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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플 Jun 26. 2024

내 책임이지만


경계

띠링.

외출 중에 문자가 왔다.

“혹시 내가 우리 애를 볼 수 없는 상황이 오면 애를 봐줄 수 있을까? “

이게 무슨 말이지. 지금 급해서 봐달라는 것도 아니고.

“네 언니, 급할 때 연락 주면 제가 봐줄게요”

아리송한 문자.. 찝찝하다 뭔가.

“지금은 아니고 일단 나도 버틸 때까지 버티다가 일하게 되면…”

네에..? 언니 저는 애가 둘이에요.

계획하고 있는 일들도 있어요.

당황스러웠다. 가족도 아니고 심지어 남인데 나에게 부탁을 한걸 보면 내가 그분에게는 아주 편한 존재였나 보다. 그래도 이건 아닌 것 같다.

상황파악이 된 후에는 어떻게 거절을 할지 문자를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온통 문자에 신경이 쓰였다. 왜 나한테 이런 부탁을 하는 거지. 하물며 특별한 사이도 아닌데.

계단을 내려가다가 마지막 계단에서 다리를 접질리고 말았다.

우둑. 내 다리에서 나는 소리가 틀림없다.

“어머 괜찮으세요?”

내 뒤에 있던 여성분의 귀에도 그 소리가 들렸나 보다.

”아.. 네 괜찮아요! “

전혀 괜찮지 않았지만 최대한 괜찮은 척했다.

그분의 시간을 나 때문에 빼앗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괜찮을 줄 알았다.

걸어서 버스정류장까지 못 갈 것 같아 그대로 택시를 타러 다시 계단을 올랐다.

한쪽 다리를 절며 땀을 흘리는 내 모습은 흡사 좀비를 떠올리게 했다.

날은 왜 이리 덥고 오늘따라 그 많던 택시도 잡히지 않았다. 겨우 택시를 타고 집 근처 정형외가로 갔다. 제발 아니길 바랐지만

”네.. 골절이네요. “

저 내일 기차 타고 조카 보러 가야 해요. 조카가 태어나자마자 수술하고 이제 건강해져서 100일 앞두고 처음 보러 가는 거란말이에요..

다음 주에는 처음으로 가족이 아닌 제가 좋아하는 지인들과 2박 3일 캠핑도 가기로 했다고요.

”하…네…“

그 순간 이 모든 일이 그 문자로 인해 벌어진 것 같은 생각들로 내 머리를 온통 헤집어 놨다.

나를 뒤에서 떠민 것도 아니고 내 부주의로 일어난 일인데 문자를 보낸 그 사람이 미운 걸까.

그냥 거절하고 말면 될 것을 어떻게든 부드럽게 거절할까 내가 왜 안된다는 핑계를 생각하고 있었던 걸까.

온갖 생각으로 머리가 아프고 다리도 쿡쿡 쑤셨다.

결국 쓰다만 문자를 마저 쓰며 정중히 거절의 문자를 보낸 후 나는 속으로 울었다.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 어찌할 수 없음에.

계단이나 거리에서  스마트폰을 보지 않기로,

그 분과는 거리를 두기로.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그런 부탁을 할 정도면

그동안 나를 어떻게 생각한 걸까.


“왜 다쳤다고 연락 안 했어. 그러면 조퇴하고 왔을 텐데. “

“엄마 괜찮아?”

남편과 딸아이들의 걱정의 말에 가슴까지 차있던 우울한 마음이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임시로 해놓은 플라스틱으로 된 반깁스를 조심히 풀고 아이들의 발받침대를 의자로 삼아 따뜻한 물로 땀과 그날의 기분은 씻어냈다.

”저녁을 못해서 그러는데, 오늘은 시켜 먹을까? “

“아싸!”

다들 맛있게 저녁을 먹는데 입맛이 없다.

씻어낸 줄 알았던 우울감이 다시 발바닥부터 꼬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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