞두고 인사 글이 올라왔고, 정보를 나누자는 글도, 얼굴을 보자는 제안도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 글을 올리는 사람은 몇몇 있었지만, 반응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모두가 ‘누군가는 반응하겠지’ 하고 지나쳤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대부분의 커뮤니티나 단톡방에서처럼, 형식적인 문구에는 좀처럼 감응이 일어나지 않아 무심히 흘려보냈다.


그러던 중 몇 년 전 업체의 공사 소음 보상 문제와 관련해, 관리사무실이 법적 소송 진행 사실을 공지했다. 누군가가 이에 대해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지만 분위기는 싸늘했다.

이미 오래 지난 일인데 왜 지금 소송까지 가는 걸까. 과녁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 것일까. 혹시 풀지 못한오해가 남아 있는 것은 아닐까. 오해라면 해소할 여지는 없는 걸까.

궁금증이 쌓이다 결국 나도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다. 관계있는 주민들이 한 번 만나 서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눠보자고 제안했다.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해당 커뮤니티에서는 정보가 오갈 만한 의견 개진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괜히 튀었다 밉보이기 싫은 심리, 감정이 날카로워질 상황에 참여했다가 에너지만 소모할 수 있다는 계산, 보이지 않는 누군가를 의식하는... 그런 회피의 기류가 은근히 감돌았다.

문득 궁금해졌다.
아파트 커뮤니티는 왜 형성된 것일까.

생각은 자연스럽게 나 자신에게로 향했다. 나는 그동안 얼마나 수동적인 자세로 일관해 왔던가.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걸리지 않으면 고개를 돌려버리고, 가능하면 엮이지 않으려 하고,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를 피하려 했다. 관심은 있었지만, 표현까지 나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표현할 자유만큼 표현하지 않을 자유도 있으니까.

어쩌면 댓글 하나로 내 정보가 수면 위로 떠오를지 모른다는 막연한 경계심, 삶의 리스크를 최소화하려는 본능이 이면에 깔려 있었는지도 모른다.

왜 내가 먼저 나서야 하지?
혼자 움직이는 느낌이 싫었던 것도 사실이다. 어떤 선택에서도 손해 보고 싶지 않은 마음.

옳다고 믿는 일, 필요하다고 판단한 일을 위해 앞장섰던 독립투사들과 지금의 우리는 분명 다른 조건 속에 있다. 개인주의가 팽배한 시대를 사는 우리는, 어쩌면 ‘방어’라는 기제에 과도하게 기울어 있는지도 모른다.

원형감옥 구조에서 누군가 나를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의식한 파놉티콘 효과.

누군가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만으로 행동이 스스로 통제되는 상태. 감시구조의 감각이 이미 내면화된 상태 말이다.

상대를 제압하거나 조종하려 들 때 '나는 당신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알고 있다'라는. 정보를 많이 가진 쪽이 강하다고 여기며 슬쩍슬쩍 흘리는 것처럼.

생각해 보면, 불편감이나 손해를 피하려는 마음이 강해질수록 우리는 관계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 또한 함께 포기하는 구조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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