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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Blu Jul 13. 2024

그 퀴어는 어쩌다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을까?

I think I wanna marry you


뉴욕에는 그런 말이 있다던데, '레즈비언은 사귄 다음 날에 동거하고 그다음 달엔 결혼한다.'.


나도 여자친구를 만나고 거의 100일째부터 결혼 이야기를 했고 8개월 정도 됐을 때, 식장을 잡았다. 대한민국 국적 오픈리 유부녀 김규진 님은 와이프 님과 2달 만에 결혼을 결심해서 5년이 넘은 지금 아이를 낳아 동성혼 법제화를 위해 꾸준히 힘써주시고 있다. 



레즈비언들은 다 이렇게 빨리 정하는 걸까? 개인적인 견해로 사실 동족 특성이 없다고 부정할 수는 없는 거 같다... 



 오늘은 퀴어인 내가 어쩌다가 여자친구와 결혼을 꿈꾸게 되었는지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주변 친구들에게 결혼할 거라는 사실을 알렸을 때, 가장 많았던 반응은 '네가 몇 살인데 벌써 결혼하냐?'였다. 그도 그럴 것이 2023년 통계청의 인구동향조사에 의하면 평균 초혼 연령은 여성이 31.45세, 남성이 33.97세다. 더불어 첫째 아이 평균 출산연령은 33.5세로, 산모 절반이 35세 이상이다. 그러니 현재 20대 중반이고 퀴어인 내가 결혼을 이야기하는 건 남녀불문하고 어색한 일인 거다. 고향이 부산이고 일터가 서울인 나는 출신지에 따라서 인식이 다른 것도  느낄 수 있었다. 지방에서 온 친구들은 먼저 축하를 해주고, 수도권 친구들은 먼저 놀라는 경향을 보였다. 아무래도 수도권으로 갈수록 늦은 나이에 결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결혼 커밍아웃을 하면서 많이 들었던 말은 '어쩌다 결혼을 결심하게 됐냐?'였다. 이 질문에 대해 적절한 답안이 준비가 안 됐기에 물어볼 때마다 다른 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어떤 모습이든 사랑해 주는 여자친구와 결혼을 생각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어.'부터 


'아이를 낳고 싶다고 생각하다 보니 모든 게 빨라졌다.'까지.


하지만 이 답들은 스스로가 느끼기에도 충분하진 않았다. 그래서 고민하게 됐다. 나는 왜 결혼을 꿈꾸는 걸까? 


2024년 6월, 처음 간 퀴퍼에서 무지개 망토를 두른 나.




1. 결혼에 대한 로망 (I really want to get married)

 엄마한테는 비혼주의라고 거짓말했지만, 난 머리털 난 순간부터 결혼이 하고 싶었다. 살아가다 종종 느끼는 인류애 상실로 인한 비관을 느낀 순간들을 제외하고도 나는 꽤 긴 시간 혼인의 로망이 있었다. 사랑이 넘치는 가족에서 태어났다고 하면 그건 아니다. 대부분 가정은 외부인에게 설명하기도 어려운 복합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에 와서 가족들과 애착 관계를 형성하고 그들을 너무 사랑하지만 그렇다고 어린 시절 유복하게 보낸 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결혼은 언젠간 할 일이었다. 물론 여자끼리 결혼할 수 있다 생각하진 못해서 마치 '서울대 가고 싶어요', '언젠간 몰디브 가보고 싶다'처럼 막연하긴 했다. 



 내가 얼마나 결혼하고 싶어 했냐면, 다섯 손가락을 넘어가는 나의 적절한 수의(?)에 연애에서 짧게는 2개월, 길게는 4년 동안 만난 모든 사람에게 '결혼하자'는 말을 했다는 거다. 이런 내가 가벼워 보일 수밖에 없다는 거에 동의하지만 이번에는 진짜다! 실제로 결혼을 못하니 말이라도 해보자는 느낌이 그 당시에는 강했던 거 같다. 싸우거나 다투면 '이 사람이랑 결혼은 못하겠다.' 라 생각했으며, 안 좋은 습관을 발견했을 땐 '이 사람이랑 미래가 안 보여'하며 이별을 고하곤 했다. 



 동성혼 법제화를 하지 않는 대한민국에 대한 일종의 '운동'으로, 한동안 나의 결혼 로망은 '공장형 웨딩'이었다. 다들 비슷하게 찍어내듯 하는 그 결혼이 나에게는 얼마나 용기를 내야 하는 일이었는지. 평범한 예식장, 평범한 식사, 평범한 테이블에 뷔페, 그 모든 것이 레즈 부부인 우리가 사회에서 특별한 게 아니라 평범한 일이 되기 바라는 마음이었다. 물론 식장을 잡은 지금 하우스 웨딩이 더 하고 싶어 공장형 웨딩은 다음 생에 하기로 했다. 이번 결혼이 내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2. 다자녀 가정 욕망(nice to have a lot of brothers)

결혼에 대한 강력한 열정과는 다르게 출산은 논의에 대상이 아니었다. 첫 번째로 내가 아픈 걸 싫어했고 (엄마는 출산이 배를 트럭이 배를 밟고 지나가는 느낌이라고 하셨다), 두 번째로는 환경파괴로 인해 우리의 차차차후 세대의 존재가 불확실하다는 것과 마지막으로 여자끼리 어떻게 임신을 하나 하는 무지까지 나를 출산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보조생식술의 눈부신 발전은 난임부부와 동성애자 부부에게 아이의 탄생을 볼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주었다. 



레즈비언 중에는 한국에 비관하여 이민 가는 사람들이 많다. 흔한 악플러들이 '다른 나라로 가라' 




난 이제 악플을 봐도 어떤 생각도 들지 않는다. 이상한 사람들을 평소에도 자주 보다 보니 이런 사람들이 집에 가서 '이런 댓글'들을 다나보다 싶어서... 물론 나를 사랑하고 아껴주는 가족과 친구들은 이런 글을 보면 슬퍼하겠지. 나는 아무렇지 않다는 걸 알아주길. 혹시 언젠간 언론에 노출되어서 악플이 많이 달리면 '악플 읽기' 콘텐츠라든지, '악플 고소해서 치킨값 벌기'와 같이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을 거 같아 기대되는 부분이 있다. 아, 그리고 이런 댓글 쓰시는 분들은 대한민국이 동성혼 법제화시키고 나면 안 되는 중국이나 나이지리아로 이민 가시길. 



다시 본론으로 들어와서 내가 아이를 갖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이유는 길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스스로를 그다지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인정하는 과정이었다. 물론 나아지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나는 가족과 친구들과 있는 게 행복하다. 혼자 있는 것도 좋아하지만 살아감에 가족이 없다면 내가 계속해서 삶을 영위하기 위해 노력할까 하는 의문이 자주 나를 괴롭혔다. 나이가 더 들어서 어느 순간 혼자가 된다면 나는 내일이 오늘이 되는 걸 기다릴까. 이런 삶에 대한 고민은 나에게 원가족이 아닌 또 다른 가족을 만들어야 한다는 방향성을 데려와줬다. 금방이라도 우주로 날아갈 듯한 나의 두 발을 지구에 잡아줄 가족을, 내일을 살게 하는 존재들과 한집에 살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 




               동성애자 부부 아래에서 태어나는 자식들이 불쌍하다.              



세상엔 다양한 가족이 있다. 편모, 편부가정이 있고 할머니랑만 사는 사람, 다문화가정으로 살아가는 가족들이 있다. 이미 이 세상에는 다양한 모습의 가족들이 많다. 우린 그냥 엄마가 두 명인 가족이 되는 거다. 아이를 사랑으로, 그리고 돈이 부족하지 않는 집에 아이로 키우고 싶다. 그리고 부모님이 다 있다고 해서 행복의 요건을 충족한 건 아니다. 자기들이 더 알 텐데... 아이를 행복하게 키우는 답은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엄마를 비롯한 나의 가족들이 나를 있는 힘껏 사랑해 줬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아이는 세 명 낳고 싶다. 이유는 우리 집이 삼 남매이기 때문인데 복작복작한 집이 너무 좋았다. 둘만 있으면 쉽게 싸우는데 한 명이 중재할 수도 있고 여러 장점이 있다. 다자녀 가정을 꿈꾸는 레즈비언 부부를 저출산 국가인 대한민국은 허용하라! 출산율 두 배 이벤트를 놓치지 말지어다.






3. '이 여자다'라는 확신(This woman is mine.)

한참 솔로에서 벗어나기 위해 공개구인을 하고 다닐 시절, 나에게는 나름 명확한 애인의 기준이 있었다. 


1) 동갑 or 연상, 연하 X 

2) 연봉이 유사한 9 to 6에 직장인 

3)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 

4) MBTI N인 사람 

5) 키 160 이상 




지금 여자친구는  '4) MBTI N인 사람'을 제외하고 그 어떤 요건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주민등록증이 4로 시작하는 연하에, 카페를 준비하는 휴학생에 키는 조금 더 보태야 160이 되는 여자다. 나의 이상형에 적합하지 않은 이 여자와 결혼을 결정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 부분은 명확하게 답을 못 내리겠는데, 그냥 그렇게 됐다. 여자친구는 내가 나름대로 정해놓은 정량적인 기준들을 전부 무용케 했다. 내 안이 보일 정도로 다정하게 바라보는 눈빛, 나와 다른 넉넉함, 마땅히 사랑해야 할 것을 사랑하는 마음, 뚜렷한 개성, 그에 대비되는 포용력, 어제보다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노력, 천천히 쌓아온 마음의 단단함, 모든 게 그녀와의 결혼을 부추겼다. 


누군가가 나에게 왜 여자친구랑 결혼하게 됐냐고 묻는다면 글쎄, 


불가피할 정도로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4. 퀴어로서 가시화 (Have you ever seen a queer?)

결혼은 무엇일까? 21세기 현인 Chat GPT에게 물어봤다. '결혼은 두 사람 간의 법적, 사회적, 정서적 결합을 의미합니다. 다양한 문화와 전통에 따라 결혼의 형태와 의의가 다를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요소들이 포함됩니다' 






이 중에서도 법적 결합, '법적 결합: 결혼은 법적으로 두 사람을 하나의 단위로 인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재산권, 상속권, 세금 혜택 등 법적인 권리와 의무를 수반합니다'. 내가 원하는 건 법적 결합이다. 신혼부부 전세대출, 디딤돌대출, 상속, 이번에 신설되는 '결혼 세액공제'까지. 내가 생각하는 법은 마지노선이다. 법은 복지혜택이 아니다. 법은 사회를 지탱하는 최소한의 방어막이다. 



방어막 없이 평생을 약속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아무런 방패 없이 전쟁에 나가는 것과 다름없다. 법이 효력을 발휘할 때는 대부분은 안 좋은 시점이기 때문에 법은 필수적으로 필요하다. 국가는 성소수자의 존재를 분명히 인지하고 있지만 이를 위한 법안을 만들지 않고 있다. 성소수자는 사회에서 어떠한 방어막도 없이 내던져서 살아가고 있다. 특히 이번 정권은 성소수자의 존재를 완벽히 지웠다. 무엇을 위한 국가인가. 국민을 위한 국가이다. 성소수자는 국민이 아닌가? 또한 성소수자를 위한 법은 이성애자들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음을 많은 국민들이 알아야 한다. 그리고 당신의 자녀, 사랑하는 사람, 아끼는 친구나 가족이 성소수자일 수 있다는 사실을 언제나 인식해야 한다. 우리는 여기 있기에. 우리는 이곳에 함께 존재하기에. 악마의 모습이 아닌 그저 평범한 국민으로서 성실히 세금을 내며 살아가고 있기에 그렇다. 



반대로 이런 의문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럼 법적인 제도가 없는데 결혼식을 왜 해?'. 바로 이 부분이 내가 결혼하려는 이유다. 법적으로 혼인 관계가 형성되지 않기 때문에 어떠한 일이 생겼을 때, 우리가 혼인에 준하는 관계를 입증할 수 있는 장치는 하나도 없다. 그렇기에 결혼식을 올려서 하객들을 모조리 증인으로 만드는 작업이 필요한 거다. 가장 중요한 건, '가시화'다. 우리 또한 우리의 관계가 부부라는 것을 다시 한번 각인하고 사람들에게 공표함으로써 모두와 함께 다음 걸음을 내딛는 거다. 나는 결혼식에 그러한 의미를 담는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축하 속에서 내일을 약속하기를 덤으로 말이다. 




누구나 동의하듯 세상이 많이 변했다. 퀴어들은 이제 더 이상 방구석에 숨어있는 이미지가 아니다. 그래도 아직 부족하다. 나와 나의 와이프 그리고  자녀들이 살아가기에는 부족하다. 물론 자녀가 상처받으면 이민도 고려해 볼 테지만, 아직은 한국에 희망을 걸고 있다. 우리 민족이 또 할 때는 하는 그런 국민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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